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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놀기-인스피리언 족

은빛강 2007. 12. 11. 01:17
 

 

인스피리언스족, 그들이 집으로 간 까닭은?
우리는 집 안에서 논다
집 밖에 나갈 이유가 없다는 인스피리언스족.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즐기고 싶어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집은 여가를 위해 마땅히 ‘개척’해야만 할 놀이터다.

(왼쪽) 와인을 눕혔을 때 보틀의 목 부분이 놓일 것까지 감안해 와인 랙을 짰다. 튼튼하고 습기에도 강해야 함을 고려해 목공소에서 나무를 추천받는 등 직접 발로 뛰어 완성한 공간이기에 집과 취미에 대한 애착은 크다.

놀 수 있는 집, 영감의 보물 창고 사진가 유창욱
‘활동적’이라는 형용사가 늘 아웃도어를 동반할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한 오산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 안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를 보면 말이다. 게다가 빽빽한 아파트 숲을 벗어나 분당에 지은 집은 새롭게 시작한 일인 아기 스튜디오로도 활용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집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 만화, 식도락, 와인, 목공예 등 다양한 관심사와 취미를 즐기는 그는 직접 자신의 집에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부여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하에 마련된 천연 와인 셀러다.

집을 설계할 때부터 이를 고려해 지하 5미터까지 팠다. 혹시 맥가이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계획은 치밀하고 신중했다. 13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외부의 온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두꺼운 벽을 만들어 열을 지켜주는 성질이 있는 벽돌로 내부를 마감한 뒤, 물이 담긴 와인 병 안에 온도계를 연결해 내부 온도를 측정, 와인 셀러가 갖춰야 할 환경 조건을 일일이 챙겼다. 와인 셀러 제작법이 담긴 책 가 6개월 동안 그의 손에서 떠나지 않던 이유를 알 만했다. 천연 셀러 안의 온도는 8℃에서 18℃까지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 20℃가 넘지 않으면 대성공이다. 지난여름에 자신이 만든 와인 셀러 안이 17℃로 일정하게 유지된 까닭에 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이번 겨울을 고대하고 있다. 조금 유별나 보일까. 와인이 온도와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따라 미각과 후각의 반응도 달라질 터이니, 와인 애호가에게 제 손으로 만들어 더욱 듬직하게 느껴지는 와인 셀러는 필수 항목이다. 습기에 강한 튼튼한 나무로 와인 랙을 직접 짜는 등 목공예에도 흥미가 있는 그는 지하층과 연결되는 0.5층에 목공예 작업 공간도 마련했다. 이 공간과 지상 밖으로 연결해주는 미닫이문도 알고 보니 그의 솜씨다. 그뿐인가. 그가 즐기는 만화책을 비롯해 각종 화보집과 서적들이 벽 한쪽을 메운 서재 공간도 그의 볕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고, 와인 셀러의 와인 랙 제작이 마무리되는 대로 3층에 월풀 욕조가 있는 쉼터도 직접 만들 예정이라니 슬슬 부러운 마음까지 피어오른다.


1 목공을 위한 공간에서 바라본 반지하의 테라스. 접이식 문은 그의 솜씨다.
2 와인 셀러의 온도를 재기 위한 기구들.

완벽한 남향에 터를 잡아 빛을 흠뻑 받아들이는 거실에 앉아 있으면 TV를 켜는 것보다 창밖의 자연을 보며 사색을 즐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하층에서 2층의 화장실까지 올라오려면 약 70보를 걷게 된다. 걷고 있는 동안 서울의 아파트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여유로움이 마음에 고인다. 그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패션 사진가의 피사체가 멋진 스타에서 해맑은 아기로 바뀌는 동안 그에게 생긴 안팎의 모든 변화를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잘나가는’ 패션 사진가가 어느 날 느낀 갈증에는 진정한 행복을 위한 ‘놀 수 있는 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3 빛을 잘 활용한 서재 공간.
4 스튜디오 머핀으로도 사용하는 집의 부엌


1 엔터테인먼트 룸에는 홈바는 물론 크기의 변형이 가능한 식탁이 놓여 있다. 여행 시 사왔던 보드 게임은 식탁에 앉은 사람 차지다.
2 홈바 주변으로 빼곡한 소품은 모두 추억이 담긴 것이다.
3 엔터테인먼트 룸과 거실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주는 와인 랙.
4 그녀의 두 번째 책은 11월 중순에 나올 예정이다.

집, 여행자의 꿈 공작소 여행 작가 손미나
아나운서에서 여행 작가로 전향한 손미나는 결혼 전부터 집에 바라는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바로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자는 것. 꼭 은은한 벽지로 도배를 할 필요가 없고, 꼭 액자를 걸지 않아도 되며, 모든 문이 다 똑같을 필요는 없는 등 한국 집의 전형적인 공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여행 작가로 집 안에서 글 쓰는 시간이 많아진 그녀가 이미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어쩌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검도, 수영, 달리기 등 땀을 흘리는 스포츠와 악기 연주, 게임, 마술 등의 각종 놀이를 즐기는 그녀의 외향적인 성격이 집 안에 말랑하게 녹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집 안에 마련한 엔터테인먼트 룸은 집약된 놀이를 보여준다. “어학연수를 위해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 내가 살던 집에는 집 주인의 자녀들을 위한 놀이방이 있었다. 고등학생들이었는데 그 방 안에는 비디오, 오디오, 게임 등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홈바를 중심으로 에스프레소 머신, 프로젝터, 오디오, 드럼, 기타, 운동기구, 소파, 보드 게임, 마술 도구 등 없는 것이 없는 이곳은 그야말로 진짜 노는 곳이다. 집에 있는 동안 널찍한 거실보다 오랫동안 머물게 되는 엔터테인먼트 룸은 아무리 좋은 바나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비할 수 없다. 집의 편안함에 놀이마저도 여유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엌과 연결되는 노란색 스윙 도어, 파란색으로 칠한 화장실 문 등 여행지에서 그녀의 눈에 각인된 색들이 이곳저곳에 녹아 있으니 그녀에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놀이터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집의 문들은 똑같은 색이 없다. 이는 칠레 남부의 시골을 여행하다가 마주한, 집집마다 칠해진 총천연색 문들에 대한 기억에서 착안된 것이다. 혼자 사는 집이 아니기에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했을 듯싶다. 그러나 오히려 모아놓은 마술 도구가 그녀의 것보다 많고, 드럼 연주 등 술이 아닌 다채로운 놀이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난 것에 그녀는 늘 감사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면 ‘놀이방’의 색깔은 분명해진다. 각종 게임, 프로젝터, 오디오, 드럼, 운동기구 등 알록달록한 색상만큼이나 그녀의 놀이방은 유쾌하다.

첫 저서 <스페인은 자유다>가 10여 만 부가 팔려나간 이후, 신중한 지역 선정이 필요했던 그녀는 자신이 언어를 할 줄 모르는 곳, 도쿄를 두 번째 책의 행선지로 잡았다. 일본이 간직하고 있는 오래되고 감동을 주는 문화의 이면들을 그녀의 시선으로 푸는 작업을 자신의 첫 집 서재에서 했다. 이제 막 탈고한 그녀가 돌아보니 집필하는 동안 집이라는 공간이 그녀에게 준 즐거움이 많다. 휴식을 취할 때 뭔가 다른 행동을 가능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취미를 이끌어주는 공간이 또 다른 여행지를 꿈꾸는 여행 작가에겐 필수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