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종이강에 그린 詩

[제81회 종이강에 그린 詩]-저무는 강가에서--남정

은빛강 2010. 10. 26. 01:02

[제81회 종이강에 그린 詩]

 






저무는 강가에서

-남정





길 떠나온 지 오랜 새 한 마리가 있네
은사시나무 무성하게 반짝이는 강기슭
물 위로 혼곤하게 떨어진 깃털 몇 장의 슬픔을
간지처럼 끼워 넣으며 둥지를 트네

온 밤을 지키는 그리운 노래를 위하여
몇 날 밤은 쉬지 않고 비가 내리고
어스름을 끌고온 길들은
모랫벌 어디쯤에서 스미듯 사라지네

저마다 흘러온 내력들이
강의 수심을 더 깊이 내리는지
흐르는 물소리마저 잠겨드네

강기슭 쪽에서 서성거리던 어둠이
세상 잔가지들을 가두네
홀로 남은 둥지
덩그러니 하늘 자락에 매달리네

새 한 마리 길 떠나온 지 오래네
떠나와 못다 부른 나의 노래를
누군가 나직이 불러주네
물소리에 잦아들어 더 멀리 퍼지네

아직도 가지 못한 길을 위하여
은사시나무는 폭포처럼 저리 반짝이고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길은 다시 이어지는데
기울어가는 둥지 너머
강이 또 저무네




*시는 『다층사람들』 2007년 7월호에서 고른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