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실마을은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마을산인 오미봉에 오르면 북쪽의 매봉, 서쪽의 국사봉, 동쪽의 옥녀봉, 남쪽의 백마산으로 둘러싸인 한옥마을의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조선 명종 때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정감록(鄭鑑錄)에서 금당실을 십승지지 가운데 한 곳으로 꼽으며 '금당과 맛질을 합하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어 아쉽다'고 평했다. ‘병화가 들지 못한다'는 지형 때문인지 임진왜란 때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금당실은 지난 2006년 ‘생활문화체험마을’로 선정돼 고택의 보강공사가 진행됐다.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숭모하여 재향을 올리는 추원재, 원주 변씨 변응녕을 기리는 사괴당 고택,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터,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등은 원형대로 보존됐다. 이 외에도 마을에는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지붕을 올리는 등 훼손됐던 고택들이 옛 모습으로 복원됐다. 고택 탐방 뿐 아니라 ‘지게나뭇길’이라 불리는 좁은 돌담 흙길을 걷는 것은 금당실 여행의 백미다.
'금당실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마을에서 '쑤'라고 부르는 소나무 방풍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1892년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 사람을 마을 주민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 주민들은 고심 끝에 마을의 공동 재산이었던 소나무를 베어 러시아 측에서 요구하는 배상금을 충당했다. 그렇게 베어내고 나니 길이 2㎞가 넘는 송림이 800m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