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성숙과 숙성의 차이

은빛강 2011. 2. 24. 03:10

성숙과 숙성의 차이

박 찬 현

 

 

어디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성숙 된 인간'

인간이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는 길목엔 오만가지 애로를 겪고 현자들이 제시하는 거의 완전한 단계를 일 컷 는다.

여기에서 그 '성숙'을 뒤집어 놓고 보면 '숙성'이란 단어가 나온다.

'숙성 된 인간'

그것은 온갖 불순물을 거쳐 속내가 화병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신열을 삭힐 무렵,  인간사 주검처럼 데쳐지는 의식 절명을 지나

바글바글 끓인 풀처럼 뭉그러져 멍울 없이 풀어지는 영육이다.

그것뿐인가,

세포 하나하나 푹 퍼져서 나도 너도 아닌 것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술 제조 과정이 그러하듯이,

된장 고추장이 익어 가듯이

유기 효소가 익어 가듯이

모든 발효 식품이 익어 가듯이

전혀 새로운 이름과 생명으로 거듭 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실로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무던히 권고하는 것이 바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이제 사순절이 온다.

사순절은 가톨릭 종교에서 '예수'가 태어난 전례기가 지나고 그 메시아인 '예수'가 기존의 신앙의 기반 세력인

유태교의 '바리사이파'에게 죽음에 이르러는 [예수 고난, 수난기]이다.

'너희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가끔 신문지면에 아주 오래 된 미라가 발굴된다.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 육신은 햇빛 아래서 그저 검게 변하고만 있다.

그 육신은 하도 많은 사연을 가슴에 지녔기에 과부하가 되어 흙도 못되고 산 사람도 못 되고 있음이다.

그것은 분명 슬픔이다.

썩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이점을 놓고 생각을 더러 해 본다.

살아서 썩는 것이 좋은가, 죽어서 썩는 것이 좋은가,

물론, 두 가지 다 필요하다.

허나 분명 한 것은 살아서 썩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다 .

나에게 해롭게 한 이를 마음 것, 용서 한다는 것과

기분 편하게 감정이 불쾌한 이를 만나서 안 그런 척 대화 한다는 것 까지도......,

 

그러나 현자들과 신은 그러하길 바란다.

넘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하고 관용으로 받아주고 안아주고 그의 등을 토닥여 주는 마음 새,

그러하지만 나는 '성모 마리아'도 아니다.

그리스도 마냥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도 따귀를 때리라고 내줄 도량은 절대 못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가슴에 응어리 한두 개 가지지 않은 것이 있으랴마는

이제는 잊어주는 것이 신상에 편하다는 것을 느껴 간다.

이기적이겠지만 내 몸이 아프지 않기 위해 잊어주고 용서 해주는데 안간힘을 써 본다.

그러다 안 될 때는 울어도 본다. 아주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훑어 올라오고 난 뒤 그 후련함이다.

 

내 삶이 늘 망각이 아니라 용서가 되는 날이었으면 한다.

효소는 못되어도 시궁창쯤에 견주어 놓고 싶다.

불순물이 썩는 것이 시궁창 아니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