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종이강에 그린 詩

[제74호 종이강에 그린 詩]-평화의 잠--조병준

은빛강 2010. 10. 15. 14:48

[제74호 종이강에 그린 詩]

 







평화의 잠

-조병준


1.

내 나무 밑 그 벤치에
누군가 잠들어 있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 벤치를 멀리서 서성이며 지키는
작은 나무가 되어보기도 했다


-내가 그대의 건너편에서
그대 벗어놓은 구두와
그대 집 잃은 여름밤을
지킬 터이니, 그대여
편히 잠드시라

2.

아이들은 손뼉 치며 노래하고 있었네
밤이 깊어
일생의 일을 모두 마친 벌레들이
서둘러 불빛 속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오, 신비한 녹색이여
밤이면 한없이 신비한,
불빛에 떠 있는 나뭇잎을 세다가 잠이 들었네
잠든 몸 위로 나뭇잎이 떨어져
내 몸이 나무가 되는
꿈을 꾸었네


노래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돌아가고
나뭇잎 사이의 밤은 투명해져 있었네
어디선가 차가운 물 한 방울, 내 발목을 적셨네

3.

새벽바람이
떨어진 꿈들을 쓸어 모아 지나가면
나는 아직 따뜻한 그 벤치에 누워
잠시 내 몫의 꿈을 꾸어보기도 했다


-언젠가 그대
나무가 되었을 때
그대 발치에 구두 벗고
내 집 잃은 여름밤 그대에게 맡길 때
그대여
내게 편안한 잠 허락하시라






*시는 조병준 시집『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샨티)에서,
*사진은 조병준 시인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