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마당/여행의 향기

왕실정원-경회루와 부용지

은빛강 2010. 10. 16. 13:52

우리나라는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볼 때 정원(원림) 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산수가 수려한 까닭에 굳이 인공적으로 정원을 만들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실의 정원은 궁궐에 남아 있어 옛 품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왕실 정원은 경복궁의 경회루 영역과 창덕궁의 부용지가 아닐까 합니다. 이 중에 경회루는 한국에서 가장 큰 목조 누각 건축물로 이름이 높습니다. 이 두 정원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겠지만 다소 불완전하게 알려진 바가 있어 이번엔 이 정원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정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보다는, 이 정원들을 어떻게 감상해야 좋은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려 합니다.

 

창덕궁의 부용지와 부용정. 정자 안에서 경치를 감상할 때 가장 아름답도록 설계되었다.
<출처: Johannes Barre at en.wikiepdia.org>

 

 

인공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만든 한국식 정원

경회루와 부용지는 왕실 정원이라 자유롭다기보다는 조금 딱딱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연못을 사각형(장방형)으로 판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이와 같이 딱딱하게 연못을 사각형으로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이 사각형이 땅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연못을 만드는 경우는 왕실 정원에서만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사대부 정원인 담양 소쇄원이나 보길도의 윤선도 원림(세연정) 등에는 이런 장방형의 연못이 없습니다. 한국 예술의 특징 중에는 ‘가능한 한 인위적인 손길 가하지 않기’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 왕실 정원은 인위적인 손길을 많이 가한 편에 속합니다. 이것은 형식을 중요시한 왕실의 격조에 맞추느라 그렇게 된 것일 겁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특히 창덕궁의 부용지에는 이와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프랑스인에게 한국에서 가장 멋있는 정원을 보여주겠다고 하고 부용지로 안내한 모양입니다. 한참을 설명을 해주고 돌아가자 하니까 프랑스인이 ‘정원을 보여주겠다고 하고 왜 그냥 가느냐’고 묻더라는 겁니다. 그래 ‘지금까지 실컷 보았지 않느냐’고 하니 그제야 부용지가 정원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부용지가 인위적인 손길이 많이 간 곳으로 보이는데 프랑스인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여 정원인 줄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식 정원은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우세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정원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부용지를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거나 혹은 만들다 만 것처럼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차경(借景), 경치를 빌려오다

이 정원들은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요? 이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정원이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경회루와 부용지는 서로 성격이 다릅니다. 큰 국가 잔치를 열었던 경회루가 공식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부용지는 왕실의 사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경회루에서 하던 큰 잔치라는 것은 예컨대 중국 사신을 위해 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 부용지는 후원이라 불리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왕실의 최측근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어찌 됐든 이 두 정원에서 주인 노릇을 했던 사람은 왕입니다. 이 두 정원은 이와 같이 왕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왕의 자리에서 감상해야 합니다. 이 정원은 왕의 자리에서 앉아서 볼 때 가장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들은 물론 밖에서 보아도 아름답지만 그보다는 안에서 밖을 볼 때 더 아름답게 설계되었습니다.

경회루 누각의 내부 모습.

 

따라서 우리는 왕의 자리가 어딘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경회루에서 왕이 앉는 자리는 누각 가운데에 있습니다. 이 누각은 바닥이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왕의 자리가 제일 높습니다. 높다고 해봐야 두 계단 정도 높아지는 것이니까 그리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분명 격차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당시가 신분 사회이니만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 앉아야 가장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안타깝게도 아직 이 누각에 올라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곳에 올라간 사람들이 사진을 공개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으면 남산을 비롯해 인왕산, 백악산(청와대 뒷산)이 보이는데 지붕과 기둥이 프레임 역할을 해 아주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합니다. 자연은 그냥 보아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틀을 통해 보면 더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옛사람들이 그것을 익히 알고 그런 디자인 개념으로 경회루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다 밑으로 내려오면 배를 타고 물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 물에는 하늘과 산, 그리고 아름다운 건물이 비쳐 그것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었을 겁니다. 이것을 차경(借景), 즉 경치를 빌려온다고 표현하지요. 자연의 경치를 물에 반사하게 함으로써 빌려오는 겁니다.

 

경회루.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출처 eimoberg at en.wikipedia.org>

 

 

옛모습을 상상하며 감상할 때 더욱 아름다워

부용지(연못)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서 왕의 자리는 부용정(정자) 맨 앞부분입니다. 이 정자는 아(亞) 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물 위에 기둥을 세워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왕의 자리는 바로 이 물 위에 있게 되는데 왕의 자리답게 가장 높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왕은 이곳에서 연못 위에 핀 연꽃을 감상하거나 물에 비친 하늘과 건너편에 있는 규장각 건물을 감상하게 됩니다. 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잘 상상이 안 됩니다. 그런데 관광객들은 이 정자 근처에는 잘 오지 않고 연못 귀퉁이에서 해설사 설명을 잠깐 듣고 음료수를 사기 위해 가게로 갑니다. 이것은 이 정원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처사입니다. 그런데 이 의도를 모르고 있는 행태가 또 보입니다. 이 연못 가운데에는 하늘을 뜻하는 동그란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을 보면 큰 소나무가 있는데 문제는 이 나무가 정자에 앉아 있을 왕의 시야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옛 그림 동궐도을 보면 이 나무는 이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밖에서 보기가 좋으니까 나무가 자라도록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정원은 완벽한 원형으로 복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또 보입니다. 그것은 이 정원들이 원래는 지금처럼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담이 있는데 경회루는 전체가 꽤 높은 담으로 둘러쳐 있었습니다. 그래야 맞습니다. 이곳은 왕실이나 극히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밖으로 노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 담이 있어야 안이 더 아름다워집니다. 부용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자료의 그림을 보면 영화당(부용지 바로 옆에 있는 건물) 쪽의 정원 입구가 담으로 막혀 있습니다. 물론 문은 있지요. 이 부분이 막혀 있어야 정원 전체가 아름답지 지금처럼 창경궁 쪽으로 개방되어 있으면 안 됩니다.

 

만일 위에서 본 대로 제대로 복원되었다면 이 정원들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웠을 겁니다. 물론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다음에 이곳에 갈 때 마음속으로라도 정확한 옛모습을 상상하고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부용지 원경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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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그림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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