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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23일 Facebook 첫 번째 이야기

은빛강 2012. 2. 2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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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속의 노래10 [현대소설] - 박찬현


    등록일 2009-03-21 16:07:14


    10.밤의 질주



    어둠이 너울처럼 마을을 덮었다.



    장이 서는 동리는 전기가 들어 왔지만 고개 너머에 있는 농가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석유로 등잔을 밝혔다.



    큰 대문을 동쪽과 남쪽으로, 두 곳에 소유한 집은, 본채를 들어가기 전 운동장만한 마당이 있고, 대문 두 개만 빼고 둘레에 큼지막한 창고가 들어 서 있다. 작은 동리지방을 관장하는 군청에서 가을, 벼 공판장과 누에고치 공판장을 위해, 여러 채의 대형 창고를 지어 놓고 군청에 대여를 한다. 창고는 마을의 오분의 일 정도의 너비로 동네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큰 대문은 차마와 트럭이 드나들기 쉽게 하기위하여 널찍하다.



    신작로 쪽에 석유와 담배를 파는 가게를 열었고, 벼 수매 업도 함께 했다. 그래서 그곳에도 창고가 지어져 있다.



    그 가게에서는 그 집 젊은 머슴이 잠을 잔다. 가끔은 주인 이씨가 와서 가게를 지킬 때도 있기는 했다.



    그 집의 농사 양도 많은 관계로, 곡물을 마당에 널어 말리는 철이 오면 주인 이씨가 거의 가게 쪽에서 잠을 잔다.



    더러, 고개 너머 마을에서 등잔용 석유가 필요해서, 밤에라도 자전거로 사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가끔씩 깨어나기도 해야 한다.






    밤은 사람들을 깊은 수면 속으로 자석처럼 이끌듯, 몰고 가고 있었다.



    그날은 주인 이씨가 가게에서 자고 있었다.



    화기에 조심을 해야 하는 석유인지라, 그 창고는 가게를 따라 지어진 창고가 ㄴ자로 끝나는 곳에 달려 있다. 거의 ㄷ자 형태이지만, 작은 골목 하나를 마을 사람들을 위해 창고 사이로 터 주었다. 그 사이 마당 중앙에는, 주민들을 위한 우물이 하나있었다.



    마당 쪽에서 어둠 속에 섞여 앉은 고요를 가르며, 양철통 소리가 ‘철그럭’ 거리며 났다.



    이씨는 우물을 길으러 온 동리 아낙인가 하고, 작은 유리창 사이로 불 꺼진 방안에서 마당을 주시했다.



    머리를 산발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석유 창고 문을 열고 있는지 움직임의 동선이 커 보였다. 처음에는 너무 놀란 이씨는 멈칫 했다. 그러나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 있었다.



    늘 노래처럼 떠들어 대던, 전 여사의 말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씨는 소리 없이 창고 안쪽으로 걸어서, 석유가 있는 곳 까지 갔다.



    어둠 안쪽에서 바라 본 산발한 장본인은 제일상회 여자였다. 한 쪽문을 열어놓고 땅 속 석유 탱크 주유 구를 열어 놓은 채, 그녀는 열심히 양동이에다 석유를 퍼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황당했다. 그러나 이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그녀의 등 뒤로 가까이 걸어 가, 그녀의 손목을 힘 있게 움켜잡았다.



    화들짝 놀란 제일 상회 여자는, 정신없이 양동이에 퍼 담던 석유 바가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는 부르르 떨고 있었다.



    창피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는 듯, 해보였다. 이씨 눈에는......,



    오히려 화를 참지 못하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기 까지 하고 있었다.



    이씨는 “오늘 밤에 있었던 이 일들을 잊어버릴 테니, 다시는 이러지 마시오!”라며 타이르듯 돌려보냈다.



    어차피, 앞으로 안볼 사람도 아니고, 이웃 사람이니 없었던 일로 덮어 두려 했다.










    가끔, 제일 상회 여자가 밤중에 등잔을 켜기 위해, 석유를 사러 긴 유리로 된, 청주 대병을 들고 가는 이들을 문 밖을 지키고 있다가, 그러한 용무의 손님들을 손짓으로 불러 들여 제일상회에서 석유를 사가도록 했고, 또 판매를 했다는 그 소문의 진상은 그날 드러난 셈이다.



    이튿날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온 제일상회 여자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양 이씨에게 목례를 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오히려 이씨가 얼굴이 붉고 난처해서 시선 둘 곳을 찾아야 했다.



    그녀는 양동이에 물을 길어서 총총히 자신의 집 쪽으로 사라졌다.



    이씨가 자신의 집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골목을 지나, 제일상회와 청운상회가 나란히 있는 마당을 가로질러야, 큰 대문이 기다리고 있다. 대문을 향해 가던 이씨는 마당을 쓸고 있는 그녀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진지하게 계속 마당을 쓸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들렀다가, 안주인인 ‘안동 댁’에게 그 이해 할 수 없는 간밤의 이야기를 흘렸는지, 며칠이 지나서 안동 댁은 홍희 어머니에게 다녀갔다.



    청운상회 전 여사의 그 허황한 이야기가 순 거짓은 아닌 것임에, 자못 놀라는 눈치들이였다. 앞으로 제일상회의 입장이 걱정이 되는 듯이 이야기가 오고갔다.



    “며느리도 들이고, 사위도 보았는데 정신을 차려야지 어쩌자고 그런 작태인지 모르겠네,”



    “아들 며느리가 안중에도 없나 보네,”



    “이제 손자들이 커 가면 장차 이 행실을 어찌 할꼬?”



    “형편도 넉넉한데, 도무지 그런 일들을 왜 하고 다니는지 이해를 못 하겠구먼,”



    “행색은 또 어떠하며......,”



    두 여인은, 자신들의 근심을 떠안은 양 혀를 차며, 걱정의 끈을 쉬 놓지 않았다.



    “차후,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눈에 뛰면 큰일 아니겠는가,”



    “장차 이 일을 어찌 할꼬, 예사 일이 아니네......,”



    “우리야, 행실을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지만, 어디 남들이 봤을 때 누구인들 가만있겠는가?”



    그렇게 무슨 방도 책이라도 찾을 양 했으나, 별 신통한 방법은 나와 주질 않은 듯 했다.



    “좀 지켜나 보세나,”



    우선은 지켜 볼 방법 밖에는 없는 모양이다.



    진심으로 이웃 여인네의 알 수 없는 행각을 풀어보고, 그 실낱같은 한 오라기를 잡고 도움이 될 궁리들을 여전히 하면서, 안동 댁은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제일상회 장남이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머리를 마주 조아렸던 두 여인네에게, 장남은 차문을 닫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의 인사를 건네받는 두 여인네의 얼굴에 또 한 번의 근심이 스쳐 지나갔다.



    사회로 성장한 아들의 언덕은 어미의 자리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것인데, 그러하지 못한 처지가 안타까워 보였다.










    달포가 지났다.



    눈을 뜨다 만 초승달이 떴다. 별들도 총총히 떴다.



    곡물시장을 내려가는 어귀에 신발상회를 하는 방씨 집에는 삼천리 연탄상회를 옆에 붙여서 하고 있다.



    연탄 상회이다 보니, 양철로 만든 문을 뗐다 붙였다 하는 식의 문으로 여 닫고 했다.



    방씨는, 길 건너 공동 화장실을 이슥한 밤에 다녀오는 길이였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허연 옷을 입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서는 이가 양철 문을 떼어 내고 있었다.



    방씨는 하는 짓이 가관인지라, 그냥 조금 가까이 와서 그 행동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들고 온 큼지막한 양은 대야를 문 앞쪽에 놓고, 연탄을 조심스럽게 한 장씩 옮겨 담고 있었다.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기척도 모르는 채 열심히 담았다.



    방씨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여자 힘으로 한 번에 들어올리기란 버거운 일일 텐데,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커다란 함지박 같은 대야를 머리 위로 옮겨 갔다. 그리고 몸의 중심을 잡으며 그녀는 조심스럽고 빠르게 발을 옮겼다.



    방씨는 아주 재빠르게, 그녀의 손을 콱 움켜잡았다.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머리에 인 연탄 그릇 만큼은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는 쉽게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길 거부 했다.



    멀리서 보아 그 둘은,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이의 실랑이로만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꿋꿋이 연탄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방씨는, 그녀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아주머니! 남의 물건을 여 가시면서 안 내려 놓으시려는 의중은 무엇이요?”



    “......,”



    “모르는 안면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연탄을 그녀의 머리에서 내려놓길 바라던 방씨가 그녀를 올려 다 보며



    “혹, 돈으로 계산 할거라는 말씀을 하려는 생각이세요?” 그는 앞 질러서 혼자 대답하듯 말했다.



    “돈으로 계산 하실 거면, 벌건 대낮에 오셔서 사시던 가 주문을 하면 되지, 이 밤중에 이러한 행동을 제가 어떻게 이해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녀는 이씨네 석유상회에서 같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방씨는



    “지금 저한테 무슨 불만이십니까?”



    그래도, 그녀는 바들바들 손목을 떨었다.



    “아주머니, 생각 좀 해 보세요? 아주머니 형편이 여의치 않다면 제가 그냥 드릴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그녀는 그를 쏘아 보고 있었다.



    정씨는 끝내 어이가 없는지 그녀의 손목을 놓고



    “자, 아주머니 그냥 가십시오.”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 둘 테니까, 차후에는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서로 낯 보기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어서 가세요.”



    정씨는 그녀를 달래듯 돌려 보내려 했다.



    그러자, 그녀는 종국엔 연탄을 머리에서 내려놓았다.



    오히려, 독이 오른 채 쏘아보는 그 얼굴이 왠지, 시간을 끌어서 좋을 리 없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 이였다.



    돌아서 가는 그녀에게 한 마디 덧 붙였다.



    “거 제발 옷도 제대로 입으시고 그러세요.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횡 하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버렸다.



    정씨는 연탄을 제자리에 들여 놓으며 혼자 소리를 뱉었다.



    “도대체 저 양반 왜 저러시는 거야?”



    “남편, 자식 다 있으신 양반이 뭐가 부족해서 이 밤중에 이런 짓을 하시나?”



    그러면서 혀를 찼다.



    “저러시니 전 여사가 입찬말을 퍼붓지......,”



    그녀는 멀리 사라진 게 아니라, 돌아 선 모퉁이에서 방씨의 말을 끝까지 엿듣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시퍼런 독기가 퍼져 나왔다.



    방씨는, 등 너머 오싹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탄을 들여 놓고 양철 문을 끼워 맞추어 닫았다.



    뜨다 만 눈처럼 떠 있는 초승달마저, 게슴츠레 한 눈으로 밤을 노려보고 있다. 그녀는 그런 밤과 동화 되어서, 어둠은 자신의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바람을 가르고 골목을 오밀조밀 타며, 칠흑 어둠속으로 획획 스며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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