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유식 평론가님 방

이유식의 문단 비화(6)-신동엽 편

은빛강 2010. 6. 28. 10:04

이유식의 문단 비화(6)-신동엽 편
동병상련의 신동엽 시인

[이유식의 문단 뒷골목 이야기]

신동엽 시인이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떠난 지 벌써 40년이 된다. 그는 나보다는 8살 위고 문단데뷔는 2년 앞이다.

▲ 이유식 평론가
몇 번 만난 그의 인상은 전형적인 충청도 샌님 같고 과묵형에 속했다. 사귀는 문인들도 그렇게 많거나 폭이 넓지 않았다. 물론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문맥과 학맥으로 봐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싶다. 59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니까 출신지면의 문맥들이 소수로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라벌 예대나 동국대 출신에 비해 그는 단국대 사학과 출신이라 상대적으로 학맥의 문단친구들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몇몇 절친한 문우들이나 아니면 그가 관심을 가졌던 시극(詩劇) 동인들이 고작이었다. 

61년도에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가 되어 간암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 학교에 봉직했다. 이런 그를 내가 만나 서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고 또 문학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65년도 말경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 두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스쳐가는 듯한 인사치례의 만남이었을 뿐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다른 문인과 약속이 있어 그 당시 문인들의 모임장소의 하나였던 광화문‘월계다방’으로 갔다. 역시 그도 단골다방이라 나와 있었다. 용건을 끝내고 그와 합석했다. 그 자리에서의 만남은 더욱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 당시‘주간한국’에서는 한달에 한 번씩‘이달의 문제작’이라 해서 시나소설을 두고 합평하는 기획이 있었다. 평론가 신동한 기자가 담당하고 있었고, 단골 합평 평론가는 김현, 염무웅, 박철희, 이유식 등과 같은 신진평론가들이었다. 많은 문인들이 매우 관심을 가질 만한 기획이었다.

바로 한 두 달 전에 그의 시를 내가 추천하여 합평회의 대상작품으로 올렸고, 동시에 내가 그 작품을 많이 언급해 준 바도 있었다.그러기에 우린 서로 더욱 반가웠고 곧 바로 광화문 뒷골목의 선술집으로 갔다. 그는 평소 문인들과 어울리는 술자리를 좋아했고, 나 역시 평론가였지만 문인 흉내를 낸다고 술마시기 예
행 연습을 하고 있을 때다 보니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많은 이야기도 역시 주고 받았다. 

시간이 꽤 흘렀고 내가 하숙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를 알고 있는지라 자기 집으로 가서 한잔 더 하자는 것이다. 쓸쓸한 하숙집 보다야 낫다 싶어 따라 나섰다. 돈암동 한옥에 살고 있었는데 뒤에 짚풀공예가로 이름이 알려진 부인 인병선 여사가 부지런히 시중을 들어 주었다. 어쩌면 그 당시 그나 나나 말하자면‘고독한 영웅들’로서 동병상련의 술자리나 다름없었다. 내 자신도 부산에서 올라온지 1여년 남짓하니 문단적 동지가 거의 없는 사정이다 보니 동류의식의 친근감에다 또 그가 모 문학지에 연재하던‘시인 정신론’이나, 그간 내가 발표했던 시론도 시인의 현실참여와 관련이 있었기에 공감대가 있어 많은 이야기도 주고 받았다. 밤을 새고 나오면서 그의 시집『아사녀』(63도)도 선물받았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나는 부산으로 다시 내려와 고교 교사생활을 했는데 67년도 나온 그의 장편 서사시「금강」을 보내주었고, 그리고 2년 후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가 떠난 지 22년이 되던 해인 91년도에 한국예술평론가협회에서 내고 있던 반연간지『예술평론』의 편집을 책임맡고 있던 평론가 최일수 선배께서 자기가 66년도에 명동 국립극장에서 연출했던 신시인의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에 대해 작품평을 써주면 좋겠다는 청이 온 적이 있다. 고인에 대한 우정도 생각나 정성껏 써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작품 중의 끝에 가서 <이 작품은 공연 당시나 지금이나 그 주제성의 시효는 살아 있다. ~중략~. 외세의 힘이 아닌 자주통일이 우리의 민족사적 과제인 만큼 이 시극은 민족시극으로서도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문단 데뷔 만 10년 만에, 그리고 만 39세에 작고했는데 만약 그가 저 세상에서 나의 이 작품론을 보았다면 여전히 숫총각 같은 미소를 띠웠으리라 본다.

■ 이유식
문학평론가. 수필가

[미래문화신문 제12호(2009.8.18) 수록]
                                           

            

 
이유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