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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빅브러더’의 출현 (세계금융&포스트모더니즘)

은빛강 2010. 4. 20. 11:12

     
‘금융 빅브러더’의 출현
[19호] 2010년 04월 09일 (금) 16:16:07 질 파바렐가리그, 티에리 고드프루아, 피에르 라스쿰 info@ilemonde.com

‘검은돈’ 감시하는 검은 두 눈
국가와 은행의 불온한 결탁

자금세탁 방지 명분, 개인 금융정보 무차별 수집
탈세는 성역… 대테러 활동 여론몰이에 비판 잠잠

   지금까지 주요 고객의 거래 정보를 보호하는 것은 은행의 체면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검은돈’ 세탁이나 테러리스트 지원 자금 추적 바람이 불면서 은행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금융 감시 업무를 위해 전직 경찰관이 고용된다. 대대적으로 진행 중인 이 감시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09년이 저물어가던 무렵, 에르베 팔시아니라는 이름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HSBC의 전산 담당으로 일했던 그는 은행 데이터를 빼돌려 프랑스 정부기관에 팔려다 적발됐다. 2008년 초에는 리히텐슈타인 은행 LGT의 한 직원이 독일 세무 관할 부서에 수백만 유로를 받고 고객 기밀 자료를 넘긴 사실이 밝혀졌다. 한때 UBS은행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그는 미국 국세청에 고객 1만9천 명의 정보를 제공한 후 수백만 달러를 요구했다. <<원문 보기>>
 최근 들어 정부가 은행 직원과 짜고 은행 고객 정보를 빼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정부기관과 금융기관 사이의 정보 교환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자금세탁 추적이라는 명목 아래 정보를 교환해왔으며, 금융기관은 일종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탈세와 관련된 부분은 감시 대상에서 제외돼왔다.

   
▲ <미완성의 입체 그림>, 1974- 살바드르 달리
 1989년 주요 7개국(G7) 회담에서 정상들은 ‘검은돈’의 흐름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단속 대상은 마약거래에 관련된 돈에 한정돼 있었다. 이때 창설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자금세탁 방지와 관련한 국제기준을 제시하고 전파하는 일을 맡았다.
  1990년대에는 범죄 단체도 감시 대상이 되었고,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그 대상이 테러 단체에까지 확대됐다. 2000년 중반 이후부터는 핵확산과 관련된 자금 또한 추적 활동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탈세도 더는 비켜갈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전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된 위협에 맞서 대규모 추적 활동이 전개된 것이다.
 이처럼 자금세탁 방지 활동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공권력과 민영기업(은행뿐 아니라 보험회사, 공증인, 부동산 중개소 등) 사이에 전례없는 협력관계가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혐의가 있는 금융거래를 색출하기 위해서 금융기관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기관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영국의 중대조직범죄청(SOCA), 미국의 금융범죄 단속 네트워크(FinCEN), 프랑스의 비자금 경로 감시국인 트락팽(TracFin) 등이 그것이다.
 이 기관들은 자유재량으로 조사를 진행한 후 사법부로 서류를 넘길지를 결정한다. 지난 몇 년간 프랑스 정치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사건은 바로 프랑스 트락팽의 활동 결과였다. 프랑스 제련업고용인조합(UIMM)과 쥘리앵 드레의 계좌추적 등이 그것이다.
 지난 20년간의 활동 결과를 평가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공식적으로는 자금세탁 방지 활동이 성공적이었다고 소개된다. 가령 FATF의 권고로 프랑스에서만 170여 건의 사법적 조치가 이루어졌다. FATF가 제시한 국제기준이 국제적 경찰·사법 공조에 기여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다양한 직업 출신의 검은돈 추적 전문가들의 커뮤니티도 형성됐다.
 그러나 불법 자금 흐름이 실제로 얼마나 차단됐는지는 좀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비록 적은 수이지만 이 활동이 억제책으로서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제시된 결과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검은돈이 여전히 유통되고 ‘조세천국’과 규제가 약한 지역이 사라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은행의 공조 활동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더 중요한 결과가 다른 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1) 은행이 고객과 금융거래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맡으면서 금융 정보 생산이 중요한 일이 된 것이다.
 은행은 처음에는 고객의 개인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직업윤리를 내세워 ‘경찰의 끄나풀’ 역할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첫 10년간 은행은 법에 의해 규정된 의무 감시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다. 2000년이 돼서야 프랑스는 이러한 활동을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법을 마련했다. 국제적인 대테러 활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소시에테제네랄 은행의 최고경영자(CEO)가 불법적 자금세탁(상티에 II 사건)(2)으로 조사받은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금융기관은 자금세탁 방지 활동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은행은 우선 전직 경찰관이나 사법관을 고용해 ‘경제 보안’ 관련 부서를 새로 만들거나 확장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 경찰 금융범죄 단속 중앙부서 출신 간부들이 대거 금융기관에 고용됐다. 이들은 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예전 동료들과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경찰과 은행 간의 공조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충성심과 관련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전직 경찰관은 자신은 여전히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예전 직장’에 계속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충성심은 예전부터 은행에서 근무해온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경찰관들은 옷을 벗은 후에도 경찰관으로 남는다. 그들은 자신을 고용한 은행의 정보를 경찰에 넘길 것이다.”
 감시 활동은 이제 은행 리스크 관리 정책의 일부가 되었다. 자금세탁 방지 책임자들은 고객 감시를 강화하고 의심스러운 거래를 적발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은행은 전문 소프트웨어까지 도입했다. 고객 리스크 평가 소프트웨어 시장이 2000년 초부터 급격히 팽창했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 이 소프트웨어들은 무엇보다 불량 고객을 선별해내는 공식적인 고객 블랙리스트 관리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정부나 유엔, 유럽위원회 등이 작성한 대테러용 블랙리스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부패 척결 활동의 일환으로 ‘정치적으로 노출된 인물’(PPE)이라는 용어가 각종 국제 문서 속에 등장했고, 은행에도 의무 감시 대상이 되었다. 이 모호한 용어는 세계 모든 나라의 정치인, 국영기업 대표 및 그들과 직업적으로 혹은 친분상 가까운 사람까지 대상으로 삼는다. 이 기준으로 작성된 리스트에 오른 성(姓)만 50만 개에 달한다.(3) 이 이름들이 개입된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면 곧바로 은행의 감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소프트웨어들은 각 고객의 프로필 관리를 통해 ‘비정상적’ 거래를 색출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 기능으로 고객을 분류하고, 거래가 이루어질 때마다 ‘통상적’인지 ‘이례적’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고객과 금융거래 사이의 비가시적 연관관계를 밝혀낼 수 있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리스트 필터링뿐 아니라 거래 유형 분석, 위험국가와의 관계 추적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발견된 비정상적 거래 건수에 비하면 당국에 보고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은행은 일종의 ‘빅브러더’가 되었다. 고객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한 은행 직원의 말이다. 각 은행의 자금세탁 방지 책임자들은 고객의 혐의를 증명하거나 부인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모두 수집해야 한다. 그들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어디까지가 상식적인 업무이고 어디까지가 감시 활동인가?”
   
▲ <의자의 실종자>, 1932년경-바우하우스학교 한 학생의 사진 작품
 고객의 불법거래 혐의를 증명하기 위한 조처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감시 책임자들은 우선 연령이나 출신지, 거주지 등을 기준으로 감시 대상자 수를 한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준은 감시 책임자들의 직관적 판단에 의해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의 자금은 주로 코트다쥐르나 사부아 지방, 프랑스 남서부 지역으로 유입된다. 콜롬비아에서 흘러나온 검은돈은 자금 흐름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동유럽 조직들이 세탁한다.”
 결국 이들의 관심은 전형적인 ‘위험국가’에 집중된다. “현재 러시아와 멕시코는 FATF의 블랙리스트에서 빠질 확률이 높다. 나는 다른 불량국가들을 감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 감시 책임자의 말이다. 한편 이들은 정보부나 경찰, 사법 당국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들 간의 정보 교환은 검은돈 추적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경찰은 은행에 혐의자의 거래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은행은 경찰과 협력해 고객에 대한 ‘의심’을 풀거나 고객이 ‘건전하며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은행과 경찰 간에 성립된 새로운 관계는 단순한 자금세탁 방지 활동을 넘어 금융 감시의 새로운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의 트락팽은 은행에서 받은 정보를 분석해 정부 당국에 전달하는 본래의 역할을 넘어 그 정보를 자유롭게 저장하고 분류해서 다른 정보기관에 제공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탈세 관련 정보는 감시 대상에서 제외돼왔다. 세금과 관련해서는 ‘만리장성’만큼이나 굳건한 보호벽이 존재했던 것이다. ‘공공의 적’(마약거래, 조직범죄, 테러리즘)에 대항해 검은돈의 불법적 흐름을 차단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유독 탈세만은 제외됐다. 감시 책임자들의 입장은 한결같다. “우리는 국세청 직원이 아니다” 혹은 “우리 업무는 구멍가게 주인들의 탈세 행위나 감시하는 데 있지 않다”. ‘세금 지출 최적화’가 ‘일상의 업무’인 금융기관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굳건해 보이던 장벽도 유럽연합의 입법과 최근의 금융위기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 여론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국가정보자유위원회(CNIL)는 2003년부터 개인 정보가 담긴 파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음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대테러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프랑스와 유럽에서 이런 우려의 목소리는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오직 은행만이 경찰의 감시 업무를 분담하라’는 공권력의 압력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인 정보 보호라는 명목 아래 고객의 탈세만은 성역으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개인의 자유를 수호할 임무를 띤 비정부기구(NGO)들은 침묵만 하고 있다. 대테러 활동에 대한 비판이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은행 고객 정보 보안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Gilles Favarel-Garrigues, Thierry Godefroy, Pierre Lascoumes, <검은돈의 추적자들: 자금세탁 방지 활동을 강요받는 은행들>, La Découverte, Paris, 2009. 이 글에 실린 인터뷰 내용은 이 저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2) 소시에테제네랄은행과 CEO는 프랑스와 이스라엘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진 불법자금 세탁 사건인 ‘상티에 II’와 관련돼 조사를 받았다.
(3) 가장 인기가 좋은 소프트웨어는 900만 개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다. 이 데이터는 전세계적으로 15만 개 출처에서 수집됐다(Global Regulatory Information Database).

글•질 파바렐가리그, 티에리 고드프루아, 피에르 라스쿰 Gilles Favarel-Garrigues, Thierry Godefroy, Pierre Lascoumes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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