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2012년 3월9일 Facebook 첫 번째 이야기

은빛강 2012. 3. 9.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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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툭하면 경제란으로 인해 인명을 스스로 버리는 일들이 생긴다.
    그야 살기가 버거우면 모든 것이 궁상맞고 또한 채무자로 쫒기는 악몽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한몸 사라지면 억눌러오던 세상지탄 모든억압에서 홀연히 육신의 옷을 벗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무거운 고민 앞에 와 있음을 실감하고 그러한 일들을 초래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관점과는 다르게 한시대에
    타의에 의해 절명을 당해야하는 종교를 가진 신앙인들의 박해, 그것은 옭죄임의 억압 앞에서 분명 자율위지로 상황판단을 해야하고, 철석같이 믿었던 신을 배신하지 않고 순종의 죽음을 택하였어도, 인간으로서 그려지는 그 알수 없는 고통은 대충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다.
    그러하다면, 이 관점은 단연코 명분이 있는 주검이다.
    또한 다른 관점은, 아무런 명분 없이 억울하게 초조한 죽음의시간을 기다려야하던 시대, 일제 강점기이다.
    그야말로 처참한 학살이다.
    이 관점에서는 누구나 생명유지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일제 앞잡이란 수모가 비벼진 단어,
    지금, 죽음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도와 각도 속에서도 생명을 구하기에 필사적이었던 한시절,
    그러한 시절을 생각한다면, 경제파탄이 코앞에 전개 되었다고 부모로 부터 받은 육신을 과연 함부로 다뤄도 되는 것일까를 잠간 생각하게 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인명들은 모두 제각기 다르지만, 역경에서도 자신을 지켜나감이 분명 방법은 다르겠지만, 어떻게든 살려고 애를 쓸것임에는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스스로 귀한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옳은 방법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잠시, 박해자들의 수난이 피로물든 병인년, 기해년, 참으로 갖은 방법으로 순교시킨 역사를 생각 해 보았고 또한 그 사진을 보게 되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무엇보다 생각의 정리가 우선인것 같다. 궁핍도 구차함도 어찌보면 삶을 유지하기엔 고단하지만 자신이 낮아지므로 인해 안에서 생겨난 지난날들을 버릴 줄도 아는 것이 참 지혜인듯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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