신앙의 향기/사랑의 향기

가톨릭대상 사랑부문 수상자 박양진씨

은빛강 2010. 1. 12. 18:13

   


가톨릭대상 사랑부문 수상자 박양진씨

자신은 검소하게, 이웃에겐 넉넉히


 
▲ 가톨릭대상 사랑부문 수상자 박양진(프란치스코)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맡기신 것 주님 뜻에 썼을 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주시다니…."
 
 12월 30일 제26회 가톨릭대상(사랑부문)을 수상한 박양진(프란치스코, 78, 광주대교구 매곡동본당)씨는 너무 가난하게 태어나고 자란 것이 한이 돼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을 도왔을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를 통해 2005년 말까지 1억1000만 원을 방글라데시에 기부해 디나즈푸르교구 '아시시 성프란치스코성당' 건립을 지원하는 등 자신의 전 재산에 가까운 4억여 원을 기부할 뜻을 밝히고 이를 실천해왔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게 살고 있어요. 하루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소원일 정도였어요. 이들을 보니 6ㆍ25전쟁 때 굶던 가족들 모습이 생각났지요. 일거리도 없는 날이면 며칠씩 굶기 일쑤고, 굶어 죽어도 누가 거들떠보지 않아요. 너무 비참했어요."
 
 게다가 구호사업을 해야 할 성프란치스코성당은 목조로 된 건물이 너무 낡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성당을 새로 짓고 성당 주변의 논을 구입해 먹을 것이 없어 비참한 생활을 하는 현지 신자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후원했다. 박씨는 지난해 2월 방글라데시 현지를 방문, 자신이 후원한 성당과 학교가 완성된 것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현지 청소년을 위해서도 2만 달러를 기증해 '코다바그바르 미션 학교'를 지어주는가 하면, 필리핀 작은예수회를 통해 10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또 국내 고학생과 홀몸노인을 위해서도 매달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 자신은 휴대전화도 없이 검소하게 살면서 알뜰살뜰 모은 재산을 이렇게 가난한 이웃을 위해 베풀고 있다.
 
 1932년 전남 순천에서 10남매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40년 세례를 받았다.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가족들이 굶다시피 하자 6ㆍ25전쟁 때 입대했다. 자신이 전사하면 가족들이 연금이라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입대 35일 만에 휴전이 돼 자신의 '희생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때는 하느님께 너무 섭섭했지요. 모처럼 좋은(?) 일 한번 해보려 했는데 말이에요. 하느님 도우심이었죠. 하느님이 저를 살리신 이유를 이제 깨닫습니다."
 
 그는 군과 맺은 인연으로 1978년까지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하지만 박씨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상사로 제대한 뒤 연금과 퇴직금으로 살던 그는 아내의 가사 탕진과 끈질긴 이혼 요구로 가정생활이 원만치 않았다. 결국 이혼을 하고 고독한 삶을 살았다.
 
 1980년대 중반 재혼한 그는 1999년 혼인성사를 받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화목한 가정은 꾸리지 못했다. 우울증과 병마에 시달리던 아내가 2001년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녀가 없는 그는 다시 외로운 삶을 살게 됐다.
 
 "아내가 떠나고 저보다 더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저는 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어 재산이 필요 없었지요. 가난한 나라에서 하루 300~400명씩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주교회의를 찾아간 것이죠."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는 성경구절을 가장 좋아한다는 박씨. 그는 "주변을 돌아보면 어려운 이웃이 너무나 많다"면서 "세상을 떠날 때 재산을 가져가는 것이 아닌 만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많은 분이 동참해주셨으면 한다"며 천사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