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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주교가 툭 털어놓은 중국 선교

은빛강 2013. 5. 1. 00:45

진 주교가 툭 털어놓은 중국 선교

 

입력일 :2013.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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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켈리 신부)

내가 처음 상하이교구의 진루셴 주교를 처음 만난 것은 1987년 상하이에서였다. 당시 그는 71살이었는데, 27년간 구금과 노동교화형을 받다가 1982년에 고향인 상하이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1955년에 수백 명의 가톨릭 신자와 함께 체포됐었는데, 이때는 그가 투옥될 당시 맡고 있던 교구신학교 학장 일을 다시 맡고 있었다.

그의 귀환은 그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이었으며, 중국 안팎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되었다. 공산 당국의 학대를 받아내야 했던 사람이 어떻게 공산정부가 공식 승인한 공개적 지위로 복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가 공산정권에 굴복하고 신앙을 저버린 것이 아닌가?

나는 중국인은 아니지만 같은 예수회원으로서, 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는 에두르지 않고 대답했다.

“마이클, 과거에 중국에 그리스도교를 들여오려던 세 번의 시도가 있었소. 셋 다 그리스도교 박해와 선교사 추방으로 끝났소. 세 번, 외국인들의 또 다른 물결과 함께 간섭들이 시작되어야만 했었소. 나는 네 번째가 또 그러길 바라지 않소.”

그래서, 진 알로이시오는 65살이나 된 1982년에 사람들이 별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로 했다. 그는 그를 박해하던 이들에게 완강히 저항하던 이들의 고귀함이나, 1950년대에 재난으로 끝난 접근법에 집착하던 이들의 찬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그의 재능과 연줄과 지성을 이용해먹는 데만 관심이 있던 권력자들에게 항복하지도 않았다.

확실한 사실은 그가 1950년대에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정통적 관점으로 인정받던 것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옛날의 정통적 관점은 공산당은 중국 역사에서 잠시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며 타이완으로 물러난 국민당이 언젠가 다시 본토를 수복한다는 것이며, 마오쩌둥의 공산정부에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불순종해야 그것이 교회에 제일 좋다는 것이었다.

그의 개인적 관점이 뭐든 간에, 그 또한 1950년대의 모든 지도적 위치의 가톨릭인들과 똑같은 운명을 겪었다. 그는 1980년대부터는 일부의 의심과 단죄, 그리고 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가톨릭교회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다고 그가 믿는 것을 완고히 주장하는 좁은 길을 걸었다.

내가 가진 진 주교와의 세 가지 기억이 있다.

첫째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기회를 주려는 그의 지치지 않던 노력이다. 그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세계 각지의 대학들과의 연줄을 이용해 많은 가정의 자녀들에게 장학금과 공부할 기회를 주었다. 그는 상하이 안팎의 많은 남녀에게 교회에 봉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새로운 길을 알도록 양성하고 권장했다.

둘째는 그가 아주 예수회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늘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수치와 반대를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몇 년 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에서 그는 투옥과 가택연금의 시절들이 있었다고 가볍게 얘기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철창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에 노동교화소에서 일하면서, 그는 그가 잘하는 유럽 말들로 된 기술서적들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막일을 끊임없이 열심히 해냈다.

그는 심한 인신공격을 당했고, 그의 적들이 – 일부는 그가 예수회 안에서 아직 젊었을 때부터의 적들 – 그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얘기를 꾸며내고 의구심을 퍼뜨리는 시기와 경쟁심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나는 이 시기의 일부를 그와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다) 중국교회의 성장을 도우려는 그의 최선의 노력을 교회 당국이 무지와 잘못된 정보 또는 공포심 때문에 아무런 설명 없이 또는 거의 설명하지도 않고 제지하려 할 때의 경험들도 있다.

셋째는 늘 보기에 즐거웠던 것인데, 그의 다정함이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또 친구들이나 후원자들에게서 호의를 받을 자세가 되어 있었다. 특히 그의 말년에 그랬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심장병이나 당뇨병 같은 건강문제가 더 커졌다.

그가 상하이에 설립한 수녀회의 수녀들에게 그가 받은 깊은 정성을 보라. 그 젊은 수녀들이 그에게 퍼부은 존경심과 보살핌을 보라. 그가 걷고 움직이며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필요했던 도움들을 그가 자비로이 받아들인 따뜻한 인간성을 보라.

햄릿에서 호레이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고귀한 심장이 무너지니, 다정한 왕자여 편히 잠자시길

그리고 천사들의 날개 위에 그대는 안식처로 날아가리.”

(마이클 켈리 신부는 <가톨릭뉴스> 대표를 맡고 있다.)

기사 원문: What real Mission requires, Bishop Jin had in spades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