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종이강에 그린 詩

[제83호 종이강에 그린 詩]-헐벗은 黙想 -- 오정국

은빛강 2010. 10. 29. 17:55

[제83호 종이강에 그린 詩]

 








헐벗은 黙想 -- 오정국


나무를 보면
나이테가 나무를 감싸
공중으로 밀어올렸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무는 나이테 밖으로 한 발짝도 걸어보지 못했다
나이테도 나무 밖으로 나가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무는 새벽이면 어쩔 수 없이 눈을 떠서
기도하는
봉쇄수도원의
게으른 修道者, 나무는
평생 집 한 칸 지키고 산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으니 하늘의 눈밖에 나지 않았다

나무는 저 헐벗은 露宿의 나날들을
나에게 건네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땅에 눈이 내리고
저 가녀린 팔다리를 위하여
한 해 한 번씩 꽃잔치가 열리고

나무는 제 몸이 무덤이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집 한 채로 넉넉하니
제 집을 무덤까지 데리고 간다 그리하여
죽은 나뭇가지에 앉은
새의 날개도 노을빛에 흠뻑 젖는 것인데,
나무는 아직 나이테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