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詩 마당

장례미사를 모두 마치고

은빛강 2009. 2. 21. 03:25

 

 

바쁜 나날들이 지나갔다.

카톨릭(보편적)종교에서는 사람이 운명을 하면 고인을 위해 어서 빠른 시간 안에 태초 세상을 지으신 하느님 곁에 가시길 기원하며 연도를 바친다.

이번 故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으로 각 성당에서는 시간을 간격으로 선종실에서 연도를 끊이지 않고 연결하여 연도를 바쳤다. 또한 장례미사는 명동 주교좌 성당에서 집전하는 미사시간과 같은 시간에 각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진행 되었다. 관례적으로 장지수행 절차가 끝이 나야 장례의 본연의 의미를 다함이다.   하지만 용인 성직자 묘지는 한정 된 인원이라서 장지수행의 하관 예절은 평화 방송을 통해 행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일원화 하였다.

추기경님의 일대기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국가가 군부 독재권력에 시달릴 즈음 추기경님은 늘 시국 선언문을 하시느라 고뇌 하셨고 분기 충천하는 젊은 사제들에게는 자제를 촉구했다. 나의 기억 속에 어느 몇 명의 사제는 아주 입에 담기 민망한 말을 했다.

요지는 추기경님이 몸을 사리고 나서지 않고 국가를 상대로 분기 탱천하는 사제들에게 자제를 촉구 했다고 해서 그 나름 대로의 의견을 피력했다.

인도의 간디도 그러했거니와 영화 '미션'과 지금 언뜻  떠 오르지 않는 중남미 어느 주교는 무력에 저항하지 않고 인문주의에 입각 해 설득과 내적으로는 기도를 항구히 했다. 그들은 종국에 무력의 총탄에 피를 흘리며 순교를 하셨다.

군부독제의 그 당시대를 살아 온 우리들도 시국선언문을 읽었고 국가를 상대로 추기경님은 당신이 취하셔야 할 일들을 몸을 사리지 않으시고 항거하셨다.

명동성당에 숨어든 저항세력을 잡아가려면 "나를 밟고 성당 안에 남아 있는 사제들을 밟고 수녀들을 밟은 연후에 학생들을 잡아가시오!"라는 굳은 의지의표명은 거친 무력의 항변 보다 더 크게 파장을 일으켰음이다.

결국 추기경님의 굳은 의지 표명으로 하여금 성당안에 운집 해 있었던 학생들은 무사히 집으로 귀가 했다.

그렇게 국가의 존망으로 시달리시 던것이 어언 10여년 추기경님도 피곤하셨다. 그 십자가는 곤욕 이셨을 터이고 한 인간의 입장으로서는 고통의 짐을 계속 져야 하는가에 심히 의문을 가지실 법도 하다.

한 울타리의 사제들 마저도 뜻을 달리하는 무리들이 생겨나 시국을 함께 걱정을 하여도 모자를 형편인데 자신의 입장 피력이 늘 앞섰다.

그러한 하세월이 지나고서야 국가는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추기경님은 대주교의 직무인 교회 안을 살피시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오셨다.

그리고 현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님을 추기경으로 승격하여 승인을 받아 내시는데 주력을 하셨다. 당신의 짐을 편히 벗고 교회의 기둥인 후계자인 추기경을 살아 생전에 세우시고 세상의 짐을 벗으며 신학대학으로 돌아가셨다. 당신의 그림자를 거두실 요량으로 쉬실 곳을 세가가 아닌 사제를 배출하는 땅으로 가셨다. 왔던 곳을 향하여 걸어 가시기 위하여, 

그렇게 당신을 낮추셨기에 낮추 아니 보신 사람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놀랍도록 그분을 존경하셨을까,란 생각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가 살아 가신 그 길을 그대로 따르려면 그분이 마신 고통의 잔을 마셔야 한다.

허나, 그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앞에도 열거 했지만 고뇌와 번민 속에 죽음같은 고통이 밀려 와도 그것을 말없이 졌다. 그러나 우리, 아니 나는 고개가 저어진다. 내가 겪는 고통은 그냥 다가 오니까 겪는다 하여도 그 뒤에는 늘 많은 불평불만이 한 없이 쏟아져 있다. 그냥 얌전히 받아 든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내 십자가는 왜, 무거워야 하는가? 저들의 소행은 왜, 관망만 하시는가? 등등......,

그런 요나같은 생각으로 살아 간다.

그러니 참으로 버겁고 어깨가 바스라질 정도로 괴로운 고통을 어느 누가 덥석 지겠는가,

이번 추기경님의 장례절차를 지나 오며, 우선 나 부터도 쇄신이 되어야 겠지만 교회 안의 만연한 사람들과의 갈등들,

한 발 물러서면 산뜻한 생각이 고여 올법도 한 일들에 서로 자신을 삭이는 교회안 밖의 모습이 되길 생각 해 본다. 아무리 사람들이 모여 무리진 작은 사회라고는 하지만 추기경님의 마지막 금옥 같은 유지의 말씀을 생의 좌표로 삼는다면 한결 우호적이 될 것 같다.

어제 그분의 하관예절을 보며 아, 이제 모든 버거운 짐을 벗고 이제야 하늘나라로 편히 가시는구나,

"편히 쉬십시오. 추기경님,"

언젠가는 오해와 편견은 풀리기 마련이니, 그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함부로 말이란 것을 쏟아 놓았는지 진심으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무력에는 무력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그들도 세월이 저만치 흘렀으니 돌아 보면 참으로 큰 착오의 판단을 하였음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리 없이 많은 신자들이 올린 기도가 얼마나 무수히 많았음을 덤으로 깨달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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