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벚나무 위 집--김영찬

은빛강 2010. 4. 19. 13:31


주눅이 든 벚꽃이 마지 못해 피었습니다.
어김 없이 ‘그때’가 되고 싶지만 녹록치 않은 개화의 문턱입니다.-설록-

       




벚나무 위 집

-----------------------------김영찬



벚나무 위에 집 짓고 싶다

벚꽃 환하게 피어 꽃등 켤 무렵
나는 나의 들창에
초승달 예쁘게 램프 걸어놓고
미루다가 읽지 못한 책을 실컷 읽는 대신
바람의 꼬리를 붙잡고 멀리 떠나는
여행이나 하고 싶다

벚나무 벚꽃 피었다 간 자리에
버찌들은 검은 활자로 익어 법석을 떨겠지만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읽는 건 지겨워라
검붉은 열매 이전
철없는 계집애가 숙녀가 되겠다고
젖꼭지 아파올 때처럼
초록빛 아물 때가 나는 늘 눈물겹다

내 양쪽 날개 어깨 위에
두두둑 먹물 쏟아붓는 버찌들의 극성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이 버찌 잉크를 찍어
시를 쓸 수 밖에 없지만

벚나무 위 내 집엔
꽃나무 울타리 친 침대가 놓이고
구름은 레이스 침대보를 새로 깔아놓아
나하고 하룻밤 동침을 원하는
봄날

산뜻한 벚나무 위

벚꽃 환하게 켜 꽃등 켤 무렵
벚나무 위에 집 짓고 싶다





*시는 시안 봄호에서 골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