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단 한 차례의 멸종------강정

은빛강 2010. 3. 30. 08:04

바람처럼
아주 낯설고 먼 곳에 나를 데려다 놓았을 때
거기서 만나는 빗소리는
몇 생을 따라다니는 친근한 나의 또 다른 영혼의 분신 같음을
몸이 먼저 압니다.


       



단 한 차례의 멸종-------------------------------강정





대숲이 늘씬한 허리를 굽혀 바람과 맞서는 건 견디기 위해서가 아니다
소슬하게 우는 푸른 음색은 단 한 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살의 거센 움직임을 닮았다
어깨를 낮춘 사람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거리 한 켠 낮게 출렁이는 바다
자동차 불빛이 빗금으로 힘을 받는 대숲의 허리를 타고
투명한 빙어 떼처럼 날아오른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빗방울에 용해되어 천지에 난사된다
생의 모든 순간을 단숨에 탄주하는 바람
대숲의 휘어짐에 따라 내 몸은
그 어떤 만선의 기쁨보다 벅차게 도로 위를 떠다닌다
온몸을 떼미는 힘에 의해
스스로에게서 빠져나오는 자유를 얻는 건
원시적부터 몸이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본능이다
대숲이 허리를 세우고
하늘이 바다 아래로 흘러 지상의 소리를 바꾼다
처음으로 화답하는 당신의 몸엔 초록 비늘이 단단하다




*시-현대시 2005년 7월호에서 골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