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마당/서대문문인협회

[강석호]수필가 法頂스님의 타계를 애도하며

은빛강 2010. 4.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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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法頂스님의 타계를 애도하며

[강석호]

법정스님이 3월 11일 오후 78세로 타계했다. 그의 타계는 불교계뿐 아니라 온 국민들의 슬픔과 관심이 방방곡곡에 메아리 쳤다. 

▲ 강석호 수필가

타계하자마자 신문과 방송 등 주요 매스컴들이 그의 생애와 남긴 업적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법구가 길상사에서 송광사로 옮겨져 다비식을 치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추모 법회가 열리는 자리까지 불자들을 비롯 그의 삶과 정신을 흠모하는 독자들이 줄을 이었다. 

법정스님은 청빈과 나눔을 통하여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산 이 시대 보기 드문 스님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여늬 유명 큰 스님들과 같이 벽면 불와좌상이나 금식기도 등의 고행(苦行)을 통하여 깊은 깨달음을 얻거나 한문 투의 심오한 법문을 남기지도 않았고 총무원장이나 종정의 종직에서 많은 불자들을 거느린 바도 없으며 대중 집회에 나가 설법을 자주 편 바도 없다. 그런데도 그가 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타계하자 애도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로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종교계나 정계나 교육계를 막론하고 황금만능 사리사욕으로 치닫고 있음에 반하여 그를 정화하고 경계할 수 있는 무소유의 사상을 추구하면서 그런 무욕의 수행을 통하여 깨달은 바를 불교적 설법 대신 문학적 형식인 수필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를 남겼는데 『무소유』,『서있는 사람들』,『물소리 바람소리』,『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삭막하다』,『아름다운 마무리』등 대부분 체험적이고 누구나 쉬이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정감어린 수필들로 거의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런데도 그의 수행과 생애를 대서특필하는 매스컴들은 그의 설법의 문학적 위치나 가치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의 진가가 고승으로서 너무 높고 큰 나머지 감히 그의 인품과 문장을 문학인이나 문학 작품으로 평가하기는 너무 잡스러워서일까.

어쨌든 스님은 우리 시대의 우뚝 솟은 수필작가였다. 그리고 그의 유명은 그가 고승이기 전에 수필가로서 향기 높은 수필을 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승려로서의 수행적 체험을 진솔하게 표현하되 자신의 심경이 다분히 유로되어 있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또한 그의 체험은 누구든 쉬이 고백할 수 있는 관념적이고 피상적 체험이 아니라 수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직접적인 체험으로 말과 글이 삶과 일치하고 난해하거나 고차원적 표현이 아닌 쉽고도 차분한 문체를 쓰고 있는 데서 수필 중에도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수필은 상징이나 비유, 또는 상상을 동원하지 않은 자기 깨달음의 내용을 설명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문학성이 높은 수필은 아니며 문학의 교훈적 기능과 미적(재미) 기능 중 교훈적 기능에 치중되어 있고 그 교훈의 기저는 불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인생론적 종교수필, 철학수필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수필 세계를 간단히 요악하면 그는 무소유의 삶을 강조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강조했다. 삶은 순간순간이 있음이요 한 때일 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사는 것이 삶의 본질이며 그렇게 하면 삶은 놀라운 신비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에겐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우주질서의 한 부분이었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의 무소유 정신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무소유」란 글을 보면 문학적 구조가 튼튼하다. 

귀한 난 두 분을 정성껏 기르고 있는데 물주기, 바람과 햇볕 쏘이기 등 그 관리에 집착이 강했다. 그런 집착은 번뇌가 되기에 차라리 남에게 주어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되어 친구에게 주어버리고 나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 글의 서사(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러나 도입부에서 인도 간디의 무욕에 대한 한 마디의 명언이 인용되었다.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다가 마르세유 세관원의 심사를 받으며 한 말이다. 

"나는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그리고 중심부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꼭 많은 것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이어서 난을 애지중지 기르다 끝내는 친구에게 주어버리는 반전을 꾀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미에 가서 또다시 간디의 '욕심은 죄악'이라는 말 한 마디로 끝을 맺는다. 

수필 문장에서 요구하는 기승전결이 모두 구사 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은 문체가 독특하다. 차분하고 잔잔하다. 깨끗한 산문(山門)에서 독경을 듣는 기분이다. 많은 현철들이 되뇌인 비슷한 말이지만 그가 설파하면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묘미가 있다. 모두가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연작수필이다. 『무소유』는 1976년에 첫 출간하여 180쇄를 거듭한 베스트셀러라 한다.

스님은 어찌 보면 불법 수행을 위한 승려가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수행을 하는 문인같이 여겨질 만큼 글 쓰는데 일생을 전념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일과를 대강 짚어보면 아침저녁 예불을 드리고 밥짓고 빨래하고 군불때기 위해 나무패고 찾아오는 손님 맞고 때로는 짐승들에게 모이도 주고 그리고 시간나면 침묵으로 사색하며 집필에 몰두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연을 사랑했다. 나무와 새들과 물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철저히 자연친화주의자였다. 

"내가 사는 곳에는 다행히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불편이야 하지만 마음은 더 편하다. 전에는 촛불을 켰는데 겨울에 외풍에 초가 팔락거려서 우산 램프를 켠다. 저녁 예불 끝에 램프를 켜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월이 고개를 넘는 것 같은 소리를 듣는다."
                                                                                               ―「산에는 꽃이 되네」중 일절
이런 생활은 자체가 수행이며 수필적이다. 

그의 무소유 정신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잘 마무리 되고 있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라.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달라.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발라."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머리맡에 남아있는 책은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해 달라."

스님은 좋은 수필을 써서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스타급 작가인데도 문단과는 별 관계가 없는 문인이었다. 속세를 떠난 스님이여서 그럴까..

그러나 그의 존재와 작품은 우리 문단과 수필계의 큰 금자탑이었는데 이제 그 모습은 물론 글마저 절판되어 읽을 수 없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 강석호
수필가. 한국수필문학가협회장  /서대문문인협회 자문위원님

[《수필문학》2010년 4월호(권두수필) 수록]

[수필문학]2010년 4월호
 
강석호 수필가


강석호 수필가

△《현대문학》에서 수필, 《월간문학》에서 문학평론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국제펜클럽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이사,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장 등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장. 《수필문학》편집인 겸 주간. 토지문학제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문화원연합회 연구위원
△한국수필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 원종린문학상 수상
△수필집『이 후회의 계절에』,『새벽을 적시는 내 가슴은』,『은행나무의 사연』 외 다수
△평론집『한국수필문학의 새로운 방향』,『현대수필문학 평설』,『수필문학 천료작 선평집(1,2,3집)』
△논저『새로운 수필문학 창작기법』,『수필쓰기의 포인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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