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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출판(自費出版) -김문호

은빛강 2010. 3. 20. 01:48

자비출판(自費出版)

[김문호]

틈틈이 써 모은 글이 수십 편이었다. 정기 문예지나 동인지 등속에 실렸던 것과 아직 발표되지 않은 것들로 책 한 권은 족히 될 만한 분량이었다. 나도 책

▲ 김문호 수필가
을 내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것은 지금껏 글을 쓰면서 은연중의 여망이기도 했다.

막상 책을 만드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은 자신의 원고뭉치를 제 손으로 싸들고 출판사를 기웃거릴 일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것은 회중(會中)의 자기 술잔에 스스로 술을 따르는 것처럼 구차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누군가의 부추김이 있어서 못 이기는 척 응하는 듯한  최소한의 염치만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만큼의 관심은 어디에도 없었다. 문단의 지인들이라 해 봐야 기껏 마음도 없이 넘어가는 “책 안 내?”가 고작이었다.

아들 형제를 불러 앉히고는 남의 얘기를 하듯 떠 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나의 한 친구는 전혀 뜻이 없었지만, 자식 놈들이 소요 비용까지 장만하면서 성화를 부리는 통에 부득불 출판을 하게 되었다더라고. 그러자 큰 놈이 지체 없이 응대했다.

“책을 내는 목적이 뭔데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녀석의 질문이 워낙 뜻밖이기도 했지만, 나 또한 출판의 당위 내지 필연성 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과시욕에 다름이 아니지 않을까 하면서 난감해 하는 중에 둘째 놈이 치고 나왔다.

“책을 출판하면 어느 정도는 팔려요?”
이에야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아마도 팔리지는 않을 걸.”
“그럼 뭣 하러 쓸데없이 돈을 들여요, 낭비잖아요?” 
제 깐에는 대기업의 간부사원임을 자처하는 두 놈의 완벽한 이구동성이었다.
추천사나 발문을 구하는 일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법 안면이 있는 인사라 할지라도 가볍게 부탁할 일은 아니었다. 시정의 거래처럼 돈을 드릴 테니 써 달랄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 체면도 아니거니와 자칫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사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상당한 신뢰와 호의가 축적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어서, 자비출판을 감행하려는 초심자에겐 글을 써 모으는 것에 못잖은 어려움이었다. 

안면을 접고서라도 이름 있는 평론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글에 대한 사전 청탁의 비평이란 애초에 웃음거리라는 생각이었다. 

제 돈을 내고 책을 찍는 계약이지만 육필원고는 안 된다고 했다. 원고 일체는 이메일로 전송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며칠 후에는 교정을 보러 출판사로 나오란다. 내가 쓰고 내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서 전송한 글의 띄어쓰기와 철자법을 내가 바로잡는 절차라 한다. 출판사의 하는 일은 도대체 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사무실로 책이 배달되어 왔다기에 받아 두라고 했더니 배달료를 달란다고 했다. 자기들은 출판사도, 인쇄소도 아니며 의뢰받은 택배조건이 수취자부담일 뿐이라는 이치였다. 원고교정에 이어 이 또한 소위의 셀프서비스인 셈이었다. 

셀프서비스, 그것은 급수가 낮은 식당에서 ‘셀프’라는 불완전 명사로 만나게 되는  서민들의 당혹감 같은 것이었다. 고만한 밥값으로 원초적 허기를 때웠으면 물을 갖다 마시든, 커피를 뽑는 일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박대인 동시에 보잘것없는 자아(self)를 불가항력적으로 인식시키는 가학에 다름이 아닌 것이었다.

한글도 아닌, 그렇다고 온전한 영어도 못 되는 ‘셀프’의 진정한 비애는 그 다음이었다. 내 책을 신문사의 서평 담당자 앞으로 배달하는 용역이 또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야 지금껏 농축되었던 내 인내가 폭발하면서, 그간 모르고 믿었던 세상 한 구석이 와장창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지금껏 나는 일간지에 신간들을 소개하는 그들을 대단하게 알고 있었다. 일간(日刊)의 바쁜 업무 속애서도 주말의 출판계와 서점가를 섭렵하면서 그만한 감별을 해내는 그들의 에너지야말로 출판문화의 견인동력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던 그들의 시계(視界)가 만약에라도 배달받은 물량에 국한된다면. 그나마 출판사나 배달꾼들의 안면으로 골라 받은 수박의 겉핥기가 고작이라면. 못 들은 걸로 하자면서도 마음이 시려왔다.

서점들을 둘러보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럴 맘이 들지 않았다. 어리지도도 않은 어릿광대의 비애를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았다. 기왕에 사무실로 배달된 수백 권이야 그간 내게 책을 보내준 분들에의 답례만으로도 충분히 유효하리라 했다.

달포쯤 잊고 지냈을 때였다. 지방의 한 친구가 서울에 왔다가 어느 서점에서 내 책을 샀다면서 감격스러워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 흔한 신문사의 서평도 받지 못한 내 책이 여태 서울의 유명 서점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종로의 그 서점으로 달려가 봤다. 과연 그곳 비소설부문의 현수(懸垂)간판 아래 내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도 대다수의 다른 책들처럼 수평으로 누운 것이 아니라 진열대 한복판의 수직 지지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나보란 듯이 뽐내며 서 있었다. 당초에 다섯 권을 진열했다가 세 권이 팔려나간 듯, 남은 두 권이 저명 작가들의 책과 손색없는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형제처럼 포개어져 있었다. 아이의 가을운동회에 뒤늦게 도착했다가, 아이놈의 백 미터 달리기는 이미 끝나버렸지만, 시상대 앞의 일등 줄에 의젓이 앉아있는 녀석을 발견하듯 감격스러웠다.

흐뭇한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더니, 2월도 중순을 넘긴 겨울바람에 훈기가 배어있었다. 이제 곧 봄이 오러나 했다. 내친김에 세종로의 문고에도 들러보고 싶었다. 

그곳의 신간 진열대에는 내 책이 없었다. 당혹감을 감추면서 두리번거리던 중에 건너편의 ‘시, 수필’ 코너가 눈에 들었다. 워낙 대형 매장이니 의당 세분되어 있으리라 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내가 찾고 있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용 컴퓨터를 지시 요령대로 두들겨 봤지만 휑한 화면뿐이었다. 너무 여러 가지를 입력하면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구절이 전부였다. 혹시나 하면서 책 제목만을 두드리자, 내 이름과 함께 책의 앞표지가 뜨면서 진열대의 번호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기웃기웃 찾아간 매장은 지금껏 보아 온 진열대가 아니었다. 다섯 층도 넘는 수직 책꽂이에 폐기 직전인 듯 잡다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간 눈에 익히지도 못한 옆 표지의 모습으로 내 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진열대마다에 등을 대고 퍼질러 앉은 젊은이들이 통로를 메우고 있었다.

여자점원이 그들의 등 뒤에서 뽑아온 내 책과의 대면이 서먹하면서 당혹스러웠다.  못난 아비 탓으로 양육기관에 맡겨진 자식 놈의, 지치고 남루한 모습을 모처럼 만에 대하듯 불쌍하면서 무색했다. 도저히 그냥 두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정가를 물어보는 절차도 잊은 채 책값을 내밀었다.

그녀가 판매확인 도장을 찍고 종이봉투를 준비하는 면전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뒤표지의 사진으로 나를 알아볼까 두려웠다. 포인트 적립카드가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는 단연 말도 아니라면서 외면했다. 제 잔에 술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궁상맞은 나의 정체를 그녀에게 들킬 일은 죽어도 아니었다.

회전문을 빠져나오면서 생각했다. 여자 점원을 그토록 의식했던 것은 어쩌면 나의 과잉반응이었으리라고. 초미니스커트의 늘씬한 몸매만으로 채용되었을 뿐, 계산대의 가격 판독기나 다름없는 그녀들의 눈에는 책의 제목이나 저자의 이름 같은 것은 얼씬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어처구니없었던 나의 과민은 아마도 지금껏 탈피하지 못한 내 지난날의 잔재 때문일 것이라고. 책방의 점원이라면 고전은 물론 웬만한 신간쯤은 줄줄 외던, 그래서 서점에서 일하는 형이나 누나들이 그렇게 멋있고 부러웠던 시절의 추억. 그러나 한편, 내가 이 시대의 글쓰기에 목을 맨 전문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지표로 올라서자, 왕복 10차선도 넘는 먼지 낀 가로를 쓸고 가는 초저녁 바람이 숨 막히게 매서웠다.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내일 모레건만 겨울이 되돌아오려나 싶었다.

■ 김문호
수필가. 한일상선(주) 대표이사

[월간 한국수필 2010년 3월호 수록]

출판의 비애는 오래 된 일이다.

아주 쉽게 풀자면 출판사는 상인이다.

문학을 추구하는 이들의 맑은 감성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일이며 그것이 현주소이다.

그래도 인지대 받고 출판을 해 본 경험으로 족한 옛 구석기시대 추억

아마 그래서 남은 세월 나는 책을 발간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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