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시간들-우리주 예수그리스도

『제5시간』(오후 9시 - 10시)

은빛강 2016. 2. 19. 18:20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제5시간』(오후 9시 - 10시)



《게세마니의 고뇌 첫째 시간》


(☧‘준비기도’를 바친 후)


1

고뇌에 잠겨 계신 예수님, 저는 마치 전류가 통하는 것처럼

이 (겟세마니)동산으로 마음이 끌림을 느낍니다.

제 아픈 마음을 당기는 강력한 자석(처럼) 당신께서 저를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달려가면서, ‘내 안에 느껴지는 이 사랑의 이끌림은 무엇일까?

어쩌면 박해 당하시는 내 예수님께서 너무도 괴로우신 나머지

나의 동반을 필요로 하시는 것인지 모른다.’ 하고 혼자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날아갑니다. 곧 나는 듯 달려갑니다.


2

그러나 이럴 수가! 동산에 들어서자 무서움이 엄습합니다.

밤의 어둠, 섬뜩한 냉기, 괴로워하시는 당신께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예고하듯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흔들리는 나뭇잎들,

눈물을 글썽이며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들처럼 빛을 내는 별들......,

이 별들이 저의 배은망덕을 나무랍니다.

저는 떨면서 더듬더듬 당신을 찾습니다. 당신을 부릅니다.


3

“예수님 어디계십니까?

저를 부른 당신께서 어찌하여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십니까?

부르시고서 왜 숨어 계십니까?”


4

일체가 공포의 대상입니다.

모든 것이 등골이 오싹한 전율을 일으키며 깊은 적막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헐떡이며 몰아쉬는 가뿐 숨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당신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비참하도록 달라진 모습이신지!

최후 만찬의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순간은

얼굴이 황홀하도록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이셨건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듯 아름다운 당신이 아니십니다.

죽음에 이르는 극도의 슬픔이 본래의 아름다움을 손상한,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5

벌써 임종 고통이 시작되어 머지않아 숨을 거두실 것처럼 보이니,

다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못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간 슬프지 않습니다.

저는 그러므로 당신의 발을 부둥켜안습니다.

그러면서 더 대담하게 당신의 팔까지 올라가며 감싸 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마에 한 손을 얹어,

아래로 떨어뜨리고 계신 고개를 받쳐 드리면서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예수님, 예수님,”하고 부릅니다.


6

그러자 당신은 그 소리를 들으시고 저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 왔느냐?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짓누르는 가장 큰 슬픔이 모든 사람에게서 완전히 버림 받는 것인데,

지금 그 슬픔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기다린 것은 너에게 내 고통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고,

너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천사를 통해 곧 내게 보내 주실

쓰디쓴 잔을 나와 함께 마시게 하려는 것이다.


7

나와 같이 이 잔을 한 모금씩 마시기로 하자.

그것은 위로의 잔이 아니라 매우 쓴 고통의 잔일 터이니,

나로서는 애정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그 몇 방울만이라도

같이 마셔주기를 바란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니, 네가 이를 받아들여 나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이리도 슬픈 저버림 속에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하려는 것이다.”


8

“아, 예, 그러겠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신 예수님,

저희는 당신의 쓴잔을 같이 마시고, 당신의 고통을 같이 겪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9

고뇌에 잠기신 당신께서는 그렇게 저의 다짐을 받아 내시자,

단말마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일찍이 눈으로 보거나 느껴 안적이 없는 고통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참고 볼 수 없어진 저는 당신께 따뜻한 동정심을 표하며

위로를 드리고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10

“말슴해 주소서, 어찌하여 이 밤, 이 동산에서,

이토록 슬퍼하시고 괴로워하시며 홀로 계시나이까?

이 밤은 당신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입니다.

몇 시간만 있으면 수난이 시작될 것입니다.


11

저는 적어도 당신 천상 엄마를,

그리고 사랑에 찬 마리아 막달레나와 충실한 사도들을

여기에서 만나리라고 생각했건만,

그 대신 이렇게 홀로 슬픔에 짓눌려 계신 당신만을 뵙고 있습니다.

그것도 참혹한 죽음을 겪게 하면서 정작 죽이지는 않는 무자비한 슬픔입니다!

오, 저의 선, 저의 전부시여,

어째서 이런지 대답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12

그러나 당신은 너무도 큰 슬픔에 눌려 말씀을 하실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 저의 예수님, 빛이 가득하지만 그렇습니다,

슬픔에 겨운 당신의 눈길은 도움을 청하시는 듯합니다.

당신의 할쑥한 얼굴, 사랑으로 바싹 마른 입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고 있는 거룩하신 몸,

영혼들을 찾아 구하려고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박동과 그 과도한 노고,

그 때문에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당신 - 이 모든 것이

당신께서 홀로 계시니 제가 같이 있기를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3

오, 예수님, 제가 여기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땅에 쓰러져 계신 모습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당신을 팔로 받쳐 가슴에 품어 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고통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당신 앞에서 저질러지는 죄들도 낱낱이 헤아리고자 합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당신께 위로를 드리고, 보속을 바치며,

적어도 따뜻한 동정심이라도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오, 저의 예수님, 제 팔에 안겨 계시는 동안 당신의 고통은 더욱 커집니다.

저의 생명이시여, 당신의 혈관 속에서 불이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피가 끓어올라 혈관을 터뜨리며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제 사랑이시여, 대체 무슨 일입니까?


15

채찍도 가시관도 못도 십자가도 보이지 않건만,

당신 가슴에 제 머리를 갖다 대자

잔혹한 가시들이 당신의 머리를 찌르는 것이 느껴지고,

무자비한 채찍이 아주 작은 부분도 빼놓지 않고 당신의 거룩하신 몸 안팎을

온통 후려치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 당신의 두 손이 못 박히셨을 때보다 더 오그라들고 뒤틀려 있습니다.


16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감미로우신 선이시여,

당신을 내적으로도 이토록 괴롭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대관절 누구이기에,

그럴 때마다 같은 수의 죽음을 겪곤 하십니까?

17

오, 복된 당신께서 금방이라도 생명이 꺼질 듯한 입을 열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얘야, 사형 집행자들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

이 고통에 비하면, 그들이 내게 끼친 고통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이다.

이 영원한 사랑은 무엇에서든지 으뜸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형 집행자들이 점진적으로 내게 줄 고통을 한꺼번에,

그것도 가장 깊고 내적인 부위에 안겨 주는 것이다.


18

아, 얘야, 그것은 모든 것 속에서 언제나 우세한 사랑,

나를 압도하면서 내 안에 있는 사랑이다.

내게는 사랑이 못이요, 채찍이며 가시관이고, 사랑이 모든 것이다.

사랑이 나의 영구적인 수난인 반면,

사람들로 말미암은 수난은 시간적인 제한이 있는 것이다.


19

아, 얘야,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너라. 와서 내 사랑 안에 녹아들어라.

오로지 내 사랑 안에서라야, 내가 얼마나 엄청난 고난을 받았으며

얼마나 너를 사랑해 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나를 사랑하는 법과 오로지 사랑으로 고통 받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20

오, 저의 예수님,

사랑이 당신으로 하여금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하는지를 보여 주시려고

저를 당신 마음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시니 들어가고 있나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사랑의 기적적인 표징들이 보입니다.

당신 머리에는 실제의 가시관이 아니라 불 가시관이 씌워져 있고,

채찍의 끈 부분이 끈이 아니라 불로 되어 있는 불 채찍이

당신의 몸을 후려치고 있으며,

쇠로 된 못이 아니라 불 못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21

모든 것이 불입니다. 불꽃이 뼈까지,

뼛골 속까지 깊이 파고들어 당신의 거룩하신 인성 전체를 불로 만듭니다.

그것이 죽음의 고통을, 수난 그 자체보다 확실히 더 큰 고통을 받으시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모든 얼룩을 씻고 사랑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고자 하는 영혼들에게

사랑의 목욕물을 준비해 줍니다.


22

오, 끝없는 사랑이시여,

이토록 무한한 사랑 앞에서 저는 몸이 흠칫 뒤로 쏠리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사랑 안으로 들어가서 사랑을 이해하려면

저 자신이 온통 사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 저의 예수님, 저는 도무지 그렇질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제가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시니,

저로 하여금 온통 사랑이 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23

그러므로 간청하오니,

제 머리와 생각들 하나하나에 사랑의 관을 씌워 주십시오.

오, 예수님, 이 애원도 들으시어, 제 영혼과 몸과 힘과 감성과 갈망과 애정을,

요컨대 모든 것을, 사랑의 채찍으로 채찍질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모든 것 속에서 사랑의 채찍과 사랑의 날인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오, 끝없는 사랑이시여,

그리하여 사랑에서 생명을 받지 않은 것은 제 안에 도무지 없게 해 주십시오.


24

모든 사랑의 중심이신 예수님, 비오니,

제 손과 발에도 사랑의 못을 박아 주십시오. 그렇게 완전히 못 박혀,

저 자신이 사랑이 되고,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을 옷 입듯 입고,

사랑으로 양육되게 하시고,

또한 사랑이 저를 완전히 당신 안에 못 박게 해 주십시오!

오, 예수님, 그리하여 제 안팎의 그 무엇도 사랑으로부터

저를 떼어 내어 딴 것에 정신을 팔게 하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