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나에게 있어 오만과 편견이란,

은빛강 2011. 3. 24. 03:12

조물주가 빚어 놓은 생명들은 제각각 생김이 다르고 사고가 분명히 다르다.

하물며 인간이야 자율의지가 있으니 그 나름이란 아마도 천태만상일 것이다.

삶에 관한 애착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그런지 나의 생각은 세상만사가 싫은게 문제이다.

좀 더 깊이 성찰 해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내것을 그다지 제대로 찾아 본적이 드물다.

그냥 내 몫을 주지 않으면 그런가보다 했다.

 

 근자에 아들은 그런 나를 아주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

지하철 복잡한 곳에서 굳이 선글라스 낀 맹인을 뒤 따라 가서 손에 뭔가를 쥐어주고 오는 것이라던가,

학생들이 어물적 넘어가려들면 그대로 믿고 그들이 뜻에 응대하고, 심지어 바로 앞집 아들이 정수기를 팔러 왔는데

넙죽 사 주거나 하는 일들,

"나는 그럴지언정 너는 정직하게 살면되지 않느냐,"

나의 아들은 나의 일련의 행동사항에 관하여 무지 반발이 심하고 정반대적인 지론이다.

속으로는 맘이 놓인다. 요즘은 사촌도 각국으로 흩어지고 보니 진짜 남이고, 저 홀로 살아 갈 이 쓴잔 같은 세상 걱정도 되었다.

돌아보니 내가 무지 힘들 때에는 내 주변에 정녕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돌봐 주어야 할 친인척이 지난날에는 많았었다.

가끔, 방송에서 흩어진 형제를 찾는다거나 또는 재산문제로 형제간 낯붉히는 사연의 주제가 나오면

나의 과거사를 읊다보니 아무래도 아들 귀에 딱지가 앉았는 것 같다.

 

아들 이야기를 하려던게 아닌데 사족이 되었다.

아무튼 전에는 몰랐던 일들이 몇년 사이에 느껴진 것은

사람들이 그것도 성인들이 상대방의 의사는 아주 쉽게 무시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고집하는 일례들을 종종 보면서

저런 자세는 자신의 말만 하려는 고집인데 그것은 오만에서 부터 키워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부류는 화두를 풀어 놓은 그 당장에는 입이 사라지기라도 한냥 묵묵히 있다가

다른 장소에서는 아주 희귀한 이야기로 변질되어 술술 내 뱉는다.

도무지 이건 무슨 색깔 론인지 구분이 안간다.

단어 몇 소절에 유사하지도 않은 서술어어와 하지도 않은 주어가 당당하게 걸어다닌다.

차라리 청소년들이라면 철딱서니가 없다고 여기기라도 할터인데 이해라기 보다 용납이 가질 않는 부분이 대다수다.

 

해서, 요즘 이런저런 약속들을 거의 펑크를 내고 생각을 많이하는 편이다.

아들에게는 유치원시절 부터 가로수에 핀 꽃 한송이라도 맘대로 꺾지 말라고 누누히 말을 했듯이

생명있는 것들에게 육안으로 보이고 안보이고를 떠나

독이 깃든 혀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은 다른 이를 무기없이 죽이는 것이라고 아들 뿐 아니라

말 많은 내 여동생들과 정말 말 많은 이에게는 나는 힘주어서 말 해왔다. 

"네가 한 말이 되로 주었으나 말로 돌아 올것이니 할말이 아니면 입을 다물라,"고......,

내 조모님이 내게 딱지가 않도록 타이르고 내 엄마가 환청으로도 들릴정도로 닥달 했던 그것들이

성인이되어서 유용하게 쓰여 질 줄은 정녕 몰랐었다.

신부님들께서 고해성사를 주시면서 신자들이 고백하는 자신의 고해들을 세상 떠날 때 까지 흙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세상에는 타인의 비밀을 잊어주는분들이 많으신데 왜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마구 난발을 하는지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내가 잊고 갚지 못한 이들을 일부러라도 곰곰히 생각을 해 내다 보면 몹시도 무안하고 미안 한 일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단지 기억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나도 오늘 내 아들이 몇 십년전 일을 끄집어 내어 지난날을 기억하게 했다.

그 당시로는 그래도 내 할 도리는 다 했다는 지론이었지만 것도 골똘히 생각 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내 남편이 모 은행에 근무를하다가 갑자기 밀려 온 과로로 결국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 때, 나는 그룹으로 하던 과외를 치우고 학원을 시작했다. 

빈 창고를 임대하여서 직접 대목을 하고 페인트칠도 했다. 그 과정에서 딸 같은 내가 고생한다며 직접 실내 구조물들을 모두 만들어 주신분

이 있다. 워낙 대목장이시지만 연로하셔서 일을 하지 않고 계셨다.  그 분은 정성을 다해 내가 그려 놓은 구조대로 모든 작업을 완수 하셨다.

그 당시 그분은 너무작게 금액을 책정 해 가신것을 주변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바로 옆집이니 늘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게 그리 쉬운건 없다. 툭하면 못 마땅하신 옆집 아줌마는 심통이 잦았다.

20여년 붙어 살다보니 속속들이 다 알아도 나는 그의 며느리도 딸자식도 아니니 그다지 속 끓일 일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 아줌마도 살아가면서 나와 아주 안 볼것도 아니고, 또 내 손이 무지 필요 할 때가 더러 있기에 낯 붉힐 일이 있다손 쳐도 와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다른 곳에 살지만 그분도 자존심이 강하셔서 속내를 다 아는 나를 붙잡고 설움을 쏟을 뿐 어디에고 치렁치렁 이야기 할 분도 아니다.

 

다시 거슬러 앞 이야기를 하자면, 지난 날은 대다수의 날들이 학생들과의 생활이었고, 나의 일부분은 봉사의 개념이 컸다.

부딫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반경이 그려져 있었던 세월이다.

사회쪽 봉사개념은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만큼은 인정을 하고싶다.

그 중에도 공명정대한 이도 있고, 명분이 확실한 이도 있으며 남을 애써 배려 해주려는 따뜻힌 이도 있다.

단지 가만 있어도 도와 줄 이도 있는데 굳이  그 도움의 손길들을 가로 막고선 괴상한 심보와 덩치에 맞지않게 큰 소요를 일으켜 이해를 해줄 수 없을 만큼 언어를 유희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특별한것도 아닌데 늘 머리를 싸매게하는 그들이 나에게서 계절을 앗아 가는 것 같다.

일련의 사안들이 참으로 유치하지만 다른 한 사람을 위해 나는 참아야만 했다.

자꾸만 증폭 되는 우울증이 언젠가는 나도모르게 변이되어 무슨 일을 벌릴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제어가 되고있으니 스스로 다행이다.

 

 아주 조금만 소통을 할 훨궈워진 길을 터 준다면 그 영혼은 참으로 아름답게 다듬어질 것 같은 괘변 같은 생각을 해본다.

그 오만을 조금 용해하고 편견도 다른 각도로 바라 보면 생각은 무지 달라 질 것이다.

나에게 오만과 편견이란 나열한 생각들이다.

누구나 일장일단이 있으므로, 그 장점을 유용하게 살린다면 오만은 용해되고 편견은 절대 색안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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