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유식 평론가님 방

문인 아마추어 시대의 반성

은빛강 2010. 5. 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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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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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아마추어 시대의 반성

[이유식]

현재 우리 문단은 사상 유례없는 문인 양산시대를 맞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대충 추산해 보아 1만 2천명 선을 넘어서 있다. 시인이 전체 절반에 가

▲ 이유식 평론가
깝고, 그 다음 수필가가 그 절반 정도는 된다. 전체 문인 수는 10여 년 전에 비해 약 두 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매년 500여 명의 신인들이 등단하고 있다.

내 자신이 등단했던 1960년대 초에는 문인 수가 250명 내지 300명 이내이었는데, 설사 인구증가 비례를 감안하더라도 그 수적 팽창은 기하급수가 아니라 가히 천문학적 숫자라 싶어 스스로 놀라고 있다.

어느 글에 보니 우리 보다 인구가 약 두 배 반인 일본에서는 정식으로 문인이라고 내세울만한 숫자가 3천여 명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무려 일본의 다섯 배 가까운 비율이니 어딘가에는 우려할만한 문제가 있다.

이제는 지난날에 비하면 문인 아마추어 시대가 되어 있다. 너도 문인, 나도 문인, 웬만한 글재주만 있으면 쉽게 문인이란 패찰을 달 수 있는 세상이 된 셈인데, 이는 결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일이다. 

그 주범(主犯)은 신인양산이고, 그 종범(從犯)은 그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문학지 탓이다. 전국의 문학지 수가 지방 문학동인지를 예외로 하더라도 무려 300여개가 넘는다 한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계속 나가다 보면 가히 문학지와 문인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일은 불을 보는 듯 하다.

문제는 문학지 수나 문인 수도 문제지만, 더 우려스러운 일은 작품의 질적 저하에 있다. 신인을 저인망식으로 끌어다 등단시키니 풋과일을 익은 과일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문학지가 많으니 여기저기 설익은 작품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문학지는 문학지대로 지면을 채우기 위해 엄격한 선별도 없이 그저 작품이 들어오는 대로 내보내고 있는 일도 비일비재다.

가뜩이나 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는 이런 시대에 독자들이 외면하는 문학지, 독자들이 외면하는 질적 저하의 작품 문제를 우리는 심각히 생각해 보며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소비자가 없거나 소비자가 외면하는 제품생산이란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발행인은 물론 또 문학지에 글을 발표하는 문인들도 문단과 문인의 위상을 생각해 자중자애할 일이다. 스스로 문인들의 품위와 지위를 떨어뜨리는 일만은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잠깐, 나의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5, 6년 전 대학에서 정년을 맞은 후 당분간만이라도 생활리듬을 조율해 보겠다는 생각에서 시내에다 연구소를 연 적이 있다. 찾아오는 친구, 후배, 제자 문인들로부터 문학지 발행을 더러 권유받은 적도 있다. 한마디로 관심 밖이라 했다. 일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욕먹지 않는 문학지라도 만들려면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그것도 없이 공연히 다른 욕심이나 꿍꿍이속으로 일을 벌인다면 내 자신도 역시 문학지 공해판에 뛰어 드는 격이다 싶어 일축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설사 운영이 어렵더라도 양심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양질의 문학지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문학지들이 가히 신인양산에 급급하고 또 문인들도 함량 미달의 작품발표를 남발하고 있으니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제하고 볼 일이다. 신인배출이나 작품생산의 산아제한도 필요하다. 땅에 떨어진 문단의 명예와 문인의 지위 회복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과감한 자정운동이 필요하다 싶다. 프로는 역시 프로다워야 하고 또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 이유식
문학평론가.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상임고문

[격월간《동방문학》09.12/10.1월호 수록(권두칼럼)]

 
이유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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