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문학인의 방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김순진]

은빛강 2010. 4. 10. 12:20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월간《스토리문학》2008년 1월호 신년사를 겸한 시론

[김순진]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을 애독해주시는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희망찬 2008년 무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

▲ 김순진 시인
지만 세상을 그만큼 알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니 즐겁기도 합니다. 이번 달에는 제가 신년사를 해온 달이지만 이번만큼은 신년사 대신 시창작에 대한 저의 생각을 피력해보려고 합니다.

금년에 저는 매우 뜻 깊은 위치에 있습니다. 4주년을 넘어서 5주년으로 달려가니 말이에요. 저는 시골에서 포천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문학을 하려고, 시를 쓰려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공무원보다는 문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로 나와서 공부를 더 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두가 저를 아는 분들이 믿어주고 잘되라고 기도해준 덕분이라 생각하면서 더 큰 작가가 되기 위해 부단 없이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오늘은 제가 문단에 나가서 만난 원로 시인님들 이야기와 곁들여서 그간 10여 년 동안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해온 경험을 살려, 그냥 문학 강연이기보다는 문학을 통하여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스토리문학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지난 해 말에는 우리 스토리문학에 발표했던 김성수 시인이 문화예술진흥위원회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월간 <스토리문학>은 중앙문단의 중심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박붕배 선생님을 비롯하여 구인환 선생님, 함동선 선생님, 박재릉 선생님, 김태호 선생님, 곽문환 선생님, 엄기원 선생님, 이수화 선생님, 박곤걸 선생님, 이현복 선생님, 배인환 선생님 등 편집위원을 맡아주시는 선생님들과 최현근 회장님의 사랑과 관심에 대한 결과라 생각하며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좀 이야기를 바꾸어 보겠습니다.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소림사에 한 신참 스님이 무공을 익히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소림사에는 워낙에 내방객들이 많아서 화장실이 늘 오물로 넘쳐납니다. 용변을 보려면 늘 오물이 튀어서 바지에 묻기 때문에 이만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신참스님은 다른 선배스님들은 어떻게 용변을 보나 하고 몰래 숨어서 보기로 하였습니다. 때마침 무공을 배우러 온지 10년쯤 된 스님이 들어갔습니다. 10년 된 스님은 허리띠를 풀어 대들보에 걸더니 날아다니며 한 덩어리씩 떨어뜨립니다. 정말 대단한 무공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10년 된 스님이 나가자 20년 된 스님이 들어왔습니다. 20년 된 스님은 싼데 또 싸고 싼데 또 싸고 해서 오물이 튀어 오를 새가 없이 싸고 얼른 일어섭니다. 신참 스님은 속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얼마를 기다리자 30년 된 스님이 들어왔습니다. 30년 된 스님은 내공의 힘을 빌려 대변을 소변보듯 한 줄로 갈겨 쌉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나도 꼭 저 정도의 경지까지 무술을 익히고 말 거야.”
신참 스님은 속으로 다짐하고 있는데 주지스님이 용변을 보러 화장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런 데 주지스님은 이상하게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순간에 엉덩이만 싹 비킵니다. 주지 스님이 용변을 보고 나오자 신참 스님이 따라가서 물었습니다.

“주지스님! 다른 스님들은 다 익힌 무공을 이용하여 대변을 보는데 주지스님께서는 어떻게 무공 하나 없이 그냥 엉덩이만 싹 비킵니까? 혹시 소림사를 돈으로 산 건 아닙니까?

그러자 주지스님이,
“나도 다 해봤다.” 그러더랍니다.
바로 그거입니다. 모두 해봐야 편리한 방법, 좋은 방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시에서도 생각 가능한 것을 모두 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종이컵이 있다고 합시다.
이 종이컵을 가지고 시를 쓸 때,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작다, 동그랗다. 직경이 7Cm고 높이가 7.5Cm이다. 종이로 되어 있다. 일회용 커피를 마신다.”

뭐 그런 정도로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詩的 사고는 그렇지 않습니다. 종이컵 하나가 생겨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멀리 인도네시아로 달려가야 합니다. 적어도 수 백 년 자란나무가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 밀림에 살던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나무가 베어지고 배에 실려 오면서 또 얼마나 많은 인부들이 땀을 흘려야 했을까요. 이 종이컵에는 커피가 담깁니다. 그 커피는 또 어디서 왔을까요? 에티오피아에서 왔든지 아니면 쿠바에서 왔거나 브라질에서 왔을 것입니다. 커피를 따는 소년은 아마도 초등학교도 못 나온 어린아이일 지도 모릅니다.

자, 종이 컵 하나에서 생겨날 수 있는 생각 가능한 모든 것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시의 지도를 그립니다. 그러면 단순히 물 한 잔, 커피 한 잔의 개념에서 이미 깊게 들어와 있음을 알고 자신의 사고력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사업도 그렇지 않습니까? 구멍가게 하나를 내더라도 유동인구가 얼마나 되며 옆에 어떤 가게가 있으며 수준은 어느 정도며 그런 저런 시장조사를 해야 그 사업이 성공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생각 가능한 모든 것을 사고의 선상에 올리고 필요한 부분을 취하는 겁니다. 성찬경 시인은 나사 하나를 수십 년 주무르며 나사에 관한 시를 써오셨다고 합니다. 이게 무엇일까? 어디서 왔을까? 누가 캤을까? 어떤 사람이 고철로 주운 것을 되 녹인 것일까? 나는 세상이나 사회, 직장, 친구, 집안을 잇는 적합한 나사일까? 나사 빠진 사람은 아닐까? 그런 끊임없는 질문은 스스로를 키웁니다. 선배시인들은 시는 사물과의 대화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이창우란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오랜만에 고향에 갔더랍니다. 그런데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하나는 봄에 죽고 하나는 가을에 죽고 모두 한 해에 다 죽었더랍니다. 왜 죽었을까요? 가물어서 죽었을까요? 왜 죽었을까요? 돌보지 않아서 죽었지요. 사랑이 없어서 죽은 거지요. 그래서 사랑이 없어서 죽었다는 시를 썼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없는 것은 모두 죽습니다.

저는 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서울에는 북한산과 관악산이 유명합니다. 모래 한 알을 물에 담갔다가 깨뜨려 봅시다. 금방 속까지 물이 먹어있을 것입니다. 그럼 북한산, 관악산의 바위들은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살아 있습니다. 왜 살아 있을까요?  살아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릅니다. 사람은 죽은 것은 귀신 같이 압니다. 죽은 고기는 절대 안 먹습니다. 강물이 오염되어 죽었을 때 누가 고기를 잡아먹었습니까? 둥둥 떠 죽은 물고기를 가져다 매운탕 끓여먹는 사람 보았나요? 절대로 안 먹을 겁니다.

그렇듯 바위도 살아 있습니다. 바위는, 산은 아주 적당한 물을 마십니다. 그리고 사랑을 마십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어떤 원숭이가 입 안에다가 열매를 잔뜩 저장했다가 새끼에게 토해주듯 그렇게 물을 마셨다가 우리들에게 아주 천천히 사시사철 내려 보내주지요. 바위가 죽었다면 사람들은 절대로 그 바위산에 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바위가 먹는 것은 물 뿐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우러름을 먹습니다. 존경을 먹습니다. 어른들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비오시네. 눈 오시네.’ 합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우러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우러러보기 때문에 하늘이 파란 것입니다. 파란 것은 무슨 색입니까? 희망의 색 아닙니까?

시골사람들은 재앙이 내리면 산신령이 노했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떡을 하고 돼지를 잡아서 산제사를 지냅니다. 여러분의 동네에도 그런 일이 있잖아요.

제가 자란 동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 제비울에는 지금도 산제사 지내는 날을 정해놓고 치성을 드립니다. 제사를 차리는 집 아낙네들은 한 달 동안 집 밖에 나오질  않지요. 또 옛날에는 산제사지내는 날을 받으면 밖에 나갔던 사람이 동네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동네 사람들도 아무리 바빠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존경입니다. 바위와 산에 대한 우러름이지요.  존경은 어디서 시작됩니까? 사랑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왜요? 바위가, 산이 우리에게 땔감을 주고 시원한 바람을 주고 물을 주고 버섯과 나물과 꿀과 토끼 등의 고기를 주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산제사라는 형식으로 지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공부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 한 통 합니까? 전화 한 통 드립니까?

저는 초등학교 5,6학년 때 선생님이신 박광국 선생님과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신 홍관선 선생님,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신 한중희, 조석구 선생님 등을 정신적 지주로 여기며 특히 한중희 선생님께는 지난 80년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단 한 해도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연하장을 보냈고, 스승의 날에 찾아뵙거나 축전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연락 안 되는 선생님은 끊임없이 찾고 싶어 하고 그리워합니다. 그건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마음 아닙니까? 지난 12월 15일에는 포천에 이동중학교 동창회에 다녀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정남숙 영어선생님과 홍관선 국어선생님을 모셔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지요. 지금 우리가 길러주시고 낳아주신 부모님을 돌봅니까? 아닙니다. 의학박사를 만들어준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는 자식을 보았습니다. 신 고려장이라 해서 부모님을 여행지에 내버리고 오는 경우도 있답니다.

문학은 무엇입니까? 시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자신을 올바르게 세우는 일입니다. 문학을 제대로 하면 불효자가 없어집니다. 저는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왜냐구요? 그 어려운 70년대 후반에도 품을 팔아서 쌀을 팔아서. 저를 문학적 소양을 가질 수 있도록 김우종 에세이전집, 세계문학전집, 한국소설전집 등을 무수히 사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만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늘 감사한 마음이지요. 나중에 김우종 선생님을 제 고향집으로 모시고 갔었습니다. 그리고 밑줄 그으며 선생님의 수필을 공부하던 그 책들을 보여드렸지요. 너무나 기뻐하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문학을 제대로 하면 이웃에 누가 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해서 남의 돈을 갈취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문인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요? 맞습니다. 사이비입니다. 가짜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습니다. 부침개를 붙여도 젤 먼저 부쳐서 이웃집에 가져다줍니다. 가래떡을 해도 맨 위에서 덜어서 이웃집에 가져다줍니다. 옥수수를 삶아도 자기는 이 빠진 거, 덜 여문 거 먹고 남에겐 토실토실하고 적당히 여물어 쫀득쫀득한 것을 줍니다. 무엇입니까? 가장 좋은 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 문학입니다. 가장 선한 마음을 가지게끔 마음을 나누는 게 문학이고 시입니다.

저는 화전민의 자식이었으며 열다섯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주 어렵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을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 내 인생의 기나긴 터널을 뚫고 있는데 이제 거반 다 뚫려서 곧 “우와, 내 세상이다!”라고 소리칠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단 한 번도 어두운 시를 쓴 적이 없습니다. 어둡게 써본 글이 없습니다. 늘 희망적이었고, 늘 미래지향적으로 썼습니다. 배고픔을 표현해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려 애썼습니다.

서울 나와서 문학하면서 마루방에서, 사글세에서, 지하실 방에서 어렵게 어렵게 살아왔어도 단 한 번도 희망을 버리거나 좌절한 적 없습니다. 문학을 하면서, 시를 쓰면서 자살을 생각하거나 좌절을 생각한다면 그 문학은 접어야 합니다. 어떤 친구는 너무나 어렵게 자란 고향이 보기도 싫어서 나가 살면서 ‘추억은 다 잊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들판에서 뛰놀며 자란 것이 더 없이 자랑스럽습니다. 보리밥도 못 싸가지고 다녔어도, 뚫어진 고무신을 신고 다녔어도, 남들처럼 책가방도 없이 책보를 메고 다녔어도 저는 그 시절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문학은 희망으로만 통합니다. 문학은 아름다움하고만 사귑니다. 물론 전쟁과 배고픔 살인을 묘사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거기에 깔린 정신이 희망이어야 하고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위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좀 다른 데로 흘렀네요. 학교에서 애들이 놓는 시간이면 정말 시끄럽습니다. 시장에 가면 얼마나 시끄러워요. 사람들은 자주자주 조잘조잘 말합니다.  왜요? 사람의 수명이 얼마입니까? 고작해야 백년이지요. 그럼 바위의 수명은 얼마입니까? 오십억 년입니다. 오십억 년 동안 살아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바위뿐입니다. 소나무도 학도 거북이도 천 년을 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바위는 바위끼리 이야기 합니다. 어떻게요?

“야아… 사… 람… 들… 이… 너… 무… 까… 불… 어어!”
그렇게 한 음절씩 말 하는데 한 30년 내지 50년씩 걸립니다. “야아…….” 하는데 말이에요. 하하하. 그러다가 정말 화가 나면 벼락을 쳐서 사람들을 벌하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산을 너무 함부로 하니까 북한산에서 벼락 쳐서 옆구리가 터지고 여러 사람 죽었잖아요. 물론 죽은 사람이 잘못한 건 아닙니다. 왜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 ‘다 눈감아!’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신도 사람들에게 함께 벌주는 겁니다. 바위와 대화가 통하는 것은 바위가 있는 산의 소나무와 물과 하늘과 들풀과 꽃 등 남을 시기하지 않는 것들뿐입니다. 그렇듯 좋은 사람과의 친구는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란 무엇입니까?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시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는 식의 감상이 아닙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식의 감상도 아닙니다. 물론 감상도 시가 될 수 있습니다만 현대시는 사람 사는 맛을 추구합니다.

그럼 시는 어떻게 쓸까요? 여행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물건을 사거나 밥을 먹거나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아, 이거 시 되겠네.’ 그렇게 시상이 떠오를 때 우리는 그걸 ‘시의 종자鐘子’라 말하지요. 이를테면 설거지하다 그릇 깬 것, 신발 벗겨진 것, 생선 손질하다 손톱 밑에 가시 들어간 것, 종이컵으로 커피 마시다 엎지른 것, 연극, 미술, 음악 관람한 것 등 모든 것이 시제가 되는데 우리는 그 시의 종자를 채취하여 어떻게 합니까? 오늘 시의 종자를 채취하여 오늘 바로 심어서 오늘 바로 열매를 따먹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이지요. 국화가 아무 때나 꽃이 핍니까? 무더운 여름을 나야 꽃이 핍니다. 아니면 암실에 넣어서 일정 기간을 놔두어야 잠을 자고 일어나 밤을 많이 지낸 줄 알고 피지요.

저희 시골집 옆엔 가로등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여름이 되면 그 가로등의 불을 꺼둡니다. 콩이며 들깨, 참깨의 열매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요? 식물도 잠을 자야 열매가 맺히거든요. 감자를 캐서 바로 심으면 싹이 틀까요, 안 틀까요? 안 틉니다. 휴면기간이라는 기간이 있어야 싹이 튼답니다. 아마 40일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듯 시의 종자를 채취하여 가슴에 담아두고 어디다 심을까, 어떻게 심을까 하는 파종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성미 급한 시인들은 오늘이 크리스마스면 오늘 써서 오늘 올립니다. 저희 스토리문학관 사이트에도 그런 일이 왕왕 있습니다. 여름에 겨울시 올린다고 누가 뭐랍니까? 겨울에 여름시 올린다고 누가 뭐랍니까? 꼭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시를 사월초파일에만 써 올려야 된다는 법 있습니까? 내면에 두고 좀 숙성시켜서 제대로 된 시를 내놓아야 보는 사람들이 즐겁지요.

농부들은 봄이 되면 채마는 어디다 심고 콩은 어디다 심고 고구마는 어디다 심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까? 세 이랑으로 심을까 네 이랑으로 심을까. 흩뿌릴까. 발꿈치로 밟고 씨를 놓은 뒤 앞발로 묻을까. 두둑을 만들어 심을까 쟁기로 골을 째고 심을까. 뭐 그런 파종계획 말입니다. 그런 후에 파종을 합니다. 세 알씩 심을까. 네 알씩 심을까 그런 파종 말입니다. 우리 시에서는  정형시 내지 음보격이 그것입니다. 3․3․2조, 3․4조, 4․4조, 7․5조 그런 음보격 말입니다. 시는 노래이니 노랫말로 쓰기 위해서는 시조가 좋습니다.

농부가 참깨 씨를 뿌리고 나면 싹이 난 것을 모두 그냥 기릅니까? 솎아주고 필요 없는 잡초를 뽑아주고, 북돋아주고 하지 않습니까? 한 수박 덩굴에 큰 수박은 세 개 정도만 남겨놓고 나머지 수박을 따버려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큰 수박이 되지 않습니까? 배가 열리는 대로 그냥 다 두면 너무 작아서 상품성이 없지 않습니까? 특히 의미중복이나, 형용사의 사용을 배제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말인지, 불필요한 말은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요? 적합한 시어를 찾아 넣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상품을 포장하는 일이지요. 아무리 사과가 작황이 좋다고 해도 그냥 나무상자에 내다 팔면 제대로 가격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복福자를 쓴 수박이나 합격合格이라 써진 사과를 보셨지요? 그것들은 얼마입니까? 백화점에서는 그런 사과 하나에 오천 원씩 받습니다. 그건 무엇입니까? 제대로 된 상품을 제값 받고 파는 행위 아닙니까? 우리의 시도 제값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지어서 아무 때나 내놓으면 시장좌판에서 ‘골라 골라!’ 떠들며 한 바구니에 천 원에 파는 상한 과일수준밖에 안 되는 거지요. 제대로 된 시어를 넣고, 적합한 제목을 붙여야 합니다. 어떤 시인들은 시집 제목을 ‘가을’이라 붙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 제목에 호기심이 갑니까? 신발가게에 가보셨지요? ‘마당발, 미투리’ 그런 제목 보셨지요? 그건 그래도 많이 생각하고 지은 상호입니다. 그런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신발가게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얼마나 잘 지은 이름입니까? 그렇게 제목을 잘 지어야 그 시를 읽어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냥 시의 제목을 ‘바다, 가을, 우면산. 낙동강’ 등. 그렇게만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전혀 호소력이 없어요. ‘돼지가 바다에 빠진 날’, ‘가을로 가는 기차’, ‘우면산에서 울면서’ ‘오리알로 낙동강을 건지다’ 식의 제목이 되어야 호기심이 발동하지요.

남과 비슷하게 쓰면 그 사람은 늘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패러디 시가 난무합니다. 자신의 경험이 아니면서 마치 자기가 겪은 양 쓰는 시인도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처럼 쓰면 그 뒷줄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바닷가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바닷가의 용어를 공부한들 얼마나 깊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TV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안동지방 사람 역할을 하면서 대구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그것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대본을 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입니다. ‘나’처럼 써야 합니다. ‘나’답게 써야 합니다. 내가 겪고 보고 들은 일만을 남과 다른 시각으로 써야 하는 것이지요. 詩人은 視人입니다.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시각! 그것이 시인의 눈입니다.

나만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박희진의 소나무시, 성찬경의 나사시, 이생진의 바다시, 박재능의 무속시, 이근배의 벼루시, 문효치의 백제시, 장윤우의 금속시……. 모두 누가 침범할 수 없는 그분들의 영역들입니다. 생각을 낯설게 하며 좀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공자를 죽여도 괜찮고 소크라테스의 따귀를 갈겨도 좋으며 신사임당을 정부로 맞아도 좋습니다. 시인은 시공을 초월하며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창조자입니다. 창작이라는 말, 시인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말이니 시인은 하느님과 동격입니다. 우월감과 사명감을 가지시고 창작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붙잡아서 공감 가게 쓰시기 바랍니다. 충청도가 고향인 분은 충청도 말, 경상도가 고향인 분은 경상도 말로 쓰시면 더욱 구수합니다. 억지로 꾸미지 마시고 일어나는 과정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쓰시면 될 줄 압니다. “얘야 점방 가서 막걸리 한 되 받아온나” 어머니가 그러셨다면 그렇게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거나, 세밀한 관찰 없이 느낌만으로 쓰는 시를 경계합니다. 어떤 시인은 ‘죽음’이란 시를 쓰기 위해 공동묘지에서 3일을 지냈다고 합니다.

어떤 시집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하여 마치 한 편 읽은 것과 마찬가지인 시집을 봅니다. 세상이 점점 다양하고 세분화되어가듯 시도 다양해야 합니다. 독자는 시인의 경험을 사려는 것이지 시인의 감상을 사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시집이 안 팔린다고 말하기 전에 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시들이 모두 서로 다른가? 모두 다른 감칠맛을 가지고 있는가? 읽어도 그게 그거 같다거나 아무 느낌이 안 드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선배시인님들께 주제넘게 떠벌이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스토리문학 출신 작가들을 비롯하여, 스토리문학에 발표하시는 모든 시인들의 가정에 행복과 문운이 깃들기를 축원합니다.

■ 김순진
시인.월간《스토리문학》발행인

[수필집『리어카 한 대』(문학공원 刊)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