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이유식 평론가님 방

이유식의 문단 비화(5)-김수영 편

은빛강 2010. 4.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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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문단 비화(5)-김수영 편
한 자유인의 초상, 김수영 시인

[이유식의 문단 뒷골목 이야기]

내가 김수영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65년도 초인데, <세대>지 기자시절이다. 김수영은 <사상계>지 64년 12월초에 <난해의 장막>이란 제목으로 64년에 발표

▲ 이유식 평론가
된 시와, 기타 시론을 총평했던 글이 도화선이 되어 <세대>지를 통해 전봉건 시인과 그 사이에 논전이 오갔다. 

65년 1월초에 전봉건 시인이 《사상계》지 문제의 그 총평 중, 특히 자기와 관련된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 <사기(詐欺)론>(김수영 시인에게 부쳐)을 발표했고, 바로 그 다음호인 2월에는 김수영의 <문맥을 모르는 시인들>(사기론에 대하여)란 반박문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어느 날 김수영 시인이 그 반박 원고를 가지고 그 당시 을지로 2가에 있었던 <세대>사 사무실로 찾아왔다. 처음의 방문이고 또 나와는 첫 대면이었다. 비록 초대면이긴 하지만 이미 서로 글로서야 알고 있었던 처지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원고를 건네 받았다.

후배인 나는 문단 데뷔 이전, 평론 공부를 할 때 이론서가 귀한 시절이라 그가 번역한 <20세기 문학평론>이란 책을 사서 읽어도 보았고, 48년도에 나온 김경린, 박인환, 박태진과 함께 엮은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물론, 59년도에 나온 그의 생전의 유일한 시집이 되어버린 <달나라의 장난>도 읽어 보았다.

뿐만 아니라 <사상계>지 63년 12월호에 그가 쓴 63년 시단평 <세대교체의 연수표>에서 나의 시론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읽었고, 또 <현대문학>지 편집기자인 김수명씨가 바로 매씨라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서로가 큰 격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음식을 들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당시 시단의 큰 이슈이기도 한 난해시 문제를 두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고, 또 몇 편 발표해 본 나의 시론에 관해도 이야기하면서 본격적인 시론가가 귀하니 계속 정진해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덧붙여, 이번 논전의 상대인 전봉건 시인과 <세대>지와의 관계를 좀 더 알고자 했다. 현재 경향신문의 고문으로 있는 이광훈씨가 그 당시 편집장으로 있었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각별할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설명해주었다. 전봉건 선생이 주간으로 가있는 월간 <문학춘추>에 이 편집장이 평론가로 데뷔했으니 자연 자주 글을 발표하고 있다고 귀띰해 주면서 이번 논전의 1라운드가 우리 지면에서 시작된 사정을 덧붙여 주었다.

그 분의 첫 인상은 좀 남다르다 싶었다. 키는 중키에다 좀 깡마른 심성질 체격이었고, 눈은 무엇에 놀란 듯 휑하니 컸지만 눈빛만은 형형했고, 머리는 자다가 갓 일어난 사람처럼 부스스 했다. 형색은 영판 시골사람이었다. 한복에다 겨울이라 검은 물을 들인 군용 야전잠바를 걸치고 있었고, 신은 검정 고무신에다 천으로 된 요즘 학생들의 신주머니 같은 백을 들고 왔다. 사실 그날의 원고도 그 백에서 나왔는데, 말하자면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핸드백인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활 환경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런 여건이었다. 그 당시로 봐서는 서울 변두리 지역인 마포구 구수동에서 번역 일을 주로하며 양계를 했으니, 구태여 멋낼 처지도 아니었고, 또 멋 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날의 친구 박인환이 늘 깔끔한 차림새로 다닌데 반해, 설사 그가 직장인이었다 할지라도 겉모양에는 무신경할 분이 아닌가 싶다.

그는 68년 6월 귀가 도중 버스에 치여 병원에서 그 다음 날 돌아갔다. 평화신문 문화부 차장으로 6개월 근무한 이력 이외는 이렇다 할 고정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번역, 양계, 대학강사, 글쓰기가 바로 그의 주업이었고 생활수단이었다. 그의 문학은 사후 70년대부터 이른바 민중문학이 득세를 하기 시작하자 신동엽과 함께 우군으로 영입되어 크게 빛을 보았는데 그를 잘 아는 나의 입장에서도 좀 부풀려진 감이 없지 않다 싶다.

시의 양심과 삶의 자유를 늘 깃발처럼 펄럭이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한 자유인의 초상을 본다.

■ 이유식
문학평론가. 수필가

[미래문화신문 제11호(2009.8.18) 수록]
                                           

            

 
이유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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