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삶의 단상-수필

양파 껍질의 단상

은빛강 2009. 1. 9. 05:50

양파 껍질의 단상

                                                                                               설록 박 찬 현

천지 창조 이후, 지구상에는 많은 생명체가 살고있다. 전능하신 분의 마지막 창조물이 우리 인간이던가, 아무튼 사회구조 기반을 이루고 살아가는 탁월한 지능의 생명체로서 자처한다. 그러한 ‘인간’이라 명명 된 우리는 참으로 각양각색의 모습을 취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낮에 도심의 인구가 밀집 되어 있는 곳에 서면, 밀려서 흘러가는 인파들 속에서 더욱이 사람들의 향내는 제 각기 달라도 그 속내는 정녕 모르는 일이다.

시간을 뒤로 돌려서 어느 한 노파의 삶을 기억에 올려본다. 당시, 필자는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만 위주로 취재를 하여 매월 신앙홍보지에 실었다. 물론, 편집위원들의 의견과 논의 된 인물이 주조를 이루었지만 궤도를 이탈하는 재미도 있었다.

십년을 넘게 작은 시장 입구에서 좌판을 안고 계시던 노파는 외소한 몸에 세월이 많이도 혹사를 해버린 흔적이 선연한 그러한 분이셨다. 좌판 위의 물건은 계절 따라 그 목록이 달랐다. 주된 것은 콩을 까서 판매를 했고 옥수수를 쪄서 내 놓기도 했다. 그것들을 모두 합쳐봐야 기십 만원도 채 안 되는 값이다.

그러한 좌판 위 물건을 판매하여 얻은 이익금을 ‘성전 증축 금‘에 아낌없이 보탰고 본당 신학생들이 서품을 받을 양이면 그들의 필요한 제례용품을 구입 해 주었다. 물론, 그 점을 이용하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 해서, 어느 날 신문지 한 묶음을 들고 그분을 찾아 갔다. 기억으로는 더운 날씨였던 것 같았다. 햇볕이 들기전 서늘한 그늘에 신문지를 펴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노파는 필자와는 안면이 오래 전부터 있어 온 터였고, 그분은 녹내장으로 시야가 어둡다.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알아보시고 즐거웁게 지난 세월 빛바랜 삶을 녹녹히 녹여 내셨다.

노파는 연신 미소를 베어 물면서 과거 속을 유영하고 계셨다. 한국 내란이 끝나고 좌, 우익이 갈라져 그 유명한 ‘종로서’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절명 해 가는 목숨이 숱하게 많았다. 허나, 당시에는 금전은 통했다. 목숨을 구하는데 아주 용이하게 쓰여 졌던 것이다. 일찍이 주정이 심한 남편을 뒤로 하고 자녀들을 좌판으로 학업을 시키면서도 노파는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생명줄을 건지기 위한 손길을 마다않고 여력이 닿을대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귀한 생명을 구한 이들이 지금은 무엇들을 하고 살아가는지 연락이라도 하시느냐는 질문에 “아무도 안와, 그때뿐이지 기억이나 하겠어...,” 손님에게 옥수수를 건네 주시면서 그냥 웃어 넘기셨다.

서대문 형무소를 공원으로 개방하기 위해 공사를 할 무렵 그곳에 들릴 일이 있었다. 형무소 안, 사형장 그 앞에 미루나무 한 그루에는 나무 아래가 갈퀴처럼 생겨있다. 사형수가 그곳에 다다르면 그 미루나무 갈퀴를 움켜잡고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다고 교도원은 일러주었다. 일제 강정기, 한국 내란 후, 많은 인원들에게 사형을 집행 하는 날엔 그 미루나무는 이상하게도 푸르던 잎이 메말라 있다고도 했다. 사형장 방안, 밧줄이 달린 쇠자루를 당기던 그 레바도 손 떼가 묻어서인지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반들반들 했다. 죄수가 앉았던 조그만 사각 마루판이 아래로 열린 그 아래로 심한 악취가 풍겼다. 생명이 존재하는 인간이 자연사 하지 않은 이상 그 시간은 아마도 유추 해 보건데 지옥의 산실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한 死路에서 生路를 바꿔 탄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의 마음은 묽어진 것이고 작은 노파를 향한 마음은 허공으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노파의 조그마한 체구와 행색이 초라해 주변 사람들마저도 하찮게 응대 하였던 그 과거지사는 영웅 지사였다.

노파가 무척이나 자식처럼 아끼던 젊은 보좌 신부에게 마지막 남은 자산을 주었다. “그분은 좋은데 분명 쓰실게야. 이건 비밀이야, 우리 둘이만 알아야 돼, 알았지?” 그러면 그분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느냐고 묻자 “응, 밥 한끼 나누고 싶어,” 그 통장은 밥값이라고 일러 주셨다. 헌데 그 보좌 신부는 그저 할머니들이 신부들을 아끼고 좋아라 하는 줄 알고 행려객들이 한끼 떼우는 식당에 모셔 가시어 밥 한 끼를 나누셨다. 그래도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리시며 좋으시단다. 후일 그 보좌신부가 타 본당으로 가고 없자 몸져누우시더니 얼마 안되어 그리움으로 병이 들어 한 달도 안되어 세상을 떠 나셨다.

물론, 가시기 전에 약국을 하는 따님 집에 마지못해 들어가시긴 했지만 운명하시고 장례를 치룬 후, 그분 삶이 담긴 홍보지를 읽고서 사위도 노파의 인품에 감동해서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 노파의 파란많은 일대기를 알고 난 연후 그분 가족을 접할 때 새삼 다른 모습들이다. 아마도 그들은 노파의 외관의 삶만을 보아 욌던 것일 게다.

노파는 그 분만의 하느님을 모시고 빈자의 성모님처럼 굳세고 청렴하게 의로운 일에 마음 먼저 움직이며 살아오신 거룩한 삶이였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겸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다면성으로 상대를 접한다거나, 양면성일지라도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과오를 성찰하고 뉘우침이 있느냐에 관건이다. 아울러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는 사고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해야겠다. 왜 그런고하니 우리 자신 입장들과 가족들의 향후 입장이 어떠 할지는 아무도 예측 하지 못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면 매우 불쾌 할 여지들이 많을 것이다.

양파 속은 아무도 모른다. 그 겹겹이 싸인 속내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하물며 사람 속내는 더 더욱이 모르는 입지이다.

세월의 시간이 짧을수록 생각하는 시간은 길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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