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속 외침

나는 16킬로미터를 걷겠습니다.

은빛강 2011. 8. 1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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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0마일(=16킬로미터)을 걷겠습니다. ◈◈




    거룩한 사제들이 미사를 거행하는 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들은 미사를 드릴 수 없을 때면 큰 고통을 느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는 동료 수사신부에게 말하기를 "내가 더 이상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거든, 나를 죽은 사람으로 간주하시오." 라고 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9개월의 감옥살이 동안, "가장 큰 고통은 미사를 드릴 수 없고, 성체를 모실 수 없는 것이었다." 라고 회상하였다.

    성인들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장애물이나 어려움도 개의치 않았다. 성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리오리는 나폴리의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심한 복통을 느꼈다. 그와 동행하던 수사 한명이 성인께 걸음을 멈추고 진통제를 먹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날 아직 미사를 드리지 않았던 성인은 곧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나는 미사 성제를 바치기 위해서라면 이 상태에서 10마일(16킬로미터)이라도 더 걷겠습니다."

    당시에는 영성체 전의 공심재를 자정부터 지켜야 했으므로, 성인은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공심재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는 고통이 좀 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당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언젠가 카푸친회 수사신부였던 성 라우렌시오 브린디시는 이단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지방을 거쳐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가톨릭 교회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성인은 성당이 있는 곳까지 40마일(64킬로미터)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성인은 "저에게 미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 라고 말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프로테스탄트 도시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 강 건너편에 있는 성당까지 가야 했다. 그런데 가을 우기로 접어들자 가물이 불어나서 작은 다리가 물살에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성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리가 있었던 곳에 통나무를 가져다 놓고 그 위로 건너 다녔다. 그런데 겨울이 되자 얼음과 눈 때문에 통나무가 미끄러워서 자칫하면 강에 빠질 상황이었다. 이에 성인은 통나무 다리에 걸터앉아 기어서 강을 건넜다.

    우리가 제대 위에서 갈바리아 산 위의 희생을 재현하는 미사 성제의 신비를 충분히 묵상하기란 쉽지 않다. 이 지고한 하느님 사랑의 경이로움에 대해 충만한 신심을 가지기도 어려운 일이다.

    성 보나벤뚜라는 "미사 성제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 모두를 펼쳐 놓으시는 하느님의 역사(役事)입니다. 어떤 의미로, 그것은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모든 은총들을 종합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 요한 보스코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미사 성제에 참례하도록 애쓰십시오. 평일에도 그렇게 하십시오. 이렇게 훌륭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불편함을 좀 겪더라도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주님께로부터 온갖 축복을 풍성히 받으실 것입니다.


    ◀◀◀ 성체성사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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