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황재훈하사의 엄마입니다. 이 글을 올립니다. 외할아버지의 군복을 보며 자란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군인이기를 소망하더니 그 아들이 기어이 군인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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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6일 아들을 보내고 100일째 되던 날,
아들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느라 미뤄두었던 감정을 담아
대대장에게 아래의 편지를 내용증명으로 보냈지만
2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꾸도 없어서
2011년 1월 26일에 오마이뉴스에 아이의 사연을 공개하다.
대대장님 보십시오.
故 황재훈하사가 이승을 하직한지 오늘이 100일째입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아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들...
오랫동안 같이 있을 것 같아서 사진도 많이 못 남기고
요즈음 그 흔하고도 흔한 동영상도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주인 없는 빈 방에 앉아 생전에 입었던 벽에 걸린 아들의 군복을 쳐다보면,
그의 생각에 눈물이 강물인 듯 흐릅니다.
세월이 쌓일수록 더 외롭고 슬프고 보고픈 내 아들입니다.
미치도록 불쌍하고 미안한 생각에 몸부림 쳐 보지만 그의 모습을 잡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죽지 않은 이상 아들을 잊지 못합니다.
밤에 꿈에서라도 보기를 원합니다.
스쳐 지나는 바람에도 그의 냄새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들이 사망하고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안치 할 때까지는
뭐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일수록 슬픔은 큰 강물처럼 더 깊어만 갑니다.
짐승도 새끼를 잃으면 며칠을 식음을 전폐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자식이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군부대에서
제대로 조치도 받아 보지 못한 채 죽었으니 살아있는 목숨이 아닙니다.
가족이 면회 갔을 때 거의 폐질인 상태로 일반병원으로 후송되어
마지막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아들,
그 억울하고 가슴으로 치밀어 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군인이었으면서도 그 지경이 되어 부모가 발견 할 때까지 군인병원에 한번 가보지 못
한 비운의 군인,
군인이었으면서도 죽어서 국립묘지에조차 가지 못한 비운의 군인,
그 군인이 한줌의 재가 되어 어미의 가슴에 안겼을 때는 공교롭게도 바로 국군의 날
이었습니다.
평생 군인이 되고자 부사관으로 입대하여 자대 배치된 지 3개월여 만에 어떠한 원인
으로 어떤 인과 관계로 병명도 알 수 없이 홀로 투병하였다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
니다.
특히나 혹한기 훈련 중에 그 병세가 악화가 되었는데도 내무반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
날부터 나머지 훈련을 모두 받았다는 것에 대해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되돌아보니,
어미의 심정은 전우애를 강조하고 강한 육군이라 자부하는 군대에서 어떻게 우리 아
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 하였는지, 그 사실에 가슴을 뜯으며 억울한 분노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지난 일입니다 만은 2010년 3월 1일 면회 시에 대대장이 아들에게 한 말을 기억하시
는지요?
“자네 요즘 스트레스 받은 적 있나”
차라리 안 들었으면 하고 벽에 머리라도 들이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내 아들을,
눈동자가 풀어져서 초점을 잃고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 내 아들을
왜, 일찍 병원으로 보내지 않았는지요?
왜, 왜, 그 순간에도 병원으로 데리고 갈 생각을 않았는지요?
내 아들을 아무도 없는 휴일 내무반에 방치 해 둔 생각을 하면,
군대에 있는 아들이 잘 있겠거니 믿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가슴이 찢어집니
다.
자대 배치 3개월여의 초급 하사가 무관심 속에서 조금씩 죽어갈 때,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혼자서 무섭고 두려움에 떨었을 그 순간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는 대한민국의 군대와 지휘관을 믿었습니다.
그날, 그 아이를 보면서 했던 대대장님의 언행을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디
에 삭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를 책임질 지휘관이며, 당신도 부모일 텐데 말입니다.
반문하겠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아들이 그랬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들을 잃은 어미의 심정을 적습니다'
1. 재훈이는 부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통신학교 8주간 교육 중에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대전에서 서울 집으로 외박을 나왔습니다. 11월 17일 자대에 복귀하기 전까지도 건강한 모습으로 주말이면 가족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자대에서 뇌종양이 최종으로 악화 될 때까지 구토 두통 간질 등 어느 정도 전조 증세가 있었다는 것은 의학적인 상식이 아닌가요?
어떻게 하여 최악의 상태에서 부모가 면회 가서 병원으로 후송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만들었는지, 또 치료 중 사망에 이르게 하였는지, 부대 내에서 대대장님의 조처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재훈이가 전역하기 전 지난해 7월 달에 육본전공상심의에서 비전공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동안 부대장님은 당신의 부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이것 또한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부하가(사랑 따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군복무 중에 불치의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부모의 요청으로 병원으로 전원 되었으니 부대장은 모든 책임이 끝난다고 생각 하셨습니까? 여자인 저도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동료나 부하 직원이 곤란을 당했을 때 전사적으로 도움을 주고 힘을 보태 주는 것이 상관의 도리가 아닌가요? 하물며, 죽음에 이른 부하에 대한 인지상정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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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난해 11월 달에 육본전공상 재심의에서도 비해당으로 나왔습니다. 앞으로 재심청구를 2011년 1월중에 한번 더 신청 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 어미는 재훈이의 억울하고도 국군에서 버림받은 불쌍한 초급 군인의 명예를 위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 것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부대장님의 부대 앞에서, 또 국방부 앞에서 일인 시위도 할 것입니다. 집안의 장손이며, 제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넋이라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두려움도 없어야 그 아이의 부모 된 도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훈이가 평소 문학하는 어미를 자랑스레 여기며 문학서적 발간에 도움을 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 해왔는데, 이제 저는 떠난 아들의 뜻을 생각하여 군부대에서 발병과 그 과정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실을 책으로 엮으려 합니다.
물론 이 책자에서는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실명으로 거론 할 것이며, 제 아들이 불치의 병으로 외롭고 힘든 투병을 할 때 국군과 또 부대장과 책임 있는 지휘관들이 전혀 돌보지 않아서 최악의 병세를 만든 사실을 가슴으로 온몸으로 원망하며 그들의 이름 또한 실명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대대장님, 어리고 불쌍한 한 군인이 자신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한줌의 재가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이 얼마나 애절하고 슬픈 사연입니까? 군인이 되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거창한 속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직분에 만족하고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 하려는 청년 군인이었습니다. 그러한 청년을 국군은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작 치료비로 1백여만 원을 지급 받은 것이 전부 다입니다. 저는 다른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아들이 사랑했던 군인의 꿈이 불치의 병으로 군복무 중에 사라졌지만, 죽어서도 영원한 군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만이 아닌 아들 고 황재훈 하사의 꿈이기도 할 것입니다. 재훈이가 국립묘지에 마지막 쉼터가 되기 위해서는 육본전공상 재심의에서 공상자로 판정되어야 합니다.
재훈이와 같이 전우애를 나누었던 동료 선후배 상사는 물론이고 하늘과 같이 존경하고 신뢰했던 지휘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들이 군복무 중에 질병으로 인한 공상자가 되어
죽어서도 명예로운 군인들 영혼의 쉼터인 국립묘지에 영면 할 수 있도록 같이 노력 해 줄 것을 당부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저는 아들을 위한 투쟁을 멈추고 재훈이와 관계 했던 모든 사람들을 좋은 인연으로 남기고 그의 영혼만을 위해 살아 갈 것입니다.
2011년 1월 6일
고 황재훈 하사 엄마 권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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