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꽃들의 일기

은빛강 2011. 6. 2. 07:03

꽃들의 일기

박찬현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아 무거운 눈꺼풀을 양손으로 비벼 잠을 깨운다.

아마 초등 입학 전일 때 일 것이라 짐작한다.

햇수가 오래된 감나무들이 선 골목을 걸으며 감꽃을 원피스 가득 주워 담아 집으로 돌아오면 할아버지께서 무명실에

그 감나무 꽃을 꿰어 주시면 나는 목에 걸고 다니며 꽃 한 송이씩 뜯어 먹었다.

도톰하고 엷은 봄날색 꽃은 달콤하고 약간 떫은......,

 

아주 오래전에 강점기시절 지어진 학교 건물 둘레에는 키 큰 미루나무들이 땅으로 머리를 고꾸라뜨리며 쓸어내린 곳에는

그야말로 아카시아 꽃향기가 수면을 만들듯 그곳에 서는 이들을 모두 향기를 부어준다.

아카시아 꽃 몇 송이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리고 주변에 만개한 화사한 매력적인 이름 모를 꽃잎들 지천이던 곳,

 

며칠 전 우뢰가 심하던 전날 어디서부터 실려 온 것인지 라일락 향이 우울한 머릿속을 말끔히 헹구어 내어주었다.

해마다 실려 오는 라일락 향이 몹시도 넉넉했다.

뒷날 새벽,

어둠을 이리저리 가르며 우뢰가 요란했다. 자동차 센서들이 낙뢰 소리에 이곳저곳에서 제 주인들을 마구 불러대었다.

그런 시간 문자 두 통이 왔다.

한 달 전에 지병으로 입원한 초등 동창이 운명했노라고......,

나는 언젠가부터 눈물이 메말라있었다.

그래서 가슴만 무겁게 아팠다.

이세상과 저쪽 세상이 어찌 다른지는 모르지만

전날 실려 온 라일락 꽃잎 만개한 그 평화로운 곳으로 가기를 빌어 보았다.

서로 가는 날은 다르지만 미리 가서 지금 슬퍼하는 벗들의 자리도 만들기를......,

 

내 조모님이 생전에 한쪽 폐에 문제가 심하여 나는 할아버지와 깊은 산엘 갔었다.

세상 때 묻지 않은 참꽃[진달래]를 따라 갔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못할 그 높은 고도의 소백산맥줄기에 내가 갔다 왔다는 게 영 믿기지 않는다.

너무 목이 말라 진달래를 훑어서 먹었다.

달콤하고 청량한 연보라색 진달래 꽃잎 맛은 그러했다.

그라고 그 꽃으로 할머니의 폐를 달랬던 아련한 기억......,

 

봄이 왔다가 갈 무렵이면 나는 꽃잎들에게 던져 둔 아련한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읽어 본다.

아, "-J- 야! 등교 길 네가 준 진달래 한 아름 화병에 꽂아 두지 않고 꽃잎 하나하나 먹었단다. 고마워!"

마음이 유독 선한 우리 친구들 모두 모였겠구나,

나는 멀리 못나가지만 배웅 잘하고 와

라일락 향이 실려 오면 너인 줄 알거야.

늘 행복하고 평안한 영면이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