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그대의 유품

은빛강 2010. 3. 25. 10:37

지금 계신 곳은 따뜻한가요.
계절은 속절없이 지나가는데
어느 지붕 아래 슬픔에 잠겨 있을 그대, 환희에 들떠 있을 그대 모두
지금의 이 기억은 몇백 년 후
차디찬 부장품들 가운데 한 줄 쯤 남을 수 있을까요.


       





그대의 유품
ㅡ무덤 박물관에서--------------------------------------------------박서영




당신의 몸에서 나왔다
쇠뿔손잡이항아리 청동솔 청동거울 화로모양토기 손잡이굽잔 긴목항아리 바리형그릇받침 오리모양토기 납작바닥긴목항아리 말모양띠고리 호랑이모양띠고리 돼지이빨팔찌 말투구갑옷 창 굽은손칼 청동팔찌 목걸이

흙벽을 깎아 당신의 기억을 수습하였다
정밀한 고요가 턱턱 날아가
유골을 수습하는 손을 붙잡는다
흰 뼈가 미소짓는 걸 본다

당신의 몸에서 나왔다
은행나무와 느릎나무와 산사나무의 씨앗들 웃음과 눈물과 증오와
배반의 씨앗들 사랑과 이별의 씨앗들 아침과 저녁과 生年月日 짧은 한 줄의 섹스 저 간절한 봄날의 긴 한 쪽!

당신은 나의 기억이다
지금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지만
당신의 유골이 기억하는 것 또한
어디로 흘러가 사라져버린 핏물이 아닐까
당신이 타고 가버린 산자의 벽을 긁어본다
기다렸다는 득 관짝이 벌어진다
지극하다 천천히 태어나는 저 남자



*시는 시와 사상 2005년 겨울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