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유식 평론가님 방

이유식의 문단 비화(11)-이병주 편

은빛강 2011. 3. 3. 07:26

'문학의 길잡이 > 이유식 평론가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유식의 문단 비화(11)-이병주 편
이병주 작가의 등단 전후

[이유식]

나림(那林) 이병주 선생과 나 사이에는 넓고도 깊은 인연이 있다. 지연적 인연에다 종친으로서의 인연, 거기에다 그 분의 문단 데뷔 당시의 인연도 있다. 선생

▲ 이유식 평론가
의 데뷔작인 중편「소설 알렉산드리아」가 1965년 <세대>지에 발표될 당시 나는 그 월간지의 편집기자였다.

사실 그의 데뷔는 여러 모로 예외적인 일이었다. 화려했던 전력의 소유자가 44세에 늦깎이로 나왔고, 또 신춘문예나 문학지 데뷔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특전에다 예외적으로 문단의 관심을 끈 이유는 이미 1957년도에 부산일보에 <내일 없는 그날>이란 연재소설을 쓴 바 있고 또 한편 교수 출신으로서 60년대 전후에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경력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자유주의적인 논설(국제신보)이 군사정부의 비위를 거슬러 10년 징역을 받고 2년 7개월의 실형을 살고 나온 후에 쓴 것이다. 이런 저런 인연이 있었기에 그 후 내가 <세대>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마침 중앙일보가 창간된다는 소식이 들려 언론계 출신이시기에 얼핏 그쪽과 연이 닿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탁을 드렸더니 한번 알아봐 주시겠다는 확답이었다.

결국 그 일은 성사가 되진 못했다. 당시는 좀 서운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아닌가도 싶다. 교수로서 아무 탈 없이 정년을 맞이하였고, 또 그나마 글을 열심히 쓸 수 있었던 점을 떠올려 보아서 그렇다. 만약 신문기자가 되었다면 언론인으로서는 입신을 했을는지 모르겠지만 본격적인 문학활동에는 큰 지장을 받았을 성 싶다.

그 후 나림선생을 또 종종 뵈올 수 있었던 시기는 주로 70년대였다. 그때가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전성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나는 외국어학원을 운영할 때다. 간혹 아는 분을 만나기 위해선생의 단골 다방에 들리곤 할 때, 여러 번 주석에 끼일 때도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농을 한번 슬쩍 던진 일이 생각난다. 

나림선생은 나보다는 17살이나 위이라 평소에는 감히 농을 못할 처지었지만, 술 힘을 믿고 용감하게 농을 한번 던져보았다“. 선생님, 문단서열로 보면 이래 뵈도 제가 4년 선배입니다.”라고 익살을 부려도 보았다. 역시 농에는 농이라 순간 주춤하시더니 웃으시면서“선배님 대접 잘 할테니, 평론가님 잘 봐주시게”라고
하시면서 술잔을 쑥 내미시는 것이다. 그 여유스러운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선생은 문단사상 유례가 없는 다산의 작가였다. 짧다면 짧은 27년간의 작가생활을 통해 무려 10만장 분량의 원고를 쏟아냈으니 작가 유주현 이외에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언제 술을 들고, 언제 여자들을 만나며, 언제 글을 쓰는지 문단인들이 모두 의아해할 정도로 초 정력적인 필력을 과시하였다. 우스개로 ‘소설공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세대>지를 통한 데뷔였고, 그것이 인생의 전환이며, 제2 인생의 출발이었다.

선생은 92년도에 돌아가셨으니 금년으로 보면 어언 17년이 흘렀다. 문득 그가 남긴 명언이 생각난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바래지면 신화가 된다.’라는 말이다. 선생의 고향땅 북천면의 이명산 자락에 문학관이 세워졌으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선생의 삶과 문학도 달빛에 바래지다 보면, 또 하나의 새로운 문단 신화가 탄생하리라 본다.

■ 이유식
문학평론가. 수필가

[미래문화신문 제17호(2009.12.21) 수록]
                                           

 

이유식의 문단 비화(12)-김동리 편   (0) 2011.07.12
이유식 평론가-실천비평의 선두주자   (0) 2011.04.20
이유식의 문단 비화(9)-이청준 편   (0) 2010.12.23
이유식의 문단 비화(8)-김현 편   (0) 2010.12.22
(원제)요산(樂山) 김정한의 그 한마디  (0) 20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