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사랑법,강은교-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은빛강 2010. 5. 4. 10:08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의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시집 『풀잎』(민음사, 1974)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의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나니

 

 

-시집『이 시대의 아벨』문학과지성사, 1983)

 

'시향을 창가에두고 > 詩하늘 詩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꽃밥  (0) 2010.05.04
[스크랩] 복기復棋  (0) 2010.05.04
목련-청하 권대욱~휴먼메신저/김영원   (0) 2010.05.03
장미 100송이---李英芝  (0) 2010.04.28
새와 수면---이정환  (0) 2010.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