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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한옥

은빛강 2007. 9. 1. 13:53
나 홀로 살기 좋은 곳 ‘초미니’ 한옥이 딱이야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1-18 10:02 기사원문보기

취향따라 맞춤 한옥

“어릴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가 앞이 뻥 뚫린 마루에서 낮잠 잤던 기억이 자꾸 나는 거예요” “앙상한 겨울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더 예뻐 보이는 것처럼, 처마 끝에 걸린 구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요” “피곤하면 등 지지러 찜질방 찾게 되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왜 한옥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같이 둥글둥글했다. 거창한 철학이나 날 선 논리가 빠진 자리는 ‘그냥 기분이 좋아서’ 같은, 소박한 감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신세대가 열광하는 ‘미니 한옥’- 쌍희재

아이고, 앙증 맞아라. 가회동 31번지 ‘쌍희재’에 들어선 순간, ‘딱 이 정도면 좋겠다’ 싶다. 대지 25평에 건평 15평. 초미니 사이즈지만, ‘워낙 비례미가 좋아’ 균형 잡힌 단단함을 자랑한다. 아파트 15평, 25평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이 넓어 보인다. 마당은 4평쯤 되나. 작아서 더욱 예쁘고 작아서 특별한 조경이 필요 없다. 소박한 야생화가 더 잘 어울린다. 집주인 유승은(35)씨는 “미스김 라일락, 채송화, 바늘꽃이 핀다”고 소개했다. 집이 작으니 한옥의 그 신비로운 ‘집 속의 집’ 구조라든지, 다락은 없다. 그래도 한옥의 주인들이 ‘저 맛에 한옥 산다’며 올려다 보는 서까래, 달빛이 은은히 비치는 종이문, 벽장은 다 있다. 유씨는 특히 “한 여름에 문을 열고 발을 드리워 놓으면, 절로 ‘아 좋다’ 싶다”고 했다.

부엌(싱크대 위로 수납장을 한 줄 더 짜 넣었다)과 화장실(유리 샤워부스와 해바라기 샤워기를 설치했고, 한쪽 벽은 강렬한 빨간색이다)은 최첨단이다. 안방에는 썩을 염려가 있는 장판지 대신 코르크를 원료로 한 영국산 ‘마모륨’을 깔았다. 장판과 느낌은 거의 똑같다. “한옥은 춥다, 습하다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집주인은 “그러나 벌레는 아파트 살 때 보다 확실히 많이 본다”며 “그냥 같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은씨의 ‘쌍희재’는 싱글에겐 넉넉하고, 부부에게 딱 좋은 공간이라 친구들이 ‘미안해 질 정도로 부러워한다’고, 그래서 ‘남들을 잘 초대하지 못한다’고 한다. 잡상인이나 도둑 들 걱정은 별로 없다. 그런데 한옥이 신기하고 부러운 외지인들 때문에 놀라곤 한다. “문 열어 놓으면 어느새 사람들이 마당까지 들어와 사진 찍고 있다니까요.”




2층 한옥- 가회동 최미경씨네

역시 가회동 31번지에 있는 최미경씨(삼청동 레스토랑 ‘8 스텝스’ 오너·요리전문가)네 한옥은 2층집이다. 2층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면 안방과 거실, 주방 등이 있고 아들 둘이 생활하는 아래층은 방 두 개로 꾸몄다. 한옥 구조와 아들의 전자 드럼이 근사하게 어울린다. 1960년대 ‘집 장사’들이 늘린 50평 대 한옥을 최씨는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구입은 2002년 했지만 어느 정도 손을 봐야 하는지 전문 업체와 상의해 결정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는 “어떻게 한옥을 두 개 층으로 만들 수 있나”는 이웃들의 반발과 민원으로 몇 차례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여백이 많은 한옥 구조상 한 층 만으로는 네 가족 살 공간이 나오지 않아 집을 2층으로 올렸다.



옛 것 그대로라 더욱 새롭다- 효재

경복궁 돌담길 맞은편 소격동 한옥 ‘효재(效齋)’의 나무 대문을 열면 ‘삐그덕’ 소리와 정겨운 풍경(風磬)의 울림이 손님을 맞는다.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48)씨의 작업실이다. 이씨가 직접 꾸몄다는 18평 한옥은 옛날 그 느낌을 그대로 살려 일부러 ‘복고’ 분위기를 낸 듯 구석구석 반질반질, 극성스런 손길이 느껴진다.


“경복궁 담이 너무 근사해 이 동네로 왔다”는 이씨는 마당에는 시멘트 발라 놓고 방에는 비닐 장판 깔아놓은 이 한옥 살림집을 2000년 구입, 하나 하나씩 고치고 단장하기 시작했다. 무명천에 수를 놓아 못 자국을 가린 후 가락지를 끼워둔 작업실 ‘가락지방’, 돌 떡판에 물을 담아 아이비를 띄운 ‘차실’ 등 한 컷, 한 컷 세련된 사진 구도를 제공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씨는 구석구석 손이 간 이 한옥을 ‘때우고 기운 집’이라고 표현했다.

기와로 가린 수도꼭지에서 놋대야 위로 졸졸 물이 흐르는 작은 정원, 바닥에 앉아서 그릇을 씻도록 개조한 부엌, 도라지 캐다 구했다는 돌을 켜켜이 붙인 차실의 벽 등에서는 건축가가 ‘컨셉트’를 정해 말끔하게 개조한 한옥과는 다른, 좀 더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강남 고급 일식집 같은 분위기로 탈바꿈할까봐 전문 인테리어 업체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어요. 집을 손보는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징징 울고 다녔지만요.”

시멘트 마당에는 부직포를 깔고 마사토를 얹은 후 야생화를 심었다. 아이비 몇 뿌리를 흙에 묻어 두었더니 2년 사이 크게 자라 담을 넉넉히 덮었다. ‘골드스타’ 에어컨과 ‘용건만 간단히’라고 적힌 구식 전화기 등 소품도 재미를 더한다. 이씨는 거실 한 켠에 있는 벽돌 벽난로를 보며 “한옥과 벽난로는 너무 어울리지 않아 뜯어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씨는 남편 임동창씨(피아니스트)와 함께 사는 경기도 용인의 보금자리와 ‘효재’ 사이를 매일 4시간씩 걸려 출퇴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