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다락방

오늘의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은빛강 2016. 8. 5. 05:36

 

 

<오늘의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2016년 8월 5일 금요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교부들의 말씀 묵상>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수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도록 제자들에게 수난이

가져올 크나큰 이로움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분이 당하신 고난만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고난에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나중에 주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고 가르치십니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그분은 당신 자신의 수난과 죽음만이 아니라 제자들의 고난과 죽음과 관련해서 미래의 일들에 대해 더 상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죽기를 꺼리는 것은 통탄할 일이며, 죽을 태세를 갖춘 것은 훌륭하고 무척 유익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후의 행동으로 이것을 분명히 하시지만, 지금은 한 가지 면에서만 이를 다

루십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고난을 겪어야만 한다고 하시지 않는 것을

눈여겨보십시오. 대신 주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나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나는 각자에게 선택을 맡긴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영적독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기도, 안드레아가스파니로 지음

19. 두번째 여정 : 사랑하도록 맡기기

 

<분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의 고통은 분심이다. 소리내어 하는 기도가 분심의 시련을 감수해야 한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침묵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분심을 없애기 위해선 전술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분심 때문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모든 분심은 우리 자신을 인식하는 데 빛을 주기 때문이다. 분심이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요히 기다리다 보면 분심이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흔히 분심은 우리가 얼마나 불쌍한 자이며 가난한 자인지, 또는 우리의 긴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밝f혀준다.

 

그럴 때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우리의 가난함을 보여드리자. 주님, 제가 없음을 보십시오. 얼마나 당신을 필요로 하는지 보십시오. 주님, 저를 고쳐주십시오!’

분심은 침묵의 기도에 색깔과 에너지를 준다.

(114)

 

<성무일도 청원기도>

주님의 자비로 새날을 맞이하였사오니,

― 우리로 하여금 또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하소서.

◎ 주여, 당신의 뜻 안에 저희의 평화가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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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기도 다락방 8월 성령 열매 성월>

<1주간 온유/절제 주간>

108주간/13주간 콜로새서 1-4장 전부

 

<금요일 성인(영적독서)의 날>

<온유>

온유는 영저지도자, 영적 아버지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다. 온유 없이 절제와 금욕을 수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절제와 금욕은 육체만을 내리누르지만 온유는 지성을 개화시킨다. 온유는 참된 관상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절제>

즐기지 않는다거나 가능한 한 가장 적게 즐기는 것이 절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슬픔이고 절제가 아니다. 금욕이며 자제가 아니라 무능이다. 절제의 의미는 싫증이 나도록 그래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절제는 가능한 한 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이 즐기는 것이다.

 

절제는 얽매이지 않음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며 얽매이지 않음은 행복에 이르기 위한 길이다. 절제한다는 것은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힘이다.

 

절제는 생명 충동에 대한 의지적 조절이며 스피노자가 말한 우리의 생존능력에 대한 건전한 긍정이며, 특히 우리의 애정 또는 식욕의 무분별한 충동을 조절하는 우리의 영적 능력이다. 절제는 감정이 아니고 그것은 능력이고 미덕이다.

-앙드레 콩트-

 

(고인현 도미니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