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인문학 스프-패러디

은빛강 2016. 7. 1. 05:03

인문학 스프-패러디
횡설수설⑭ - 행복한 시간

초등학생(5,6학년)을 대상으로 논술대회를 치렀습니다. 200장의 답안지를 네 사람의 채점위원이 각자 점수를 매겼습니다. 그 중 한 장의 답안지가 모든 채점위원들에게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다른 답안지와는 확실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당연히 그 답안지를 쓴 학생이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출제위원들이 기대한 답안지를 제출하는 학생이 단 한 명뿐인 대회가 자주 있습니다. 제가 출제와 채점에 관여했던 대회 때는 거의 그런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미운 오리새끼」와 『갈매기의 꿈』의 자기실현 과정을 비교해 보라는 문제에 ‘환경의 극복’과 ‘한계의 극복’이라는 명제화를 보여준 한 시골학교 학생의 답안지입니다. 그 답안지를 처음 대하는 순간 저는 아, 이게 어린이의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진정한 모범 답안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나이 때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말의 반성마저 일었습니다.

그 답안지가 반성의 단서를 제공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출제위원장의 입장에서, <‘인내’가 ‘미운 오리새끼’였던 백조의 정체성 회복에 필요했던 덕목이었고, ‘도전’이 갈매기 조나단의 새로운 정체성 쓰기에 필요했던 덕목이었다. 인간의 자기실현에는 이 두 가지 항목이 필수 요소라는 것을 두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라고 ‘예상되는 모범 답안의 취지’를 미리 만들어 둔 상태였습니다. 대회를 열려면 그렇게 미리 채점 기준을 정해서 기안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채점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 답안지가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인내와 도전’은 저같이 인생을 한 사이클 살아본 자들이나 제출할 수 있는 ‘삶의 경험칙’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열 살 남짓의 초등학생들에게 요구한 것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주어진 환경’으로서의 ‘미운 오리새끼의 외모’와 ‘나는 자로서의 최고치’를 경험하고픈 한 갈매기의 ‘태생적 한계’만이 인지될 뿐이었습니다. 그게 맞는 거였습니다.

이번 논술대회의 답안지 중에서는 그런 ‘각성’을 선사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출제자의 의중을 반영한 제대로 된 답안지만 ‘한 장’ 있었습니다. 이번 대회의 문제는 ‘시간과 인간의 행복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아껴쓰는 것만이 꼭 행복의 지름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제시문을 주고 인간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 시간(행위)들에 대해서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늙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 앵무새를 키우며 보내는 시간, 직원들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과 같은 ‘일에 불필요한 시간’을 다 없앴을 때 과연 인간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가,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때는 오히려 그런 ‘잉여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풀어서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런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리있게 정리해서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노는 것’이 중요하다, ‘웃는 삶’이 중요하다(교과서에 그런 내용이 있음),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다르다 등등의 단편적인 주장만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제시문의 주인공이 시간을 아껴쓰기 위해서 버렸던 것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삶, 타자들과의 공존과 유대, 생명을 양육하는 삶이 우리가 지닐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의 대표적인 예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써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시문의 주인공처럼, 평소 자신의 생활에 불만을 느끼고 있을 때(나는 지금까지 무얼 이루었는가), 불행의 사자(시간을 최대한 아껴쓰라고 충고하는)가 찾아와서 불행으로 통하는 극단적인 시간(행위)을 권한다는 것,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인간미를 잃지 않는 성실한 삶으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조건이라는 것을 적어준 아이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단 한 명의 답안지만이 그런 취지를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채점을 마치고 느끼는 소회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삶이 주는 진정한 행복감’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가? 도대체 우리의 교육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그런 답답한 심정을 담은 의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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