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2012년 2월15일 Facebook 첫 번째 이야기

은빛강 2012. 2. 15. 11:43
  • profile
    어둠속의 노래-8 [현대소설] - 박찬현


    등록일 2009-03-17 11:32:48
    조회수 474회

    8.연무



    자욱한 안개와 밥 짓는 아궁이에 장작 타는 여기가 낮게 깔려 가시거리가 좁다.



    이슬 인 듯 지표를 너울처럼 가려 목소리로만 저 만큼 지나가는 이를 알아보는 기후이다.



    제일상회 큰 딸 경숙은 봄 향기를 촉촉한 대지 위로 흘리며 멀리 떠나가는 듯이 힘에 벅찬 가방을 밀며 뒤 대문을 열고 신작로 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연무 탓인지 그녀의 봄 향기는 금 새 사라졌다.



    며칠이 지나고 제일상회 여자는 박스에 이것저것 챙겨 담아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 났다.







    앞산에는 철쭉이 만개 했고 산언저리마다 등교를 하는 학교 언덕들 비탈진 곳,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개나리꽃들이 노랑 색감 물을 들이듯 피어났다.



    대지에 잠든 봄들이 무거운 지표를 뚫고 나와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앉듯이, 옆집 제일상회 경숙은 그렇게 봄처럼 물이 올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웃 도시에서 고교를 마치는 과정 사이에 남자를 만나서 열애를 했다.



    그녀는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졸업을 했고 남자를 따라서 먼 지방 전라도 광주 까지 내려갔다.



    남자의 고향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 자리에 제일 상회 여자만 참석을 했는지 잘은 모르지만 두 모녀만 그 도시로 갔다.










    여름이 왔다.



    장대 같은 비가 대지를 두드릴 때 정씨는 그동안 장만한 전답에 나가 물길을 텄다. 군사용 판초를 입고 낚시 대신 밭으로 논으로 다녔다.



    정씨는 부지런 했다.



    그의 막내아들도 부지런 했다.



    나무로 깍은 신발에 고무타이어를 잘라서 못으로 박은 일본식 슬리퍼를 신었다. 더러는 페인트도 칠해진 나무슬리퍼는 ‘게다짝’이라고 불렀다.



    그 나무 신을 신고 달군 해가 계절을 바꾸기 전 까지 처마 밑에 토끼들의 겨울 먹이들을 엮어 매달았다.



    그렇게 일본의 잔재가 남겨 놓은 산물은 생활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긴 항아리에 소금에 절인 무에 쌀겨와 치자로 담근 단무지도 ‘다깡’이라는 이름을 남겨졌다.



    색주가에서는 더러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양조장 사장의 집도 다다미를 깐 일본 가옥 그대로이다.



    세상들의 입에서는 일본의 냄새들이 가시지 않았다.



    한국전란의 흔적들도 헹구어 지지 않았다.



    탄피 창을 연장 통으로 썼고 군용 식기로 개밥을 끓여 주는 통으로 썼다.



    그렇게 가는 세월과 다가오는 세월들이 어우러져 맞물려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세상은 낯설지 않은 듯 서 있었다.










    몇 해가 지나고 경숙은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뿜어내며 남편과 아이와 친정엘 왔다. 장이 서던 날에는 사위도 상회를 도왔고 장남도 지나간 해 장가를 들어 참한 새 며느리를 맞았다.



    그의 마당이 훤하도록 미남 미녀들이 서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즐거운 칭찬이 줄지를 않았다.



    장남은 삼륜트럭을 구입 해 아침마다 시동을 거느라 뿌연 연기를 온 마당에 깔았다.



    아침은 그 집 삼륜트럭 시동을 걸면서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부의 창출은 부지런함에서부터 나왔다.



    시간을 아까워하며 몸에 익은 부지런함으로 불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매양 토지들이 불어났다.



    장남은 인근 도시에 운송업을 차렸다. 그의 부인은 시부모를 봉양하며 아직 젖먹이 아이들을 돌보았고 제일상회 여자의 막내도 어린 아기이다. 며느리를 볼 때 젖먹이였으니 발걸음을 떼는 정도이다.



    그렇게 그 집은 시끌벅적 거리며 살고 있다.



    제일상회 여자도 한동안 밤나들이가 뜸 했다.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