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마당/예향 산책

빛과 그림자/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은빛강 2010. 8. 13. 05:59

빛과 그림자

빛은 늘 있는 존재이다.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한옥은 빛을 매우 잘 활용하는 집이다. 집안 구석구석, 대청 깊은 곳까지 빛을 끌어들여 겨울 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인지 모를 자연의 절대적 힘이 나를 보살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바로 한겨울에 햇빛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줄 때이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햇빛과 햇볕을 구별했다. 서양에는 없는 말이다. 햇빛을 햇볕으로 살려서 온 집안에서 함께 뒹굴기에 좋은 집이 바로 한옥이다. 지붕과 벽과 기둥이 없으면 안 되듯이 한옥에서는 햇볕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창호지를 창호지답게 살려내는 것도 햇빛이다. 창호지는 먼동 틀 때 청회색으로 시작해서 한낮에 밝은 미색으로 빛나며 석양 따라 붉게 물든다. 창호지를 하늘색과 똑같이 만들어주는 것이 햇빛이다. 종이재료인 창호지에 온기를 실어 감정을 자아내는 것도 햇빛이다. 반투명이고 약해서 불리한 점이 많았을 창호지를 감히 창문을 막는 재료로 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햇빛을 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 좋았을 것이고, 그래서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그 좋은 점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남촌댁 한낮에 햇빛을 제일 많이 받을 때 창호지는 어머니 젖무덤의 뽀얀 속살 색을 띤다. 창문재료를 의인화시킬 수 있는 비밀은 햇빛에 있다. 자연의 단순한 물리적 조건인 햇빛은 의인화를 통해 햇볕이라는 감성체로 발전한다.

 

  

빛은 늘 있는 존재이다. 그림자도 그렇다. 빛은 고마운 존재이다. 그림자는 어떨까. 어둡고 음침해서 피하고 싶은 부정적 상태의 대명사이기만 할까. 영구음영을 만들어 곰팡이와 이끼를 쓸게 만드는 비위생적 상태이기만 할까. 그림자가 없다면 빛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림자는 빛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이 문제는 결국 인생사의 비밀인 쌍 개념으로 확대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판도라의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선과 악으로 쌍 개념을 대표했고 동양에서는 자연의 이치를 빌려 음과 양으로 대표했다. 음은 그림자이고 양은 빛인 것이다. 비유의 확대는 계속된다. 빛을 삶과 희망과 흰색에, 그림자는 죽음과 절망과 검은색에 비유한다. 심지어 하늘과 지옥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림자가 없이는 빛은 절대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옥은 그림자를 잘 살려내는 집이다. 빛을 잘 살리면서 그림자도 함께 잘 살리는 것이 지혜이다. 빛을 잘 살리고 그림자를 경원한다면 진정한 지혜가 아니다. 그림자는 빛을 정의하기 위한 짝으로서만 존재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 스스로도, 그림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존재가치와 조형력을 갖는다. 일찍이 이것을 알아채고 활용한 것이 한옥이었다. 한옥에서 그림자는 흰 회벽에 문양을 넣는다.

 

 

김동수 고택 안채 그림자가 없었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심심했을까. 처마선과 서까래와 막새의 합작품이다. 흰 회벽은 그림자라는 부정적 상태가 긍정적 조형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바탕 면이다. 햇빛을 그림자로 둔갑시키고 햇빛이 장식을 그려대는 바탕 면이다.

 

 

거꾸로, 한옥의 벽을 흰 회칠만 하고 끝낸 이유이기도 하다. 법으로 금하기도 했고 선비의 검소함 때문에라도 한옥의 벽은 어쩔 수 희게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붕 그림자를 벽에 지게 해서 각종 문양을 넣어 즐겼다. 비밀은 처마길이, 서까래, 막새인데, 흰 회벽에 지는 지붕 그림자는 단청과 공포가 금지되었던 한옥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는 중요한 장식요소였다. 사람 손으로 일부러 그린 것도 아니고 해가 그려주는 것일진대, 유교의 법도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