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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박물관’ 칠레 칠로에섬

은빛강 2011. 2. 23. 02:08

[조금 특별한 여행기] ‘성당 박물관’ 칠레 칠로에섬
기사입력 2011.02.22 14:48:42

어느 동네든 마찬가지다. 뒷동산 또는 높은 빌딩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 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게 교회 십자가다. 누구에게는 든든하게 보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끔찍하게 보일 수도 있는 풍경이다. 동네에 교회 하나 있는 게 보통인 외국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기독교 복음은 아마 하나님도 깜짝 놀랄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칠레의 칠로에라는 섬에, 인구 10만도 안되는 곳에, 성당이 150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왜!

칠로에섬 150개 성당의 비밀

이거 잘 하면 ‘다빈치 코드’ 같은 작품 하나 나오겠는걸?

이번 기회에 고달픈 다큐 PD때려치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돈방석에 한번 앉아봐?

제주도 다섯 배 크기에 인구는 7만명인 칠로에섬. 이 섬에는 무려 150여개의 성당이 있는 그야말로 ‘성당 박물관’이다.

나는 칠로에섬 150개의 성당에 대해 세 가지가 궁금했다.

1. 인구 7만명의 한적한 섬에 어쩌다 150여개의 성당이 생겼을까?
2. 그 많은 성당은 도대체 누가 건축했을까?
3. 나무 이외의 그 어떤 건축 재료도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나무만 갖고 수백년을 버텨?

칠로에섬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칠레 남부 10지구에 위치한 푸에르또 몬뜨Puerto Montt에서 페리를 탔다. 한 20분? 쪽잠을 잘 틈도 없이 배는 항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선잠 상태에서 나는 배를 가득 채운 여행자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었다. 모두들 어마어마하게 많은 성당 이야기 뿐이다. 배에서 내렸을 때 나는 칠로에섬이 우리나라의 제주도 보다 다섯 배 정도 크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렇다면 그닥 ‘작은 섬’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데… 아무튼 나는 배에서 나오자 마자 무작정 섬 일주 여행을 시작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대도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색들로 칠로에섬은 가득 채워져 있다.

섬은 일단 황홀했다. 도대체 그토록 푸른 하늘이 되려면 무슨 조화가 일어나야 할까? 색깔 표현을 ‘무질서’라고 하면 나를 무식하다고 욕을 할까? 그러나 어쩌나, 내 눈에 칠로에섬의 하늘 색깔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형용할 수 없고, 정돈할 수 없으니 그렇게 말할 수 밖에! 그 하늘은 푸르기도하고, 연보라빛을 내기도 했다.

섬의 건물들도 꼭 제 하늘을 닮았다. 150개의 성당이 있으니 섬 전체가 경건 그 자체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집 한 채가 있다. 기본색은 빨강이다. 그런데 페인트에 곰팡이를 섞었을까? 붉그죽죽? 붉르레? 발그레? 아무튼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발광하고 있었다. 큰 창틀들은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보았던 짙노랑, 그 안을 잇고 있는 작은 창틀은 검정색으로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두드리고 들어가야 할 대문은 그리스의 하늘색이다. 그런데, 그 때깔이 사뭇 매력적이다. 그렇다. 칠로에에서는 어떤 색을 써도 그 자체로 그림이 되었다. 그것은 칠로에가 갖고 있는 자연의 바탕색이 그 모든 색깔들을 수용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대도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무를 깍아 성상을 만드는 칠로에섬의 유일한 조각가 제로니모. 그의 얼굴은 성당 성상들의 온화한 표정을 닮았다.

나는 칠로에섬의 몇 몇 사람을 만나 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간 사람이 목각가 ‘제로니모’였다. 그는 나무를 깎아 성상을 만드는, 칠로에섬의 유일한 조각가였다. 그의 얼굴은 성당 성상들의 온화한 표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칠로에섬의 여러 성당을 순례한 사람이라면, 그를 길거리에서 만나도 ‘음, 저 사람이 조각했군’이라는 연상이 될 정도다. 그의 작업실은 6.6㎡ 남짓? 천장에는 백열전구가 걸려있고 그 은은한 빛이 작업실 분위기를 따뜻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업대 위에는 ‘제로니모’의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는 성상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는 마침 아이들에게 줄 새 목각 인형을 만들어 있었다.

작업실 안에는 사지를 늘어뜨린 인형들이 마치 ‘마리오네뜨’ 처럼 주렁주렁 걸려있었고, 그것들은 내가 움직일 때마다 머리하며 얼굴하며 어깨를 톡톡 건드리곤 했다. 내가 잠시 눈을 떼면 당장 줄에서 내려와 피노키오 처럼 뛰어다닐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는 간간히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과 눈은 작품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한쪽에 앉아 그의 작업이 모두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 의문을 풀어줄 사람이 바로 이 목각가 ‘제로니모’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성당이 필요했던 이유

부둣가를 벗어나니 섬은 더욱 평화로워진다. 넓게 펼쳐진 감자 밭 사이사이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낮은 집들이 그림처럼 박혀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뾰족한 지붕에 십자가를 매단 성당이 보였다. 칠로에섬의 성당은 형태는 유럽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것을 따르고 있지만 그 색깔은 남달랐다. 아이보리색과 하늘색, 그리고 화이트로 칠해진 성당. 경건하다 못해 딱딱하게 굳은 우리네 성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경박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도 없었다. 실내로 들어서니 아치형으로 길게 이어진 기둥과 돔 형식의 천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신을 위한 공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경건함이 칠로에섬 사람들을 감동시켜 150개의 성당을 짓게 했을까? 원래 칠로에 인디오들은 뱀, 황소, 도깨비 등의 형상을 한 고유의 토착신을 섬기지 않았던가.

칠로에섬은 1558년 스페인 탐험가드에 의해 발견(?)됐다. 인디오들이 멀쩡히 살고있는 섬을 자신들이 ‘발견’했다고 기술하는 유럽인들도 웃기지만 칠로에섬 사람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칠로에’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칠레의 종가집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로 치자면 청학동이나 안동 하회마을에서 모여 사는 사람들이랄까. 그만큼 “우리가 진짜 칠레 사람들이다”라는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이들은 애국심 또한 대단하다. 섬 북쪽 해안으로 가면 식민지 시대에 칠로에섬 사람들이 외국 배의 침입을 감시하던 통나무 요새를 볼 수 있다. 그러니 어느 날 불쑥 찾아와 주인 행세를 하려는 유럽인들이 곱게 보였을까. 이 드센 칠로에섬의 사람들은 칠레를 주무르려는 유럽 강대국에게는 늘 골칫거리였다.

그러자 그들은 또 다시 상투적인 작전을 펼친다. 종교… 당시 남미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던 스페인 정부는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칠로에 사람들에게 신의 손을 내밀었다. 종교를 무기처럼 사용한 것이다. 1700년대 스페인과 유럽에서 섬으로 건너온 예수회 선교사들은 그때부터 부지런하게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을 움직인 것은 신앙심이었겠지만, 그 신심을 이용한 것은 강대국의 야비한 정복욕이었다.

현재 섬에 있는 성당 가운데 10여 개의 교회들이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1987년에는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2세(1978~2005)가 칠로에섬의 중심지 카스트로에 있는 성당을 방문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그 침략의 유물들은 훗날 칠로에 사람들에게 ‘고작 관광 꺼리’가 되었을 뿐이다.



굴종의 역사, 그러나 버리지 않는다

칠로에 사람들은 그 굴종의 역사를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스스로 노예가 되어 만든 성당들일지언정, 그것을 때려부숨으로써 그 치욕을 상쇄하려하지도 않는다.

150개의 성당을 모두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곳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칠로에섬에 정착한 카톨릭은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헤수이따파’가 다수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성당은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시골의 성당에 남아있는 정겨움이 느껴져 나는 오히려 더 좋았다. 특히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치장된 천장은 이곳이 성당이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도대체 누가 성당의 천정에 별과 꽃, 나무 등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 하나하나 일일이 정성스럽게 그리고 새긴 칠로에 성당의 천정을 취하느라 나는 목이 다 뻣뻣해질 정도였다. 대리석과 스테인드글라스 등 전형적인 성당 장식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칠로에 성당의 특징. 이곳 외에도 달카외 등 인근의 여러 섬에 목조 교회가 섬의 상징처럼 버티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성당들이 섬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어요. 신앙심보다는 스페인에 대한 공포, 또는 친스페인 정책 때문이었죠.”

섬에서 만난 민속학자 ‘호세 카를로스’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칠로에섬은 침략이 있을 때 마다 가장 거센 항전을 하던 곳이 아니던가. 그런 칠로에 사람들이 스페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 성당을 짓다니! 그러나 칠로에 사람들은 그 굴종의 역사를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스스로 노예가 되어 만든 성당들일지언정, 그것을 때려부숨으로써 그 치욕을 상쇄하려하지도 않는다.

‘그때 우리가 그랬다’ 그 한마디는 과거의 치욕을 인정함으로써 앞으로 칠로에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이야기하는 미래의 키워드로 들렸다.



나무로만 만들었다고? 우리 전통 한옥과 똑같네?

내부로 들어가니 그 무게감이 한번에 느껴진다. 찬찬히 둘러보니 촛대부터 성상, 제단, 의자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 있는 성당들은 쇠못 하나 없이 모든 것이 나무로만 만들었다. 연중 강우량이 5,000mm나 되는 습한 지역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성당의 외관은 물론 뾰족한 첨탑부터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중앙문까지 모든 것이 나무였다. 내부로 들어가니 그 무게감이 한번에 느껴진다. 찬찬히 둘러보니 촛대부터 성상, 제단, 의자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성당을 관리하는 성직자에게 물어보니 성상을 덮고 있는 천을 제외하고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고 했다. 골격을 고정시키는 도구도 쇠못이 아니라 나무에 홈을 파서 연결하거나 나무로 못을 만들어 박았다. 우리의 전통 한옥 양식과 똑같은 것이다.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그 건조에 신경 쓸 수 밖에 없는데, 좋은 나무를 골라 남미의 뜨거운 태양에 적당한 시간 동안 건조시키는 기술이 발달, 수백 년이 지나도 뒤틀리지 않는 건축물을 지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바이칼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남미까지 이동한 인디오는 역시 우리의 조상과 같은 DNA 구조를 가진 게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나 또한 남미 여행을 하면서, 관광객들로부터 이런 저런 질문을 받을 정도로 남미 사람과 똑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글·사진 = 안동수 다큐PD]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266호(11.03.0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