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유식 평론가님 방

이유식의 문단 비화(9)-이청준 편

은빛강 2010. 12. 23. 06:10

이유식의 문단 비화(9)-이청준 편
(원제)소매 스친 인연, 작가 이청준

[이유식]

작가 이청준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작가 송기숙, 한승원과 함께 장흥이 배출한 ‘작가 트리오’ 중의 한 사람이다.

▲ 이유식 평론가
불행히도 그는 작년(2008년) 7월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마치 그의 작품명처럼 ‘천년학’이 되어 저 세상으로 날아갔다.

그는 평생을 전업작가로 일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잡지사 경력으로는 1965년도에 단편 ‘퇴원’으로 <사상계>에 데뷔한 것이 인연이 되어 66년도에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자 곧『사상계』사에 입사했다. 67년도에는 <여원>사, 68년도에는 월간 <아세아> 창간멤버로, 71년도에는 역시 월간 <지성>창간멤버로 잠시 잠시 참여한 것이 전부이다. 

교수경력은 82년도에 한양대 국문과 소설지도교수로 채용되어 만 1년간이었고, 그 후 99년에 순천대 문예창작과 석좌교수로 가 있었던 것이 역시 전부이다.

그러고 보면 40년이 조금 넘는 작가인생에서 극히 짧은 기간에 잡지사 생활과 교수생활을 한 셈이니 크게 보면 평생을 전업작가로 있었다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그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잠시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왔다가 평론가 김현과 염무웅과 어울린 술자리에서였다. 

67년도 겨울이다. 그는 나보다는 나이가 1살 아래이고 문단데뷔는 4년이 늦다. 그 당시는 요즘과는 달리 문인의 수가 극히 한정되어 선후배간 서열이 분명했는데, 문단에 갓 나온 신인으로 아닌게 아니라 예의를 깍듯하게 지킬 뿐만 아니라 인상도 좋고 품성도 선량해 보여 첫 만남에서 퍽 호감이 갔다.

그날 우리는 늦게 술자리를 끝냈는데 마침 염무웅 씨가 잘 곳이 마땅찮으면 자기 자취방에 가서 같이 자자는 것이다. 그곳이 신촌이었는지 마포쯤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이튿날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니 이청준의 하숙집이 아니 멀리 있으니 가 보자는 것이다.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라 집에 있기에 간밤에 어울린 인연도 있고 해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양지 바른 툇마루에 앉아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장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뒤 나는 다시 서울생활이 시작되어 그를 여러 번 만났다. 그런데 서로가 가장 진솔된 이야기를 나눈 경우는 우연히 택시를 같이 타게 된 경우인데 이른바 ‘택시안의 대화’에서였다. 82년도 2학기인데 그가 한양대 교수로 부임해서 막 2학기 강의가 시작된 때였다. 나의 경우는 그당시 7~8년간 경영해오던 외국어학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글쓰기에 안성맞춤인 직업이 대학교수인 것 같아 그쪽으로 진출해 보려고 비록 늦고 늦었지만 작심한 바 있어 한양대 대학원 마지막 학기째를 다니고 있던 때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강의가 끝나고 종로에 볼 일이 있어 택시를 잡으려고 학교 정문 앞에 서 있는데, 그도 퇴근하는 중이었다. 수인사를 나누고 가는 행선지를 물어보니 그도 시내로 들어간다 하기에 마침 잘 되었다 싶어 나는 그를 내가 잡은 택시에 동승시켰다. 

대화 중에 처음 해 보는 교수생활이 어떻느냐고 했더니 별 재미가 없다는 시큰둥한 답변이었다. 소설가로서 때론 딱딱한 이론강의도 해야하니 자기의 상상력이 어떤 틀에 구속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학생들의 작품지도를 일일이 해 주어야 하기에 본인의 시간을 많이 뺏겨 작품 쓸 시간이 적어 큰 흥미를 못 느끼고 있다며 교수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평소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해 2학기로서 한양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자유로운 전업작가 생활로 들어가 많은 작품을 썼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은 8, 9편이 영화화 되어 그의 이름을 드높이는데 알게 모르게 힘을 보태주었다. 동시대나 아니면 그 앞 세대의 어느 작가보다도 영화화 된 장편과 단편 작품이 가장 많다. 

단편 ‘석화촌’(정진우 감독), ‘이어도’(김기영 감독), 장편 ‘낮은데로 임하소서’(이장호 감독), '시발점'의 원작인 단편 ‘병신과 머저리’, ‘ 밀양’(이창동 감독)의 원작인 단편 ‘벌레이야기’ 등이 각각 각색·영화화 된 것이다.

특히 임권택 감독에 의해 ‘축제’ 그리고 ‘서편제’와 그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천년학’의 원작인 단편 ‘선학동 나그네’가 그의 만년의 문명을 드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비록 깊고 깊은 인연은 없었지만 소매 끝이라도 몇 번 스친 인연이 있었기에 그가 그립다. 연작소설집 ‘남도사람들’의 배경이 된 그의 고향 그리고 그 주변의 들녘을 학이 되어 날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이유식
문학평론가. 수필가

[미래문화신문 제16호(2009.11.30) 수록]
                                           

  

 
이유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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