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유식 평론가님 방

이유식의 문단 비화(4)-천상병 편

은빛강 2010. 3. 4. 15:40

이유식의 문단 비화(4)-천상병 편
[기인 천상병의 부산시절] 남의 안방 향수병도 꿀꺽, ‘세금거두기’는 20대부터

[이유식의 문단 뒷골목 이야기]

하늘나라로 간 천상병은 하늘나라에서도 역시 그의 시 제목을 딴 ‘귀천’ 이란 술집을 차려 오늘도 그곳에 있는 문우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여전히 ‘세금’ 을

▲ 이유식 평론가
거두고 있는지가 참 궁금하다.

그의 ‘세금거두기’ 는 20대에 시작된 생활 수단이었다. 그 당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철도청 공무원이었던 큰형님집에서 기식을 하며 한동안 낭인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국제신보》문화부장으로 있던 아동문학가 최계락 씨의 주선으로 촉탁 공보비서 자리를 얻게 되어 시장의 축사나 식사 원고를 작성해 주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부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평론가가 밥의 뉘 정도였던 평론분과 위원장도 맡고 있었다. 전 장르를 합해 문인의 수가 20여 명 안팎이었던 까마득한 시절이다.

62년도라고 기억된다. 부산문인협회 회식 자리에 그가 나타났기에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첫인상이 참 이상하다 싶었다. 키도 작고 안색은 거무스름
하고 코는 납작하고 이마는 짱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광복동 뒷골목에 있는 글쟁이들의 단골 술집에서 그를 만났다. 간단히 한잔 하고 헤어지는데 집이 어디냐고 묻기에 초량역 부근이라 하니 자기 큰형님집도 거기서 멀지 않아 있다며 같이 가자는 것이다. 초량역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같이 내려 내가 잠을 자고 있는 큰삼촌의 수도사업소 점포에 들러 곧바로 초량 시장 개울가에 있는 단골 곰장어집으로 갔다.

술이 좀 오르니 쉴 새 없이 재담과 명동 시절의 이야기에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마구 쏟아냈다. 나는 문단의 초년병 시절이라 문단이나 문인들 이야기가 그저 새롭고 신기하기만 해 듣고만 있었는데, 그날의 백미급 이야기는 소설가 한무숙댁에서 식객노릇을 할 때 있었던 이야기였다.

어느 날 밤에 술 생각이 간절해 평소 보아두었던 안방 화장대 위의 양주병이 눈에 얼른 걸려 부부가 잠든 사이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살금살금 들어가 어둠 속에서 더듬어 갖고 나와 그 자리에서 마셔보았는데 이게 웬걸 향수병이었다나! 나는 포복절도를 했다.

그날 밤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형님댁이 멀지 않고 자기가 단칸방을 혼자 쓰고 있으니 한사코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것이 그와 나 사이에는 이 세상에 있었던 처음의 동침이요 마지막 동침이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매우 친해졌다. 그 뒤 시내로 오가는 길에 심심하면 점포에 들렀다. 나는 꽤 여러 번 억지로 야밤에 술벗이 되어준 경우가 있었는데 때론 아주 늦은 밤에도 들를 때가 있었다. "이유식 씨, 이유식 씨"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점포 덧문을 두드리는 통에 이웃에 피해를 준다 싶어 벌떡 일어나 곧
장 곰장어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나는 60년대 중반에 서울로 와 기자생활을 잠시 하다보니 그와는 인연이 끊겼는데 서울에서 그를 다시 만난 것은 70년대 초였다. 길거리에서 두어 번 만났는데 역시 세금을 요구해 손에 쥐어준 적이 있다. 기질과 팔자소관이 영원한 보헤미안이다 보니 기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 이유식
문학평론가. 수필가

[미래문화신문 제10호(2009.7.29) 수록]
                                           

            

 
이유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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