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문학인의 방

김순진-시를 쓴다는 것은

은빛강 2010. 4. 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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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은
은평구 시창작 강의를 시작하며

[김순진] 

최근 몇 년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시 창작에 대한 강의를 해왔다. 그러던 중 내가 사는 동네인 은평구에서 우리 동네를 위해 문학 강좌를 열어달라는 부탁

▲ 김순진 시인
을 받았다.  그간 동네 이웃들과의 돈독한 우정과 그간 나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니 기쁨이 물밀듯 몰려온다.

 내가 사는 동네의 직업 분포를 보면 상업을 하는 사람들과 직장인으로 크게 양분된다. 도심으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들이야 직장에서 자주 책과 만날 기회가 있지만 동네에 주거와 생업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나 동네에 사업장을 가지고 자영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책이나 문화생활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살기 좋은 동네를 가름하는 척도는 얼마만큼 문화적 환경이 좋으며 삶의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느냐에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은평구는 타 지역에 비해 문화에 대한 기회도 적을 뿐만 아니라 문화 소비층도 얇은 게 사실이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좌절하고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정한 어려움은 금전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의 부재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시 나부랭이를 쓰느냐 반문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려울수록 책을 읽고 시를 써야 한다. 돈도 빽도 없으니 정신이라도 무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10여 년 전, 나는 여러 번 사업에 실패하여 노동, 세일 등을 하다가 노점에서 튀김과 어묵을 팔면서 고생해본 경험이 있다. 그 때 나는 틈만 있으면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하였고 시를 썼다. 이웃 사람들은 나를 애처롭게 여기며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하느냐 물었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었다. 돈도 없는 놈이, 빽도 없는 놈이 시라도 써서 정신을 무장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었다. 시를 쓰는 것은 이러한 난관에 봉착하였을 때 여유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과도 같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도 바쁘고 살기 어려운 나머지 책 한 권을 읽지 않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시는 팔자 좋은 사람이나 쓰고 읽는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려운 사람일수록 시로서 정신을 무장해야 하며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시로서 마음을 다스려 참된 돈을 써야 하며 나이가 많을수록 시를 통하여 그간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보고 이 땅에 왔다가는 참된 의미를 정리해야 한다. 

최근 10여 년 동안 나는 은평구에 살면서 너무도 많은 젊은이들이 비관하며 술로 몸을 망가뜨리고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때마다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도 태어날 때는 하나같이 귀여운 자식이었고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본의와는 무관하게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먼저 돌아가시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자라났고 또 다시 사회의 냉대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다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글을 써서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위하여 너무나 많은 희생으로 일평생을 사셨기에 나는 부모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것이 시이다. 시가 가지는 참된 의미는 무릉도원에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장기나 두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참되고 바르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시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도의 두뇌활동으로 음악과 미술과 낭송과 영상 등 모든 예술을 포괄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스포츠를 말할 때 아무 운동이나 다 잘하며 어느 포지션에 위치를 지정해 주어도 다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멀티 플레이어라고 한다. 또한 방송용어에서 울고 웃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다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탤런트라 한다. 이처럼 시는 모든 예술을 두루 섭렵하며 없어서는 안 될 장르이기에 나는 시를 예술의 멀티 플레이어요, 문학의 탤런트라 부르고 싶다. 

시의 애매모호함에 가끔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가을 하늘은 높다’처럼 얼마만큼 높은지 어느 정도 높이를 하늘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라는 것이 딱히 정의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서 시라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라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밥을 먹듯이 우리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영양분이며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유기질비료요 인체에 꼭 공급해 주어야할 비타민 C같은 존재이다. 

우리가 시를 쓰는 것은 남을 이용하기 위함도 아니고 돈 벌기 위함도 아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곧 마음의 평안을 얻고 여유를 가지며 더 나아가 사람으로 태어난 목적인 자기의 수양으로 보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의 눈은 나이가 아무리 많고 늙었어도 빛이 난다. 또 그 인품에 위축되어 감히 그 사람을 욕하거나 흉보지 않는다. 

시를 쓰는 목적이 바로 자신의 품위를 높여 기쁨을 느끼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다.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우지 못하면 쌍놈 소리를 듣는 세상이고 보면 스스로를 추스르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난생처음 시를 접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관심은 있었으나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멀리 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시인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관여치 말고, 또 시집을 내게 되는 것과 못 내는 것에 관여치 말고 오늘 한 줄이라도 배우고 익히게 됨에 그 기쁨만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옛 고구려 시대의 유리왕도 ‘황조가’란 시 한 수만이 전해져 내려오니 평생 시 한 수만 썼다 할지라도 얼마나 위대한가?

■ 김순진
시인.월간《스토리문학》발행인

[수필집『리어카 한 대』(문학공원 刊) 수록]

 
김순진 시인
리어카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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