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수필의 향기

[스크랩] 비 오는 날 밭에서

은빛강 2010. 5. 23. 16:32

비오는 날 밭에서

 

                                                                             사랑열기/이선희

 

작은 빗방울이 후두둑 내립니다. 더운 열기도 가시고 송진가루도 날리지 않고 비님은 그렇게 소리 없이 내립니다. 밭 한가운데 서서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맘도 차분히 가라 앉습니다. 불현듯 누군가가 생각나 애틋한 분위기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감성도 촉촉해지는 이 시간에 순무도 상추도 촉촉이 젖습니다. 파도 열무도 당귀도 에너지가 넘칩니다.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농작물들, 언제 와도 쉬어가게 해주는 밭. 작년에는 비오는 날 보랏빛 가지꽃을 보고 맘도 보랏빛으로 변했는데, 올해는 노란 배추꽃이 비 속에서 침묵으로 말을 합니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생활 속에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지요.

화려함을 버렸습니다. 번잡함도 버렸습니다. 홀로 있기 위해, 사랑을 갈망하지만 스스로 서기 위해 시골 생활을 택했습니다. 홀로 있기는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의 정원이며 외로움이 열매 맺는 곳입니다. 끝없는 일로 지친 몸,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마음을 위한 쉼터입니다. 홀로 있기 위해 물리적인 공간도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음으로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데 영성생활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영성가들은 신을 만나기 위해 광야로 나갔습니다. 삭막한 사막에 나가 일상의 번잡함을 버리고 오로지 신만 생각하는 그들, 이런 곳에 머물기 쉽지 않을 텐데, 그리고 무척 두렵고 불안했을 텐데 그들은 자신을 흡족하게 해줄 무엇을 찾아 쉽게 흔들리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신을 만나고 평화를 누렸으리라 짐작합니다. 홀로 있기는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마이클 포드는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에서 오히려 홀로 있으면서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악마를 만나고 탐욕과 분노도 느낀다며, 인정이나 칭찬을 받고 싶은 강한 욕구와 대면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고 버티면 “겁내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너를 이끌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가리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을 만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홀로 있고 싶습니다. 산속 오두막이라도 가야할 듯싶습니다. 전기도 수돗물도 안 들어오는 그런 곳에서 살려면 얼마나 용기를 내야 할까요.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의존하지 않고 소유하는 사랑을 하지 않기 위해 내 맘은 늘 오지에서 홀로 있기를 갈망합니다.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않고 새와 이야기 하고 나무와 이야기하는 그런 생활 갈망합니다. 내 영혼은 그 갈망으로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밭에는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사람들 소리가 들립니다. 근처 공사장에서 기계소리도 들립니다. 영혼은 또 목말라 합니다. 그러면서 홀로 있기로 돌아가고 돌아가라 외칩니다.(2010년 5월 22일)

출처 : 창조문학가협회
글쓴이 : 사랑열기/이선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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