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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방사능’ 신고한 시민 “정부는 국민 동요만 걱정”

은빛강 2011. 11. 12. 01:08

아스팔트 방사능’ 신고한 시민 “정부는 국민 동요만 걱정”

한겨레|[입력 2011.11.04 17:30]
 
|외국에서 구입한 전문 장비로 월계동 주택가 아스팔트의 방사능 수치 측정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안전' 발표에 "도로 옆 주민은 매일 몇 시간씩 피폭" 반박


"요청이 들어오는 모든 곳에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러 갈 것"

 충남 예산에 사는 백철준(42)씨는 올해 초 귀농했다. 나이트클럽 홍보 차량이 밤늦게까지 노래를 틀고 다니는 도시가 싫었다. 자녀들에게 소도 보여주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 고구마, 감자 등을 키우지만 본업은 투자컨설턴트다. 은 본위제 도입을 주장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주로 금 투자 상담을 하고, 작은 은화도 판매한다.

 백씨는 지난 7월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방사능 측정 장비인 핵종분석기 2대(대당 1500만원 안팎)와 표면 오염분석기 1대(대당 500만원 안팎)를 구입했다. 역시 아이들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일본으로부터 방사능 물질이 날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사갈까 고민하다 차라리 측정기를 사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정부에 신뢰할만한 신고를 하려면 제대로 된 장비가 필요했다.

 지난 1일 오후 4시30분께 백씨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고등학교 앞 골목에서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는 주민의 제보를 받았다. 이 주민은 약식 방사능 측정기를 갖고 있었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백씨를 부른 것이었다. 백씨는 들고 간 장비를 켜고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다. "삐삐삐"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하더니 시간당 1.284~2.5마이크로시버트(μ㏜)를 오르내렸다. 핵종분석기(방사능 물질의 종류를 알려주는 기계) 화면에는 '세슘 137'이라는 글자가 떴다.

 놀라운 결과였다. 지금까지 전국 곳곳에서 측정을 해왔지만 이렇게 높은 수치는 본 적이 없었다. (체르노빌 사고 지역의 현재 대기 방사능 농도는 4~5μ㏜ 수준이다.)

 고개를 돌리자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안내표지판이 눈이 들어왔다. 119에 신고했다. 방사능 피폭은 화재사고처럼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고다.

우주복 같은 복장을 갖춘 소방서 화생방팀이 5분만에 도착했다. 이들은 방사선 측정기만을 들고 있었다. 백씨는 "핵종분석기는 왜 안들고 왔냐"고 물었다. "수리 중"이라고 했다. 다시 백씨가 "대체할 수 있는 기계가 없냐"고 묻자 "당신이 갖고 있으면 잠시 빌려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직원들이 같은 날 밤 늦게 출동했다. 백씨는 현장에서 쫓겨났다. 취재 나온 한 언론사 기자가 "세슘 137이 검출됐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다음 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주민 신고로 월계동 주택가 주변 26곳을 검사한 결과, 시간당 최고 1.4마이크로시버트(μ㏜)의 방사능이 측정됐다"며 "매일 1시간씩 1년 동안 누워 있어도 연간 허용치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수치로, 주민들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백씨는 "무조건 미미하다고만 하는데, 방사능에 오염된 도로 옆집에 사는 사람은 매일 몇시간씩 피폭되며 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6월 제 블로그(http://금.tv/)에 서울에서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글을 올리자 원자력안전기술원 본부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정부는 왜 이렇게 늘 최저치만 발표하는 거냐' 고 물었어요. '국민이 동요할 수 있다'고 답하더라고요.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알려서 국민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앞으로도 요청이 들어오는 모든 곳에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러 갈 겁니다."

 시민들의 방사능 관련 신고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차갑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4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백씨가 지난 6월 서울에서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제보를 해왔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신고하는 사람이라 신빙성이 없다"며 백씨를 폄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백씨의 신고로 '방사능 아스팔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백씨의 열정을 키우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