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수필의 향기

[스크랩] 꽃잎처럼 바람처럼

은빛강 2010. 6. 1. 00:09

                                   꽃잎처럼 바람처럼

 

                                                                           조 순 제                     

                                                      

옆집 505동 21층 옥상에서 며칠 전에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17세 소녀가 검은 허공에 꽃잎처럼 몸을 날려 66미터 아래 아파트 화단 위에 3월의 동백꽃 보다 더 진한 생을 떨어뜨렸다. 고교 2학년인 여학생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야바”라는 마약을 과다 복용한 환각상태에서 추측컨대 환상의 세계로 비상하는 몸짓을 취했거나, 의도적으로 자신의 결말을 천공에 맡겼거나, 아무튼 충격적인 소녀의 죽음에 주민들은 연민과 동정으로 혀를 찼다. 뒤에 밝혀진 얘기지만 금융위기로 인한 부모의 실직에다 대학 진학의 길이 불투명한 좌절감과 강박관념에서 스스로 고통과 절망의 늪을 허위적대다 불순한 동료와 환경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결과라 한다. 우리들 주변에서 아픈 시대를 겪고 있는 트라우마 세대가 경험하는 비극의 단면을 앞당겨 체험한 꼴이 된 셈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여기까지 병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오늘날 세계인구의 4.1%인 16250만 명이 마약중독자이고, 우리나라도 2009년 상반기까지 적발된 마약사범이 5500명에 달하며, 음지에 숨은 중독자를 합하면 참담한 수치에 달하리라. 마약은 한 인간의 총체를 분렬시키고 파멸로 몰아갈 뿐 아니라, 한 나라의 국운을 뒤흔들어 전쟁을 유발하기도 하는 역사적인 사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가공할 위력인 이 독약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있는데, 황금의 양모피를 구하기 위해 아르고선을 탔던 영웅 이아손의 얘기 중에는 버림받은 조강지처 메데아가 두 아들을 학살하고 며누리까지 마약으로 독살했다는 내용이 있다. 기원전 3400년 경 인류 최초의 문명인이었던 수메르인들은 신神의 약초로 일컷는 양귀비를 재배하였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슬픔을 잊기 위해 또는 고통을 수반하는 질환에  아편을 환丸으로 만들어 수시로 복용하거나 음료수에 타서 마셨다 하니  치료약이 별로 없었던 당시에 얼마나 마약을 남용하였나를 짐작케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겸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마리화나를 즐겼으며, 아편이 인류문화 창조에도 적잖이 기여하였다 하여 빅토르위고, 섹스피어, 보드레르, 장콕토, 말라르메, 에밀리브론테 등 다수의 문인들 사이에는 마약의 몽환적 특성을 창작에 접목시켜 한동안 대마초 흡연이 유행이었다고 전해진다.

 아편은 7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중국으로 전래되었는데, 漢나라 말기에 화타라는 한의사가 아편으로 마비탕을 만들어 수술전 환자에게 음복케 한것이 의약품으로서의  적정 마취제 구실을 했지만, 혼동과 착각, 환각의 묘한 약리작용의 매력으로  핍박과 육신의 고통을 잊기 위한 농민들의 중독자 증가는 농촌경제의 파탄과 구매력 상실로, 군인 관료들의 아편 흡식은 국가 기능 마비로, 정신의 환몽적 경지를 추구하는 상류계급의 마약 선호는 나라 경제의 근간을 흔들어 淸나라 인구의 다수가 아편 중독자로 신음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영국은 청국의 차茶를 수입하는 대금으로 인도산 아편으로 결제한 꼴이 돼버린 아편전쟁 얘기는 너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정녕 19세기는 마약으로 흔들리던 시대였다. 남북전쟁 후, 대륙횡단 철도부설 대공사를 착공한 미국은 소요되는막대한 노동력을 구라파나 동남아(특히 중국)에서 조달하였다. 황홀한 마약의 묘미를 체험한 차이니스들은   비천하고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 육체적 천대와 고통의 카타르시스를 아편에 의존했고 전후의 흑백 갈등으로 동물적인 학대에 신음하던 흑인사회의 마약수요 또한 급팽창하여 1920년대에는 마피아가 개입하면서 마약시장의 범죄성은 본격화 되었는데, 미 정부와 CIA가 흑인을 노예상태로 예속시키기 위해 마약을 활용했다는 일설도 있다. 한편 중남미의 안데스 산맥과 코럼비아,페루,볼리비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코카나무잎 제제인 코카인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미대륙의 66번 고속도로는 헤로인이나 코카인의 운송로로 지칭되기도 했다. 

 고층 아파트 잔디밭에 붉은 꽃잎으로 날아오른 소녀의 영혼을 휘감은 "야바"는 세계적인 헤로인 거래조직의 거두인 쿤사의 작품이다. 그는 미안마, 타이, 라오스 국경지대인 Golden triangle 에서 세계 양귀비 생산량의 50%를재배하여 미국 헤로인의60%를 공급하면서 기존의 마약보다 환각효과가 뛰어나고 중독성이 강하며 약효가 36시간 지속되며 가격이 저렴한 (한 알에 100바트, 한화로3000원) "야바"를 개발 하였다. 히로뽕과 몇 가지 마약을 합성 제조하는 이 약물은  10~15만원 하는 히로뽕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여 청소년이 접하기에는 너무나 용의하다. 반입수법도 APO나 여행객을 이용하는 위탁반입 따위의 방법이 아닌, 비닐로 소단위 포장하여 위속에 삼키고 온다니 참으로 결사적이다. 헌데, 또하나 놀라운 사실은 아이도저(i~doser)라는 사이버 마약이다. 특정한 음을 지속적으로 들려주는 MP3 파일 70여 개로 이뤄져 있는데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알파파, 지각과 꿈의 경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세타파, 긴장과 흥분을 유발하는 베타파로 뇌를 자극해 심리상태를 조절해 황홀감을 도출해내는 판국이니 어찌 세상이 이지경으로 가는가 싶다.

 쿤사는 죽었지만 야바는 살아 번지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마약 중에 성욕은 번식과 쾌감을 위해 본능에 붙여 놓았으니 운명적으로 감수해야겠지만, 아편 만은 한사코 거부할 지혜를 주었다고 본다. 과학이 발전하면 그 진도에 상응하는 부작용의 발생은 우리 인간이 풀어야 할 몫일 것이다. 퇴치할 수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 고통을 정화하는 정신적 제도적 장치가 확고하지 않는 한 인류 역사와 함께 내려온 마약의 생명은 끝없이 지속되지 않을까. 필자가 알고 있는  20종의 마약을 국가의 강제력으로 방어하기엔 역부족이고 , 사회환경 개선과 맑은 영혼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의 명석한 슬기에 의존할 수밖에는 묘안이 없는 것같다.

 이 아침 아들의 소지품에서 20년 간 끊었던 담배 한 개비를 뽑아들고  라이타에 불을 켜본다. 담배연기 속에서 17세 소녀는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난 듯 활짝 웃으며 "그것도 마약이예요" 일갈하고 神이  부른다며 훨훨 푸르게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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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선생님
출처 : 大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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