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유식 평론가님 방

이유식의 문단 비화(2)-황용주 편

은빛강 2010. 1. 3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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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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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주 필화사건’과 나

[이유식의 문단 뒷골목 이야기]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인 검찰청 출두사건이 세칭 ‘황용주반공법 위반 통일론 필화사건’과 연관되어 일어났다.

▲ 이유식 평론가
1964년 11월호 <세대(世代)>지에 황용주의 ‘강력한 통일정부에의 의지’가 발표되자, 야당인 김준연 의원이 국회에서 그 내용이 용공적이라고 성토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반공법 위반문제도 문제지만 특히 황용주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그 관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두 사람은 매우 절친한 대구사범 동기동창으로서 5·16혁명이 성공하자 황용주는 부산일보 사장으로 있다가, 얼마 지나 MBC사장으로 취임했고, 그해(64년)에 <세대>지 편집위원도 맡고 있었다.

이런 사정이었으니 야당쪽에서는 공격할 수 있는 호기였던 셈이다. 드디어 황용주씨는 반공법위반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는 <세대>지 편집기자로 있었다. 그런 어느날 검찰청 공안부에서 전화가 왔다. 참고인으로 담당 편집기자가 문제원고의 원본을 가지고 내일 오후 약속시간에 출두하라는 것이다.

이튿날 준비한 자료들을 들고 공안부 부장검사실로 갔다.
마침 한 분이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바로 영화「7인의 여포로」를 감독한 이만희였다. 
그 영화에서 여배우 문정숙이 양공주로 나와, 술에 취해 ‘양키 고 홈’이란 말을 내뱉는데, 이 부분이 반미(反美)로써 반공법에 걸린 것이다. 

몇 가지 묻고 답하는 내용 중에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왜 감독으로서 그 대사를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느냐는 추달이었다. 

이 감독의 답변은 “감독이 영화 한 편을 만들려면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시나리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쓸 수 있겠느냐”는 항의성 자기변호의 답변이었다.(후에 이 영화는 제목을 고치고 그 부분을 삭제하여 상영되었다.)

드디어 이 감독이 떠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가져온 자료를 우선 담당검사에게 건네주고 조사관 책상 앞에 앉았다. 잠시 문제의 육필 원고를 훑어보더니, 왜 제목을 고쳤으며 또 육필원고 곳곳에 왜 붉은 색연필로 표시를 해두었냐는 물음이었다. 

편집과정에서는 때론 시대감각에 맞도록 고치기도 하고, 빨간색 표시는 한자가 많을 때 인쇄소의 문선 과정에서 한글로 바꾸어 달라는 표시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몇 가지 더 질문을 하더니 그냥 가도 좋다 해서 물러나왔다. 청사의 뜰을 걸어 나오면서 이번 일로 황선생과 나와의 각별한 인연이 떠올라 꽤 고생을 하겠구나 하고 짐작도 해 보았다. 

황선생은 필자인 동시에 편집위원으로서 인연도 인연이지만, 사실은 훨씬 이전에 인연이 있었다.
내가 부산대 재학시절인 58년도에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있으면서 우리에게 불어를 가르쳤던 분이다.

이 일로 <세대>사는 2개월간 자진 휴간계를 냈다. 겨울이라 사무실에 나와 난롯가에서 무료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간혹 위로한다고 필자로 참여했던 소장 정치학 교수들이 들리곤 했는데 그들의 말인즉, 황선생의 이론은 이론으로서는 맞는 말이지만 남북관계의 정치적 상황으로 봐서는 좀 앞선 제언이요,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그 뒤 1년간의 옥고를 치루고 나왔는데 그 무렵 나는 <세대>사를 이미 떠나 있었다

'양키 고 홈'이라 했다고, 또 ‘통일정부’를 논했다고 반공법에 저촉이 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참 세상이 많이 변해도 변했구나 싶다.

■ 이유식
문학평론가. 수필가

[미래문화신문 제8호(2009.6.20)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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