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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에서 ‘한국유림단, 독립 청원 파리장서 초안 작성’ 문헌 발견

은빛강 2012. 4. 16. 02:36

봉화군에서 ‘한국유림단, 독립 청원 파리장서 초안 작성’ 문헌 발견

 



봉화군에서 ‘한국유림단, 독립 청원 파리장서 초안 작성’ 문헌 발견

파리장서(巴里長書)운동은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와 함께 쌍벽을 이뤘던 137명의 유림대표가 전문 2,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프랑스 파리 강화회의에 보낸 운동을 말한다.

▲ 삼산 김창숙선생

영남지역 유림단이 독립운동에서 보인 활약상은 매우 뚜렷하다. 특히 파리장서 사건과 2차 장서운동 등을 통해 지역의 독립운동사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의 총본산일뿐 아니라, 서명한 유림이 가장 많은 경상북도를 비롯한 봉화지역은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관련사업 지원이 거의 없는 실정으로 상당히 소외되어왔다.

봉화군의 파리장서비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우상, 80세)는 “경남 밀양·거창·합천 등, 전국 7개소에서는 이미 파리장서비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봉화군은 지난 2010년부터 파리장서비를 건립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해줄 것을 건의했으나 관계당국으로부터 2회나 보류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봉화군 파리장서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당시 봉화에서 있었던 독립운동의 의의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파리장서비의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북지역 유림 후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과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장서비 및 기념사업의 추진을 통해 지역민에 대한 자긍심과 국가관을 확립시키는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지난 3월 초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장서비 건립을 위한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는 일본 헌병의 혹독한 탄압으로 희생이 참으로 많았던 곳이다.’

(유림의 독립운동, 산청문화원발행)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는 거문적인 항일 운동으로 봉화의 유곡과 함께 경북에서 가장 치열한 독립운동이 전개된 곳이다.’

(유림의 독립운동, 산청문화원발행)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와 해저리는 유림단 독립운동의 총 본산이었다.’

(유림의 독립운동, 산청문화원 발행)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만회고택에서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의 초안을 직접 작성한 곳이다.’

(유림단 독립운동 실기, 유림단독립운동실기편찬위원회 발행)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는 유림단 독립운동의 총 지휘자인 김창숙 선생의 부친의 고향이었기에 영향력이 컸다.

(봉화독립운동사, 김희곤외 저)

‘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명중 경북 유림이 45명, 봉화 유림이 9명이나 서명한 곳이다.’

(파리장서 독립운동사, 유림단 독립운동 실기, 봉화독립운동사)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유곡추원재)와 해저리는 유림단 제2차 장서운동을 하며 크게 기여한 곳이었다.’

(봉화독립운동사)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곳으로 알려진 '만회고택'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곳으로 알려진 '만회고택'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곳으로 알려진 '만회고택'

▲ 파리장서비 건립 서명 장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郭鍾錫)의 문인인 윤충하(尹忠夏)는 서울의 만세시위 상황과 파리 강화회의 등 국내외의 정세를 설명하고, 3·1운동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유림들이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하고 곽종석이 대표로 나서줄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에 곽종석은 김창숙(金昌淑)과 상의하여 3·1운동 때 유림이 제외되어 일어난 사실을 아쉬워하며 유림이 독자적인 행동을 추진하기로 의논,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요구를 밝히고 독립을 청원하기로 합의했다. 파리 강화회의에 보내는 장서에는 곽종석을 대표로 영남 유림의 명망 있는 인물들이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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