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가시나무새가 우는 까닭은,

은빛강 2011. 4. 17. 16:03

늘 시행착오를 한다.

약 1년이 다 되어서 나는 사람 속에 또 다른 사람이 분분히 존재함을 알아야 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둔치라는 소리를 들어도 모르고 사는 게 좋다.

 

아름다운 인간의 뇌에서 고약한 사고가 흐르고 있다면 아마 그 악취는 후각이 존재함을 후회하듯이......,

그러한 나는 그렇지 않게 살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글쎄 뭐 그다지 답변 할 것이 없다.

 

오늘 같은 경우 촉각을 다투며 행사장을 세팅을 해야 하는데 괜히 다가와서 무언가를 종용을 하는 객이 있었다.

"아직 행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답을 하며 정말 손이 보이지 않게끔 부지런을 떨고 있는데

그 객은 자꾸만 시비조로 딴전을 걸어온다.

갑자기 머리가 멍하다. 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무얼 해야지?" 그냥 맥이 뚝 끊겼다. 그리고 다시 생각났다.

하던 일을 다시 했다.

"이것봐 뭐라고 말을 해야지?" 아주 반말이다. 내 등 위로 재미가 있는지 계속 지껄인다.

일행 한 명이 다른 물건들을 가지러 가고 없던 시간이었다. 아마 그 일행이 그걸 봤으면 평생 신문사에 살아 온 분이신지라

좌시 할 분이 아니었다. 우선 그것이 머리에 스쳐갔다. 해서 엎드려서 묵묵히 내 일을 했다.

객은 한참 거품을 풀어내다 갔다.

이러한 현상은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공해에 찌든 액화현상이 온몸을 조금씩 녹여 들어온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독소이다.

 

지나간 기상변화를 체크 해 보니 너무나 어이없는 오염이 녹아든 빗물을 내게 퍼부었다.

나는 그를 과연 어느 날 까지 용서를 해야 옳은 것일까? 란 과제가 내 앞에 떡 버티고 서있다.

그들은 그러한 일상이 별 이상 없는 삶이였다.

그러기에 더더욱 상대방에게 얼마만큼의 독소를 퍼부었는지 양심에 기별도 가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용태를 그려보는 순간,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른다.

 

도심에 핀 매화꽃이 만개를 하고 집 앞 골목에 목련은 슬프게 내려앉으며 골목을 하얗게 덮었다.

그 꽃잎 길을 지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들의 오만과 만용을 받아주어서 잘못 된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한 것이 잘못인가?

모르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는 최면감에 숨고 싶었는가?

아니, 그들은 전혀 그럴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나쁜 생각을 해서 그들을 오만한 죄인들로 몰아붙인 것이야,

스스로 나는 잘못을 빌었다.

허공을 향해 나의 주님께 용서를 빌었다.

너무 부끄럽다고 죄송하다고 주님께 빌었다.

허나 뒤집어 놓고 보니 두더쥐 몇 마리가 볼록볼록 길을 만들고 지나갔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지만 지는 순간만큼은 허무이다.

그것은 슬픔이고 가련 이다.

그리고 기억에서 멀어진다.

곤 녹음이 밀려오므로......,

 

고개를 젖히고 아직 남은 목련 꽃들을 올려다보며

그래,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살면 되는 거야,

그들도, 나도, 삶의 방식은 바꿀 수가 없는 일이지,

자연 속에 속한 우리는 그야말로 자연이므로,

 

고단한 몸을 푹 쉬게 하고 나면

그 아픔들이 해독이 될 거라는 내 삶 방식의 믿음으로......,

 

아직 가시나무새처럼 가슴에 가시는 많이 박혔지만

마지막 그 아름다운 울음을 울어 댈 시간은 아니거든,

그 새는 그렇게 죽어가므로,

나에게 주어진 그 시간이 오면

하늘의 아버지께 수치스런 모든 잘못의 죄들을 울음으로 울 것이야,

 

햇살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