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이굴위신(以屈爲伸)④

은빛강 2012. 4. 17. 01:48

인문학 스프-고전
이굴위신(以屈爲伸)④ - 수레바퀴를 만들다 보면(輪扁造輪)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자의 우화입니다. 중국 제(齊)나라 환공 때 평생을 임금님 수레 만드는 일로 보낸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이 하루는 궁전 뜰에서 수레바퀴 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환공도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문득 수레바퀴 깎던 목수 노인이 단상으로 올라가서 조심스럽게 환공에게 물었습니다.
"임금께서는 무슨 책을 읽고 계시는 겁니까?"
환공은 잠시 눈길을 돌려 목수를 바라보았습니다. 독서 삼매경이었던지라, 마치 잠시 다른 세계를 다녀온 듯 아연해 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답했습니다.
"성인의 말씀을 보고 있다네."
목수가 물었습니다.
"그 분은 현재 살아 계십니까?"
환공...이 대답했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지."
그러자 목수가 반문했습니다.
"그렇다면 임금께서는 그분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를 맛보고 계시는군요."
노인의 말투에서는 상전에 대한 공경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무지한 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어조만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환공은 크게 노했습니다. 그리고 목수 노인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성인이 남긴 책을 읽는데 감히 망치와 끌과 정 따위를 써서 수레바퀴를 만드는 자 주제에 어찌 참견을 하느냐! 지금 즉시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너를 죽이고야 말리라."
그러자 목수 노인이 말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로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무로 수레바퀴를 깎을 때, 끌과 정을 사용하게 되는데, 통나무를 둥글게 깎아 가는 과정에서 깎는 속도와 손끝에 가하는 힘의 정도, 그리고 마음가짐에 따라서 만족스런 수레바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거기서 노인은 잠시 환공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환공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자 이내 다시 말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평생토록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을 자식에게 가르쳐 주려고 해도 도저히 그 요체를 전할 수가 없습니다. 수레바퀴가 적당한 탄력성과 견고함, 그리고 유연성을 갖도록 만들려면 오직 손끝으로 전해지는 직감과 오랜 세월동안 눈에 익은 목측(目測)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옆에서 도와도 그 비법을 전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입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어름에 정확한 치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저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성인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깨달음은 책에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환공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환공은 가만히 책장을 덮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말을 마친 노인은 묵묵히 단하로 내려갔습니다. 환공은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제나라 환공이 그 후 중원의 패자가 된 데에는 그런 현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그것을 귀담아 듣는 환공의 그릇도 그릇이었고요.

윤편조륜(輪扁造輪) 이야깁니다. 제가 들은 장자의 우화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논설인 것 같습니다. ‘포정(庖丁)’이나 ‘설검(說劍)’에서 보이는 과장도 없고, 내용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데서 가져온 것이어서 설득력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몸으로 깨치지 못하면 쓸모 있는 재간은 여간해서는 얻을 수가 없는 법이지요. 세상의 요긴한 기예들은 말로 듣고, 글로 배워서는 경지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도 나이 들어 배우는 이런저런 공부를 할 때, 가급적이면 남의 문자나 영상을 멀리하려고 합니다. 그건 결국 그 사람들 것이지 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허위 전환’이라는 말도 겸해서 생각해 봅니다. 허위 전환 문제는 정치, 행정, 복지, 교육, 통일 문제 등 공공 분야와, 개인의 삶의 만족이라는 사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일종의 광범위한 보편적 자기기만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거철을 맞이해 그런 자기기만을 독려하는 분위기도 없지않아 있어 보입니다. 다행인 것은 선거 한두 번에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 같이 여기는 착시 현상이 더 이상 대중들에게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마 실패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국가 경영자를 뽑는 일에 ‘구세주 대망론’ 같은 것은 절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결과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윤편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공부문에서의 허위전환은 일반적으로 당시의 정치 논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아직도 대중들의 정치의식은 ‘부적절한 자원(資源), 경쟁, 의심, 비판, 질시, 단순한 어리석음, 우매한 떼거리 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언제나 허위전환을 통해 그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고 애씁니다. 윤편(輪扁)의 말처럼, 자칫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면 결국 ‘음식 찌꺼기’나 덮어쓰고, 헛된 ‘말과 글의 잔치’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복리는 사라지고, 너나없이 소외되고 핍박받는 삶을 살아야 되는 일이 생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오랜 손끝의 감각과 그 세월 동안 절로 먹게 된 마음가짐, 그 두 개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듯합니다. 지역 감정이나 세대 갈등론, 혹은 계급 갈등론 같은 것에 휘둘려서 몸으로 안 것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윤편이 그걸 가르칩니다. 몸으로 안 것을 존중하고 실천할 때 우리의 인생이 더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우리의 삶의 터전도 훨씬 좋은 것이 될 것이고요. 아침부터 외람되고 주제넘은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도 물론 ‘음식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양자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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