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승하 시인님 방

이승하 시인-스크랩

은빛강 2009. 1. 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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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인터뷰 | 대담:김금희(수필가, 단국대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김금희 :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난 4월 협성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문예창작학회 제14회 학술세미나에서 뵙고, 또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선생님과 10여 년 전에 만난 인연이 또 보태지니 이래저래 이런 자리에서 뵙지 않을 수 없나 봅니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셔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 이승하 시인
이승하 : 사람이 늙지 않는 비결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시는 젊게 써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김금희 : 선생님께서는 84년 등단 이후 9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김영탁은 선생님의 시세계를 “지독한 사랑과 광기, 그리고 다시 사랑 앞에서”라고 말했습니다. 권혁웅은 “고통의 기원 탐구에서 동시대인들과의 화해로”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선생님의 시에서 과거의 아픈 상처들이 치유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실제로 과거의 아픈 상처들이 치유되었습니까?

이승하 : 물론이지요. 랭보가 상처 없는 영혼은 어디에도 없다고 갈파했었고, 저의 은사이신 구상 시인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파른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제 힘으로 지고 가기 어려운 무거운 십자가를 시를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고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썼기 때문에 제게 고통의 사슬을 채웠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고 시 덕분에 자살의 유혹도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김금희 : 선생님께서는 「나는 왜 시를 쓰는가?」라는 글에서 “데뷔작(「畵家 뭉크와 함께」) 만한 시를 20년이 다 되도록 단 한 편도 쓰지 못하고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대표작으로는 모두 최근 작품들을 올려놓고 있습니다.-잘못된 질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승하 : 그 글은 5년 전에 쓴 것일 겝니다. 사실 저는 등단 25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못 썼습니다. 제가 시를 쓰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제 시에 대한 절망감이지요. 제 시가 실린 문예지가 집에 오면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 되곤 합니다. 아, 정말 날이 갈수록 시가 점점 더 안 돼요.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제 데뷔작은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연상시키고, 말더듬이 화법도 특이해서 그런지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그 시를 아는 사람이 않은데 그만한 시를 제가 아직도 못 쓰고 있으니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김금희 : 선생님께서 선택한 시어 가운데는 지렁이, 개미 외에 갯벌에서 사는 것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이승하 :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들은 미물이지요. 우리가 보잘것없다고 취급하는 그것들 하나하나가 다 생명체 아닙니까. 우리 인류보다 생존의 역사가 더 길었을 것이고 아마도 더 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지상의 뭇 생명체를 못살게 구는 데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왔습니다. 일본 NHK 위성방송 ‘생명의 묵시록’ 팀에서 펴낸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이란 책을 봤더니 20세기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이 2백 몇 십 종이라고 해요. 전부 인간이 멸종시킨 것이지요. 최근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멸종이 우려되는 4만여 종의 동식물을 조사해 보았더니 이 가운데 40%인 1만6천여 종이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발표한 것 중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연구 대상이 된 4만여 동식물의 개체 수가 지난 10년 동안 90%나 줄었다는 것이다. 이 모두 인간의 욕망 때문이지요. 잡아먹고, 박제하고, 서식지를 없애고…….

▲ 김금희 수필가
김금희 : 요즘 먹는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광우병 소를 비롯하여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 등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방법과 공정 방법이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2005년도에 발행한 선생님의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중에 「닭을 잡던 날」이라던가 「수술대 위에 놓인 돼지」, 「문명 혐오자에게」 등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승하 : 그 시집을 준비하던 무렵은 집의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무진장 고생할 때였습니다. 온 가족이 육류를 멀리하고 초근목피로 살아가다시피 했는데 그 생활에 익숙해지니까 오히려 몸이 개운하더라구요. 우리 조상은 된장이며 김치 같은 발효식품을 먹고 살아갔기에 성인병이 거의 안 결렸는데 지금은 식단이 지나치게 서구화되어 있습니다. 구제역, 에이즈, 광우병, 조류독감, 사스, 아토피성 피부염 등은 우리가 어렸을 때는 없던 질병 아닙니까. 그 시집에는 욕망의 포화상태가 초래한 질병에 대해 제 나름대로 진단해본 시가 몇 편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생태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갖고 있던 것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물장구를 치며 놀았던 하천치고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거든요. 그런데 대운하까지 만들어진다니 정말 절망스럽습니다.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은 자연이 우리에게 복수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금희 : 결국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선생님의 저서 󰡔��한국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말미의 ‘시인과의 만남’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구도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구상․김춘수․오세영 세 분을 들었습니다. 왜 한국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말미에서 이 세 분을 말씀하게 되었는지요.

이승하 : 구상 시인은 구도자적인 자세로 진리의 증득(證得)을 위해 일생 동안 사투를 벌인 시인이었고 김춘수 시인은 형식적인 미학의 완성을 위해 무의미라는 극단까지 갔던 시인입니다. 오세영 시인은 고도의 정신적 집중력을 가지고 견고한 언어의 집을 만들어온 장인적인 기질을 가진 시인입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그 책을 낼 무렵에 이 세 분을 모두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 인터뷰 기사를 그 책의 말미에 실었던 것입니다. 인터뷰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구상 시인은 따뜻한 분이었고 김춘수 시인은 냉철한 분이었고 오세영 시인은 강직한 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상 시인은 우리 문단에서 평가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금희 : 소설가 황석영 선생님은 독일의 󰡔��디 아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문학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반문하면서 “새 세기에 들어선 지금이야말로 한국현대문학은 표현의 자유의 토대 위에서 다양한 경향과 모습으로 세계 속에서 자신과 인간 가치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해 가고 있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시문학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위기라고 합니다. 이 점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며 시문학이 위기라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이승하 : 글쎄요, 제가 답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 시의 위기는 시집 판매량의 현저한 저하, 시적 담론 생성의 부재에서 연유한 것이겠지요. 시는 엄청나게 많이 발표되고 있지만 독자가 환호하는 시나 평단에서 주목하는 시가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할까요. 요즈음 서점가에서는 전통의 베스트셀러 시인인 류시화․원태연‧이정하‧용혜원․이해인의 시집이 예전만큼은 나가지 않는다고 해요. 그 대신 김용택․안도현․정호승․도종환 시인 등 문학권에서도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분들이 편집한 사화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나라도 시집이 외국처럼 동인지의 형태나 자비 출간의 형태로 존속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70~80년대 같은 시의 전성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가 어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 시스템에서 낭송하고 즐겁게 짓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시가 어렵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부산에 사시는 나이 드신 독자한테 편지를 받았는데 자기는 김경주 시인의 시를 이해도 못하겠고 조금도 안 좋은데 이 시인이 왜 유명해졌냐고 물어왔습니다. 제가 중앙대 문창과 교수니까 정답을 가르쳐줄 알았나 봅니다. 저도 모르겠다고 했지요. 시인이 독자와 소통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아닌게아니라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김금희 : 선생님은 오랫동안 재미동포들의 문학지인 계간 󰡔��미주문학󰡕��의 계간평을 쓰셨지요? 선생님의 저서 󰡔��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를 보니 연변 조선족의 중․고등학교 교과서 연구와 함께 대단히 따뜻한 시선으로 재미동포들의 시를 연구해 놓으셨더군요. 그간 ‘재외동포문학’이니 ‘해외동포문학’이니 했던 말도 이제 ‘디아스포라문학’이라는 용어와 함께 그 영역을 넓혀주고 있습니다. 특히 연변 조선족 교과서 연구는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관해 좀 더 듣고 싶고,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승하 : 세계화, 국제화를 말로만 부르짖지 말고 재외동포문학에 대한 관심부터 갖자는 뜻에서 재미교포의 시와 재중국 조선족의 시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한글로 쓴 작품이기에 제가 읽을 수 있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대학원생들과 아예 한 학기 내내 재외동포문학 강독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고요. 일본의 수다한 문학상 중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상은 1935년 문예춘추사가 창설한 아쿠타가와상이죠. 이 상의 수상자 중 재일 조선인이 4명 끼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이회성의 「다듬이질하는 여인」, 이양지의 「유희」, 유미리의 「가족 시네마」, 현월의 「그늘의 집」이 일본어로 씌어졌다고 하여 네 사람의 국적을 들먹이며 일본 국적을 갖고 그 작품을 쓰지 않았느냐고 흠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네 사람 모두 한국인 이름을 갖고 그 작품을 썼고, 특히 이회성과 이양지는 재일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정신적인 고뇌와 실질적인 고통을 작품에 담아내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그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것도 몇 번이나 후보에 오른 끝에 말입니다. 이 상의 후보작에 이름이 오른 재일 조선인 작가는 10명이 넘습니다. 김사량·김달수·김석범 등 제1세대 작가의 뒤를 이은 이들의 활동은 이제 일본문학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재일 조선인 작가의 활동을 먼산 불 보듯이 하며 너무 소홀히 대했던 것은 아닐까요.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려보아도 동포 작가의 활약상은 눈부십니다. 국내 언론에 자주 등장해온 재미 한인 문학의 대표자인 강용흘·김용익·김은국·차학경·노라 옥자 켈러·수잔 최·이창래·돈 리 등은 미국 주류 문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호주 문단에서는 김동호가 튼튼히 버티고 있습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탄탄한 영어 문장으로 씌어져 그쪽 나라 사람들에게도 교과서적 전범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영미권에서 한국문학을 만만히 보지 않는 이유도 국내 작가들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활약상 덕분이라고 합니다.
  김학철로 대표되는 재중국 조선족문학은 한글로 발표되어 왔기 때문에 외국문학 전공자가 번역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연변 조선족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김성휘·김철·리상각·리욱·박화 등 우리에게 낯선 조선족 시인들의 작품도 조금씩 소개, 연구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창작되는 구소련 지역 고려인문학은 아나톨리 김이라는 걸출한 작가를 낳았습니다. 이분 외에도 소설가 미하일 박, 시인 리진과 양원식, 극작가 라브렌띠 송 등의 활약이 두드러져, 광활한 러시아 들판에 '고려인'의 기개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이들 문학에 대한 연구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활기를 띠고 있지요. 한국문학평론가협회와 국제한인문학회가 선봉에 서서 본격적인 자료 수집에 나서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세미나도 개최하는 등 재외 한인 문학 연구와 문학인과의 교류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뜻 깊은 일입니다. 저는 1999년에 계간 시전문지 󰡔��시안󰡕��이 주최한 '백두산의 원형 심상과 문학적 상상력 세미나'(개최 장소는 중국 연변)에 참석하여 재중국 조선족 문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조선문학' 하면 북조선의 문학을 전범으로 알고 공부해 왔는데 근년에 들어 남조선의 문학을 아주 활발히 소개, 연구하고 있다면서 통일한국의 미래를 우리 문학인이 이끌어가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2004년 8월 중순께, 미주한국문인협회의 초청을 받아 협회의 여름 문학 캠프에 가서 시 창작에 관해 강연을 했습니다. LA 근교에 있는 '꽃동네'에서 행해진 캠프에는 LA는 말할 것도 없고 샌프란시스코·오리건주·메릴랜드 등에서 온 문인과 독자가 무려 60여 명, 국내 어느 여름 문학 캠프에 못지않은 열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문학 세미나는 대개의 경우 발표가 있고 난 후 토론자의 질의, 발표자의 답변, 청중의 질의, 발표자의 답변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뒤풀이 자리로 서둘러 가는 가게 마련인데 협회는 첫날을 강연으로, 둘째 날을 청중들과의 질의·응답으로 치밀하게 일정을 짰습니다. 질의·응답만 해도 2시간 넘게 진행되었으니 알짜배기 문학 캠프였습니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이기에 60여 명 행사 참여자는 모두 상당한 거리를 차를 몰고 왔습니다. 제가 보건대 그분들은 미국에서 둥지를 틀기는 했지만 모국어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애써 돌보고, 잘 갈무리하는 애국자들이었습니다. 한국 내에서 문학이 위기다 사양길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나라 밖에서는 이렇게 활발히 문학의 밭을 일구어 왔고 일구고 있는 동포 문인들이 있습니다. 참 고무적인 일이지요. 재외 한인 문학인과 국내 문학인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기를, 재외 한인 문학의 국내 소개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기를 소망하면서 저는 그 책의 글들을 썼습니다.

김금희 : 지난 4월 한국문예창작학회 제14회 학술세미나에서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시가 기호에 대한 시였고, 최근에 󰡔��현대시학󰡕��(2008. 4.)에 발표한 시 역시 기호에 대한 시였습니다. 이런 시를 쓰게 된 어떤 동기라도 특별히 있으신지요? 이러한 시를 통해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요?

이승하 : 그때 세미나 자리에서도 말했었고, 시를 발표하면서도 시인의 말에서 한 것인데 짧게 되풀이하면 이런 것입니다. 문자나 부호도 기호의 일종이죠. 기호는 문명사나 문화사적으로 보아도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현대인들의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도 기호를 절대로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시를 쓰는 제가 시적 대상 혹은 제재적인 측면에서 기호를 바라봤을 때, 기호는 영화 「괴물」의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기호에 둘러싸여 살면서 기호 덕을 본다고 하여 기호를 옹호하고 찬양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바로 연작시를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편한 세상,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다 기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기호의 손에 놀아나지 말아야지 하는 반항심이 불끈 솟구칩니다. 기호의 질서를 거역하면 큰 혼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와 기호의 명령에 부응하면 노예의 굴종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반감 사이에서 저는 지금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황의 부산물이 연작시 「기호의 왕국에서」를 쓰게 했습니다.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김금희 : 저는 선생님의 저서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운율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류시화 시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게 되었습니다. “시상이 떠오르면 입으로 외우고 중얼거려 운율이 밴 문장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부분이지요. 이 책을 읽으며 참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 소개를 간단히 해주시죠.

이승하 : 1992년부터 강단에 서서 1999년에 전임이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시 창작의 지름길을 가르치고 있는데 시를 쓰고자 하는 학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요즘은 입학생 40명 중에서 시가 좋아서, 시를 쓰겠다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오는 학생은 서너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시는 재미가 없고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읽으려고도 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다들 방송드라마나 시나리오 아니면 소설을 쓰겠다고 하지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나 방송국 스크립터가 되기 위해 글쓰기 기본기를 익히려고 왔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시작의 즐거움과 시 읽기의 재미에 대해 제가 수업시간 중에 얘기했던 것을 정리하여 그 책을 펴냈습니다. 독자 대상이 대학생과 성인인데, 중·고등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이 시중에 한 권도 없다고 중앙대 백일장에 온 학생들이 얘기를 해서 새롭게 쓴 글을 모아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교실󰡕��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시작법 책이라기보다는 시 쓰기의 즐거움과 시 읽기의 재미를 만끽하라고 쓴 일종의 가이드북입니다. 

김금희 :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동안,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시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들려주시지요.

이승하 : 추석이 갓 지났을 때였습니다. 고향에 다녀온 한 학생이 아버지가 마련한 선물이라면서 꿀단지를 내밀었습니다. 보자기를 끌러보니 꿀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송이버섯 하나가 담긴 술이 아닙니까. 싱긋 웃으며 다른 학생에게 몇천 원을 주어 안주를 사오게 했습니다. 고향에 막 다녀와서 마음도 잡히지 않은 터에 학교는 때마침 축제 기간이었고 공술이 생겼으니……. 수업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고 하니까 학생들의 얼굴이 한순간에 가을 햇살처럼 환해지더군요. 자신이 써온 시가 난도질당해 울화 앙앙하지 않아도 되었고, 버섯 술을 맛보게 되었고, 교수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종이컵을 돌려 술을 따른 후 제일 먼저 호기롭게 한 잔을 쭉 들이켰습니다. 버섯 향기가 코를 알싸하게 했습니다. 기막히게 맛있는 술이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때 빈속이었다는 것입니다. 버섯 술은 금방 동이 났습니다. 술이 술을 부른다고 소주를 더 사오게 했고, 저는 학생들을 데리고 잔디밭으로 나갔습니다. 제가 먼저 취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의를 하던 동료교수가 놀라서 나와 보았다가 억지로 술을 한 잔 얻어 마시고는 쫓기듯이 강의실로 돌아갔습니다. 선임교수 한 분은 창가에서 빙그레 웃으며 노는 광경을 보시더니 안주를 공수해 주셨습니다. 인사불성이 된 저는 화장실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복도를 돌아다녔습니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모르고, 아아 채신머리없이……. 학생들은 제대로 취한 제 모습을 보며 그때 마냥 즐거웠을 겁니다. 그때 제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은 두고두고 이날 있었던 일을 들춰내 맨정신의 제 얼굴을 붉게 물들게 합니다.

김금희 : 하하, 복도를 비틀비틀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야기의 방향을 잠시 바꾸겠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이신 박두연 님께서는 「아버지의 제사」라는 수필로 등단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즉 교수님의 외조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수필 속에 나타난 ‘아버지’, 그리고 교수님의 어머니, 삼대를 두고 이어지는 작품 속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승하 :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6․25가 일어나 외할아버지가 납북이 되셨습니다. 그때부터 장녀였던 제 어머니는 처녀가장으로서 외할머니와 여섯 동생의 먹는 것과 입는 것과 학비를 대야 했습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 봉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끔찍한 고생을 하셨지요. 결혼 이후에는 또 남편이 결혼 10년 만에 실업자가 되는 바람에 문방구점을 열어 30년 동안을 가게 일을 하셨습니다. 아아, 그 고생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제 어머니의 고생이 시장바닥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고생만큼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사흘도리로 이어진 실업자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참아내야 했고, 20대 중반의 딸자식이 40대 중반이 되도록 낫지 않고 보이는 온갖 광기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습니다. 작년 2월 19일에 일흔일곱의 나이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아마도 비로소 편안한 저세상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김금희 : 네…… 고맙습니다. 그럼 선생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승하 : 불가에는 전생에 철천지원수였던 사람이 이승에서 가족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형은 서울법대생이었는데 문학병에 걸려 사법고시 공부를 포기, 집안을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요. 형은 고등학교를 두 달 다니다 그만두고 온 동생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주는 대신 문학의 길로 안내하여 저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을 했던 것이고요. 제가 1995년에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낸 시집 󰡔��생명에서 물건으로󰡕��는 서문에 쓴 대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누이동생에게 헌정하는 시집입니다. 저는 2002년에 지훈문학상 시상식 자리에서 제 아버지에게 올리는 편지를 수상소감으로 읽었는데, 제 시세계를 받치는 네 기둥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과 형입니다.

김금희 : 딸에게 쓴 편지글 속에 등장하는 낙동강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도 요즘 대운하와 관련해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딸에게 보내는 편지치고 다소 암울하고 아프게 느껴집니다. 어떤 의도로 그리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하 : 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환경오염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감각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구의 의미로 쓴 것이지요. 제가 그 글을 자신만만하게 쓸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살고 있기 때문인데 요즘 주변의 압력이 몹시 심해 학원 등록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자가용 운전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환경론자인 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금희 : 선생님께서는 시, 소설, 평론, 산문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특히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어느 분야이신지요. 혹시 다른 장르도 생각하는 것이 있으신지요.

이승하 : 쑥스런 고백을 하자면 신춘문예 희곡과 평론, 시조 3개 분야에 투고, 최종심에서 미역국을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습작기 때의 일입니다만. 낙선을 제 한계로 받아들이고 금방 포기를 했죠. 소설은 시가 당선되던 해에 대구매일에 최종심에 올라서 그 뒤로도 계속 투고를 했습니다. 학교에서 현대소설사를 가르쳐주신 신상웅 선생님이 제 소설을 읽고 하신 딱 한마디의 말씀이 “앞으로 소설 쓰지 마!”여서 제가 신춘문예로 등단해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요. 다섯 번째 도전해 1989년 경향신문으로 등단을 한 이후 1년에 반드시 한 편씩 소설을 써 발표를 했습니다. 1997년에 문예진흥기금을 받아서 소설집을 묶어낸 뒤에는 소설 쓰기를 접었습니다. 제가 소설을 쓴 또 하나의 이유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이 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소설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소설집 후기에 아버지에게 이 소설집을 바친다고 씀으로써 저는 아버지에 대한 제 마음의 앙금을 지웠습니다. 평론은 제가 대학에 있는 동안은 계속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을 가르치자면 이 땅의 신진 시인들이 쓴 시를 많이 읽어야 하는데 그런 연유로 폭넓게 읽고 독후감조로 쓰고 있습니다. 그저 독후감 수준이죠.

김금희 :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또 문학의 길을 꿈꾸는 이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지요.

이승하 : 읽지 않고 쓰려고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무조건 많이 읽되, 세계 명작 고전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일본 만화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과 영화에 대해서는 박사급이라는 것입니다. 게임 도사들도 많고요. 하지만 세계문학전집이나 좋은 외국소설을 도무지 안 읽습니다. 저는 하도 답답해 가브리엘 마르케스, 보르헤스, 르 클레지오, 아베 고보, 랠프 엘리슨, 리처드 브라우티건, 토머스 핀천 등의 소설을 읽게 하고는 리포트를 써 오게 하고 토론을 합니다. 일본 만화책이 독서 체험의 거의 전부인 학생이 소설을 쓰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이런 학생이 의외로 많습니다.

김금희 : 이제 끝으로 선생님께 있어 시 쓰기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이승하 : 시 쓰기는 제 존재에 대한 증명이니 죽는 날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시를 쓰겠다고 숭실대 국문학과에 갔다가 영혼을 잃어버리고 만 제 동생이 저의 나태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열심히 쓸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연구년을 받아 외국에 나가 1년 동안 견문을 넓히고 오려고 외국어학원에까지 다니며 준비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무슨 일이 생겨 나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쨌거나 여건이 주어진다면 중국이나 미국에 가서 그쪽의 교포문학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김금희 : 선생님, 갑작스럽게 부탁드린 인터뷰 요청을 들어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빕니다.

이승하 : 예, 고맙습니다. 좋은 질문들에 감사드립니다.

(2008년 5월 17일)

<이승하 시인 약력>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등
△시론집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등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
△산문집 『헌 책방에 얽힌 추억』, 『빠져들다』, 『피어 있는 꽃』 등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지훈문학상, 중앙문학상 등 수상


[두레문학 2008년 상반기호(제8호) 수록]

 

 

 

 

 
[두레문학]2008년 상반기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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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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