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은빛강 2011. 2. 22. 06:20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탱자나무 여인숙

 

서규정

 

 

가시가 가시를 알아보듯

상처는 상처를 먼저 알아보지

맨살을 처음 감싸던 붕대가 기저귀이듯

쓰러져 누운 폐선 한 척의 기저귀를 마저 갈아주겠다고

파도가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그 바닷가엔

탱자무로 둘러쳐진 여인숙이 있지

들고, 나는 손님을 요와 이불로 털어 말리던 빨랫줄보다

안주인이 더 외로워 보이기를

바다보다 더 넓게 널린 상처가 따로 있다는 듯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손에 들고

탱자나무에 내려앉는 흰 눈

모래 위엔 발자국

 

 손님도 사랑도 거짓말처럼 왔다, 정말로 가버린다

 

 

 

-시집『참 잘 익은 무릎』(신생, 2010)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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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그려내는 쓸쓸한 풍경이다

풍경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혜안

여인숙, 시인의 내면이자

우리들 삶의 진리이자 궁극인

그곳은

‘손님도 사랑도 거짓말처럼 왔다, 정말로 가버린’

곳이다

탱자나무에 내려앉는 흰 눈과의 대비는 기막히다

결핍의 풍경을 통하여 낡은 풍경과 조우하면서

낮은 곳만을 들여다보아 온 시인의 본성과 만날 일이다

측은한 아름다움을 응축하고 있는 세상이

시인의 거처가 아니겠는가?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