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아우르는 시간의 흐름은 그저 묵묵히 흘러 갑니다.
그 흐름에는 층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느끼고 알고 있는 세월의 층간은 단지 역사가 그것을 구분하여 줍니다.
역사의 구비마다 그 시간을 보여주는 것은 단연 시대의 인물상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전쟁을 앓고 막 회복기에 들어서면서
사회경제는 빠르게 회복을 충전하고 있었으나
사람들의 진면목은 그 속내라기 보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회복은
무척이나 더딘 걸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남북간 이념의 전쟁 등살에서 배고픔의 경제가 회복기를 찾게되고
그리고 다시 고개 든 이념은 젊은 청년기들에게 몸살처럼 유행했습니다.
그러한 혼란기는 이분화 된 한국이 자리를 잡으며 주춧돌을 놓기도 전에
혼돈된 명분이 선봉을 잡으려 다툼을 할 때 한국 천주교회사는 희생의 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님은 무력이 아닌 인문주의로 사회 질서를 묵시했으며
그분의 진실된 기도와 희생정신이 삶의 등불이 되지않았나 싶습니다.
희생이란 작은 정신부터 점철화 하신 분
'내 탓이오!'
네 탓으로 돌리기 보다 자신을 반추하며 성찰을 요구하신 기대는
많은 종교인과 신앙인들에게 양심의 일렁임을 가져 왔습니다.
도심 한 복판 명동의 언덕에서
자유라는 메세지로 청춘들을 끌어 안은 자비 앞에서
젊음은 시대적 앓이를 치유 받기도 하였습니다.
성직자가 걸어가야 할 수난의 길을 모두 안고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뒤를 따라 걸어 가셨습니다.
그 걸어 가신 행보의 긴 그림자는 우리들에게 충분한 본보기가 되어 주셨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삶의 기준을 제시 해 주신 어른이십니다.
한 시대를 음영이 짙게 그려 놓으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 현재 시각들을 오려서 올려 놓은 [김수환 추기경 111전]은
한국사에 길이 보존 될 기념비이며
책갈피를 넘길 때 마다 흘러내리는 그 분의 자비로운 미소가
현재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으신 분
내 아버지 같으신 분
내 할아버지 같으신 분
이 분들은 언제나 보아도 마음이 평온하듯이
추기경님의 살아 숨쉬는 사진 속에서 많은 분들이
자비로운 미소를 만나고 위안 받는 시간들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오래전 낡은 사진 한 장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그려왔지만
이제, [김수환 추기경 111전]에서 환희로 다시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