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通)의 비밀을 집에 적용
창문이 안 열리는 초고층 주상복합의 불편함이 화제이다. 자연환기가 봉쇄된 것인데, 사람에 비유하자면 일 년 내내 두꺼운 옷을 잔뜩 끼어 입고 여름에는 그 속에 에어컨을 집어넣은 격이다. 옷을 벗으면 될 것을 말이다. 여름에는 얇은 반팔 옷 하나만 입고 겨울에는 두꺼운 옷 여러 개를 입는 것이 상식이고 이치이다. 집도 이래야 된다. 여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사방에서 바람을 시원하게 받으면서 열을 식힐 수 있어야 하고. 겨울에는 햇볕을 알뜰살뜰 모으고 사면을 잘 걸어 잠가 안으로 열을 지켜야 한다.
바람을 알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국민상식으로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는 여름에는 남동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분다. 한옥은 이런 작은 상식 하나만 가지고 여러 가지 과학적 방식을 창출해 집안 가득 바람을 들인다. 한옥에서는 바람이 절실히 필요한 여름에 이 방위에 맞춰 길을 냈다. 바람이 드나드는 ‘바람 길’이다. 통(通)의 비밀을 집에 적용한 것이다. 바람 길은 시원하고 통 크게 나 있다. 인색함도 머뭇거림도 없다. 집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일직선으로 뚫려 있다. 바람 보고 돌아가라거나, 쉬어가라거나, 꺾어가라거나 하는 실례를 범하는 법이 없다.
바람 길은 하나가 아니다. 이쪽에도 바람 길, 저쪽에도 바람 길이다. x축과 y축의 십자 구도를 기본으로 여러 개의 사선 축이 교차한다. 원융무애와 중첩이라는 한옥 공간의 비밀이 만들어내는 효과이다. 공간과 환경조절기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몸으로 작동한다. 여름에 바람의 고마움을 실컷 활용하기 위해 집을 짓다 보니 공간이 원융무애해지고 중첩되게 나타났다. 거꾸로 불교의 '공(空)'과 노장의 '무위'의 가르침이 한 곳에서 만나는 개념이 원융무애이고 이것을 건축공간으로 구현한 것이 중첩인데, 이렇게 만들다보니 반은 우연으로 또 나머지 반은 필연으로 바람 길이 시원하게 이곳 저곳에 뚫렸다.
풍경작용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바람 길을 내다보니 집안 이곳 저곳에 당연히 구멍이 숭숭 뚫릴 것이고, 이것을 통해 다양한 풍경작용이 우연히 일어난 것일 수 있다. 또한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풍경작용을 즐기려는 치밀한 전략에 따라 창과 문을 내다보니 그것이 자연스럽게 바람 길도 겸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옥의 특징 가운데 최고수는 이렇게 서로 달라 보이는 여러 요소와 특징들이 영향과 관계를 주고받으면서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바람 길을 중심으로 공간과 풍경작용의 세 가지 사항 사이에 벌어지는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건축 작용이 벌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